흰샘의 詩답지 않은 詩
너는 어쩌자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에 집을 지은 것이냐
벌나비나 잠자리 한 마리 날아들 일 없고
기껏해야 침침한 어둠 속에서
흡혈 대상을 노리는 모기 몇 마리나
꺼벙한 나방이 한눈팔다 걸려들까
늙은 거미의 동작만큼이나 거미줄은 성글고 엉성했다
그나저나 너는 무엇에 쫓기어
여기까지 와서 집을 지은 것이냐
까치나 어치 같은 천적 때문만은 아닐지 몰라
한때는 저 거미도 목 좋은 나뭇가지나 집 모퉁이에
천망(天網)보다 촘촘하고 단단한 그물 집을 짓고
왕잠자리나 말매미 같은 왕건이들을 노렸을지 몰라
그러다 젊고 힘 있는 놈들에게 밀려 여기까지 쫓겨왔을지 몰라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에 집을 지은 늙은 거미는
이제 누구와도 경쟁할 일 없고 다툴 일 없이
음지와 양지 어둠과 빛을 정확히 반분하여
이 세상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영세중립의 강고한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몰라
* 거미가 늙은 것을 어찌 아느냐고 누군가 내게 시비를 걸었다. 그럼 당신은 거미가 늙지 않은 줄 어찌 아느냐고, 나는 장자처럼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