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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Aug 29. 2023

제목을 붙이기 어려운...

유년의 그늘

어제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집에 내려왔다.

옥상에서 화분에 키우다가 지난봄에 마당에 이식한 무화과 나무가 담장 넘게 자랐고, 가지 사이마다 파란 무화과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놀랍고 신기하고, 대견하고 감사했다. 그 무화과는 2년 전에 내가 사는 동네 근처의 어느 교회 담장 옆에서 작은 가지를 하나 잘라다가 삽목을 한 놈이라 더욱 정이 갔던 터이다.

밤새 비가 내렸다.

처마 밑에 받쳐 놓은 온갖 그릇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흡사 폭포 소리 같았다.

아침이 되어 비가 개자 앞산은 더욱 가까워지고 바람도 한결 맑아졌다.

엄마와 더불어 된장국에 김치, 오이지 등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바람 소리, 이따금 지나가는 빗소리, 24시간 제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고 그르렁거리며 제 존재를 확인하는 냉장고 소리밖에는 들리는 소리가 없다.

처마 밑 한적한 곳에 있는 제비집에는 제비가 새끼를 두 번이나 키워 모두 데리고 떠났다 한다.

거실 창가 앞 처마 밑에 제비가 함부로 집을 짓지 못하게 걸쳐놓은 비닐이며 신문지 조각조차  정겹다.

이렇게 바람 부는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 보다가, 글 쓰다가, 또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삶이라니...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좋다.

오늘은 무얼 할지 대충 계획을 세워본다.

비가 많이 와서 밭일을 할 수 없으니 다행이지 싶다.

우선 오전에 ‘책마을해리’에 가서 이대건 촌장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책마을해리’는 이전 이름이 ‘나성국민학교’였다. 그것이 ‘나성초등학교’로 바뀌고, 분교가 되었다가 끝내 폐교가 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다. 나는 그 학교에 겨우 3년을 다니고 서울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그 3년 동안 내 유년의 기쁨과 슬픔과 그리움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나의 첫 번째 학교, 첫 번째 문명, 첫 번째 자랑이었다. 나성국민학교 출신인 이대건 촌장이 그 황량한 폐교를 사들여 꼭 10년 전인 2013년에 책과 독서를 중심으로 한 복합문화공간 ‘책마을해리’를 탄생시켰다.

내 첫사랑도 당연히 그 학교 출신이었다. 이제는 학교도 첫사랑도 없지만, 내 기억 속 그곳은 변함이 없다. 그곳에 갈 생각을 하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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