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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Sep 04. 2023

아버지의 주례사

저희 아이들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주말 아침부터 서둘러 와 주신 양가의 일가 친척과 하객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제가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는 몇 번 해 봤지만, 막상 자식의 결혼식에서 이 자리에 서 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제 전공이 한문이니까 오늘 결혼하는 아이들에게 한자성어 두 개만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합니다. 지금부터는 신랑 신부하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첫 번째 한자성어는 지피지기야. O미에게 먼저 물어볼게. “지피지기가 무슨 뜻인 줄 아니?”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맞았어. 아주 완벽해. 이건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인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워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결혼 첫날부터 이 아버지가 부부싸움에서 이기는 비법을 강의하려는 건 아니다. 상대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장점은 마구마구 칭찬해 주면 더 잘할 것이고, 단점은 적당히 눈감아 주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때마다 지적질하면 화딱지만 나지 고쳐지지 않는 법이지. 너희도 이미 그런 경험이 있겠지?” 

“자, 두 번째 한자성어는 역지사지야. 이건 O우에게 물어봐야지. O우, 역지사지는 무슨 뜻일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와, 정말 완벽하다. 이거 마치 사전에 나랑 너희들이랑 짠 걸로 오해하겠다. 그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대부분의 일들이 용납되는 법이지. 악한 일이 아니라면 말이야. ‘내가 상대방에게 이 얘기만은 꼭 해야겠다.’ 그럴 때 한 타임만 늦춰서 내가 그런 얘길 들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는 거야. 싸울 필요가 없어지는 거지. 손자병법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백전백승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야. 사실 부부싸움이란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지. 이겨도 상처만 남고, 지면 치명상을 입는 게 부부싸움이다. 꼭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겠지만, 그렇게 꼭 싸워야 하는 일이 정말 있을까?

혹시 꼭 싸워야 한다면, 이 아버지랑 상담해라. 부부싸움에서 이기는 비법을 알려줄게. 나는 아들이든 딸이든 며느리든 누구도 차별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한다. 단 하나. 용돈 많이 주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줄 거야. 

자, 오늘 아버지가 얘기한 두 가지, 지피지기와 역지사지를 잘 기억해서 늘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는 슬결생,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하기 바란다. 그래도 혹시 싸울 일이 생기면 꼭 이 아버지랑 상담하기 바란다. 용돈 잊지 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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