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상담사를 만나 얻은 것

조현병 환자가 전하는 질병 기록 에세이 (6)

by 아픔

나는 7년 차 조현병 환자이다. 먼저, 그동안 만나온 의사 얘기를 하고 싶다. 나는 현재 의사와 사이가 완만하고 좋은(?) 편이다. 그리고 그는 나를 학생 때부터 사회인이 될 때까지를 모두 지켜본 제삼자이기도 하다. 인생에 이런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게 가끔 신기하게 느껴진다. 나의 병세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알고 있는 데다가, 나의 발작 버튼을 모두 알고 있음과 동시에, 내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그게 의사다.


자주 보니 지금은 가족 같이 느껴질 정도다. 나는 가족에 관한 안 좋은 에피소드가 많아서 의사에게 많이 털어놓은 편인데, 의사는 가끔 내게 사적인 공감도 해줬다. (나는 공중파 가족 드라마의 줄거리를 의사에게 말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약을 받고 있지만, 첫 정신과 의사는 서울에 있다. 우리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그곳에 다니면서 내가 느끼고 있는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첫 번째 사람이 그 의사였다. 이때는 다소 나의 증상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고, 나의 질병과 사적인 얘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의사에게 하나씩 말하면서 소거법(?)으로 증상을 파악하곤 했다. 그러면 의사는 침착하게 조현병에 대해서 설명해 줬고, 나는 환청 환각 환시에 맞는 대답을 내놓는 연습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확실히 전문 정신아픔이가 아니었다. 나의 사적 정보와 병세를 구분하지 못해 헷갈려하던 시간들. 그런 시간을 겪고 났더니, 지금은 아주 유창하게 나의 상태를 말할 수 있게 됐다. 저는 조현병 환자고요. 조현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느꼈던 환청이 제일 심했고요. 제가 먹는 약은 oooo이고 ooooo를 먹다가 oooo으로 변경하였으며, 보조제로 oooo을 복용하고 있다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 정신아픔이가 되고 나니, 병원 가는 게 너무 당연해졌고 병원을 안 가는 선택지는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사적인 정보와 정신적 문제를 구분할 수 있어졌고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많이 건강해졌다. 건강을 되찾고 이제 몸의 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설명할 수밖에. 그래도 이런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단 한 번도 의사를 귀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최근 들어 여러 병원을 다니고 그때 만났던 의사를 얼굴을 떠올리고 보니 감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도 있었지만 적절한 약을 처방해 준 의료진에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약의 부작용이 적은 편이고, 병세도 다른 경험자에 비해서 빠르게 좋아진 편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의사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상담받던 얘기를 하고 싶다. 어제부로 칠십 번째 상담을 끝냈다. 초기에 정했던 상담 목적을 이룬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그 이외로 이제 상담을 중단하여도 자립할 수 있겠다는 큰 용기가 생긴 것도 한몫했다. 물론 상태가 더 안 좋아지거나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바로 상담소를 찾을 생각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간절하게 상담을 다니지는 못할 것 같다. 그때는 나에 대한 존중감이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상도 줄 수 있고 칭찬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시간인 것 같다.


딱 칠십 번째 상담을 마치고 보니, 후련한 마음이 든다. 내가 상담을 받게 된 계기는 약물 치료와 또 다른 현실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찾은 상담소는 집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는데, 그래도 다닐만했다. 수도권에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안주한 적도 있다. (수도권에 산다는 것은, 약속 장소까지 한 시간 반을 가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해 봤다.)


나는 내가 인상 깊게 본 작품이나 전시 혹은 영화를 타인에게 보라고 권유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상담만큼은 여건이 된다면 한 번씩 받아보라고 권유해 보기도 한다. 처음 상담을 받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상담은 6개월 이상 지속했을 때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하고 싶다. 오래 상담할수록 상담의 수준이 높아진다. 나에 대해 빠짐없이 알고 있는 전문 상담사는 엄청나게 든든하다. 증상에 관해 자세히 나누는 의사와는 다르다.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상황을 기반으로 데이터 베이스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좀 더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나를 돕는다. 그런 서포터가 생긴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 된다.


나 같은 경우,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는 것과 상담사에게 말하는 바가 다른 편이다. 의사에게는 '증상', '몸의 변화'를 말하는 게 우선이고 상담사에게는 '나의 상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애를 쓰곤 했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매우 수동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감정 면에서 그랬다. 상담 초반에 상담사가 제시한 감정이 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댔다. 그래서 감정 표현하는 법을 같이 연구해 나갔다. 특히 내 몸에 나타나는 감정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분명히 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상담이든 약물 치료든 너무나 익숙한 나의 카테고리가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상담 종료는 나에게 좀 다른 느낌을 전달해 주는 듯하다. 아쉬운 마음도 들고, 면허를 따고 첫 운전을 하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더 건강해질 거라는 게 느껴진다. 다른 마음은 들지 않는다. 지금은 그걸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그저 마음이 엄청 편안한 상황이다.

물론 가끔 증상이 나타날 때는 괴롭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곤란하다. 그래도 증상을 무시하지 않은 나의 첫 승리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그 많은 돈을 직접 벌고 소비한 나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앞서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지만, 돈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돈아! 고마워! 너 덕분에 정신 케어에 성공했어. 내 통장에 들어와 줘서 고맙다. 큭큭.

역시 금전에 대한 언급은 빼놓을 수가 없다. 다음 브런치는 돈에 관해 적어볼까 한다. 여러분들에게도 건강이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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