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가 전하는 질병 기록 에세이 (7)
우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모은 세뱃돈 카드가 있었다. 나름의 비상금이었고, 꾹 참아가며 허튼 곳에 안 쓰려고 모아둔 돈이었다. 그 돈을 정신과에서 처음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모바일 뱅크에 찍힌 삼십만 원의 지출은, 나의 정신을 번쩍 켜놓았다. 이렇게 큰돈을 사용해 보는 것도 게임기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도 ‘낼 수 있을 정도의 돈’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비싼 금액이 제시되었다면, 지불 못 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과 마주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정신과에 가자마자 몇 주정도 기간을 두고 임상심리사를 만나 검사를 진행했다. 처음이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이 전부 나처럼 초진 비용을 지불하는 줄 알았다.
잠시 자랑을 좀 하겠다. 나는 임상심리사를 잘 만났다. 관련 종사자에게 심리보고서를 보여줄 때 감탄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적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내가 만난 임상심리사는 굉장히 꼼꼼하게 내 상태를 파악해 줬는데, 그래서 나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심리보고서에 나에 대해서 꼼꼼하게 소견을 넣은 점이 돋보인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때 심리평가보고서가 아직도 덕을 본다. 쓸 일이 많지는 않지만, 종종 방정리하다가 읽을 때도 있다. 읽다가 추억에 빠지곤 한다.
그때 당시에는 스스로 느끼기에 정말 불안정하고 힘들었다. 그 증상이 빠짐없이 적혀 있는 게 심리평가보고서이다. 나의 첫 상태 기록지. 치료가 필요하다는 마지막 요약은 몇 년째 다시 읽어도 슬프다. 그동안 자신을 너무 내던지고 살아왔다는 생각에 슬퍼지곤 했다.
정신과 진료 당시에 종종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도 했지만, 정신과 진료만큼은 내 돈을 내고 싶었다. ‘내 돈으로 직접 치료’한다는 마음이 커서 그렇게 하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나의 경우 정신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늦게 전달했기 때문에 초진 비용은 세뱃돈 카드와 아르바이트 금액으로 충당했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여러 곳에서 해보진 않고 주로 한 군데에서 꾸준히 했던 기억이 난다. 장기 알바는 전부 카페에서 했고, 긴급하게 돈이 필요했을 때는 단기 알바를 했다. 처음으로 단기 알바를 나간 기억이 난다. 봉투에 프린트된 우편 주소를 붙이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전부 생활비로 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돈도 아마 치료비용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해 본다. 초진 이후로는 정신과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갔었으니까. 그때 돈이 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금액대가 높은 건 아니었지만, 휴대폰에 지출 내역이 찍힐 때마다 암울한 건 덤이었다.
‘치료하는 나’에 취했던 적도 있다. 약 먹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웠던 날도 많았다. 좀 더 설명을 하자만, 치료받고 있는 내가 자랑스러웠던 게 아니라 ‘괴롭고 힘든 나’에 취해 있었다고 말하는 게 좀 더 맞다. 나는 약도 먹어. 나는 정상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나는 괴로운 사람이야. 나는 정신과에 다르면서 특수해지고 말았어. 앞으로 나에게 약을 뗄 수 없을 거야. 정신병자니까 병원에서 썩는 게 옳아. 내가 이렇게 현실에서 살아갈 자신이 있을까? 이런 똥 같은 생각을 자주 하면서 스스로를 긁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 하니?’라고 한 마디 던지고 설교를 시작할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건데?”
그럼 그때의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반박했을 거 같다. 저는 남들이랑 다르고 특수하고 유별나고 이건 전부 좋은 장점이 아니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도 나의 고통은 영원하고, 그런 말을 늘어놓을 것 같다. 그만큼 나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느낀다. 이 느낌이 반갑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앞서 설명하려다가 잊은 게 있다. 상담 비용도 전부 내가 부담했는데, 상담의 경우는 내가 사회인이 된 이후부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고 나에게 보상해 주고 싶은 마음도 없던 내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상담 비용이 너무나 비싸게 생각이 됐는데, 지금 생각하면 몇 년째 동결인 그 금액이 매우 저렴해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 이 정도 돈을 쓴다는 감각도 치료에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내가 이만큼 건강해질 수 있던 건, 돈을 써서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좀 해 본다.
약간 비싼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 정도 금액으로 할 수 있는 다른 비용에 비해서 의미 있고 뜻깊은 금액이었다. 그런 돈이 정신과 약의 비용보다 비쌌지만, 2~3년 동안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다. 흔히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게 정신과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들었던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증상의 치료는 정신과에서 하는 거고,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삶의 문제는 상담에서 교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남에게 쉽게 말하긴 힘들다. 별로 남을 설득하고 싶지 않다. 조금이라도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글에 적고 있는 것 아니려나.
아무튼 이런 일들이 있었고, 돈을 모으려고 했던 일들이 전부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신기하다. 과연 돈이란 건 무릇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두고 있겠지만, 나는 나에게 투자했다고 본다. 계산해 보면 그렇게 비싼 금액도 아닌 것 같다. 최소한의 비용을 셈해 보니까 오백십구만 원 정도가 나온다. 물론 정확한 계산은 아니다. 나에게 이 정도 썼다니. 기분이 남다르다.
그 정도 돈이었구나. 생각 못 했지만. 이렇게 계산하고 보니 체감이 잘 된다. 돈 모으려고 애썼던 것도 기억이 난다.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면 연봉 이외로 나를 대표할 수 있는 금액을 사오백십구만 원 정도 들었다고 얘기해야지. 그 누구도 재미를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그냥 말하고 싶다. 정말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