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가 전하는 질병기록 에세이
병원에 가기로 했다. 조현병은 특히나 조기 치료가 중요한 질병이다. 하지만 조현 증상을 바로 발견하기에는 관련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많고, 본인의 '현실감각'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곧바로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는 게 상당히 어려운 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신과에 대한 진입장벽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당시에 SNS 상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감기약 먹듯이, 정신에 문제가 있을 땐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세요."
라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처음에 내게 우울 증세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당시의 나는 집 밖에 나가는 게 무서웠다. (그 이유는 뒤에 기술하겠다.) 슬픈 감정이 당시에 많아 눈물을 자주 흘렸다. 많은 다짐 끝에, 어렵게 정신과에 들러보니 나에게 더욱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고, 검사 결과 나에게는 우울 삽화와 조현병 전구 증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지속적 치료를 권유받았고 그 뒤로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나는 내 정신병과 마주해야 했다. 치료의 시작은 나의 사고왜곡을 다시 바로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정신과 선생님은 내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바로잡는 데 상담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나는 그래서 '진실', 즉 '현실감각'과 마주해야 했다. 그 과정을 비유해 보자면, 첫째로서 살아가다가 둘째가 태어났을 때 느낄 법한 첫째의 상실감, 내가 믿었던 세계에 대한 어떤 두드림 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남의 개입이 중요한 시기였다.
나의 조현병 증상은 아래와 같았다. 나는 이러한 방향으로 사고를 왜곡했는데, 아마 나와 비슷한 환자도 있을 거란 생각에 정리를 해본다.
첫째, 엄마가 떠주는 물에 대한 사고 왜곡이 있었다.
나는 엄마와 언니가 나를 살해하기 위해 도모하고 있다고 왜곡했다. 그 증거로 삼은 것은, 엄마가 내 생일 선물에 사준 립글로스와 그다음 생일에 사준 선크림의 색깔이 같다는 것에서 기인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두 전제조건에 아무런 유사성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이 작은 물건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아주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있다고. 그러나 나는 그 물건이 나를 살해할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을 사용했다.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이 남아 있는 상태이긴 했으나,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꼈다. 이 물건에 소량의 독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생일 선물을 받은 뒤로 엄마가 나에게 주는 물건이 의심스러웠다. 특히 엄마가 나에게 떠주는 물에는 독이 들어있어 나를 독살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싱크대에 버림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 왔다. 당시에 엄마가 내 피부를 만지는 것도 용서되지 않았다. 접촉은 엄마의 장대한 살인 계획 중 일부이고, 이를 허용한다면 나를 더욱 죽음으로몰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집 밖, 혹은 가까운 거리에 나가면 살해당할 거라는 사고 왜곡이 있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면 생존확률이 높아진다고까지 생각했다.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내 전애인인 경우가 많을 것이고, 그들은 내 거주지를 알고 있으며 칼을 들고 잠복하고 있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특히 집 근처에 나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에게 엄청난 원한이 있을 거라는 착각도 함께였다.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원한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떤 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나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보았다. 그 근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거 나의 행실 때문임에 초점을 두었다. 나는 도덕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섞어서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그 도덕적인 방향에 반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감점 요인'이 됐다. 감점 요인이란, 전 세계 사람들이 지배받고 있는 점수 체계가 있고 특점 점수 이하로 떨어지면 살해당할 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데스 서바이벌 같은 상황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했다.
다소 비약적인 부분이 있으나, 병원에 가서 가장 실망한 점은 "정신병이 생기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감기약 먹듯이 병원에 가라는 말"에 속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약을 먹으면 멀쩡했을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단약은 사고왜곡의 지름길이었고,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계속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감기 또한 완전히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좋은 컨디션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정신병도 몇 번 들르기만 하면 금방 고쳐질 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약을 꾸준히 먹지 않으면 안 되고, 그 기한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게 요점이었다.
첫 치료 때 의사부터 의심했다. 나에게 주는 약이 잘못된 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낮은 자존감 덕에 약을 먹었다. 왜냐하면 의사는 검증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처방해 주는 약이면 틀림이 없을 거라는 현실 감각을 끌어올려 약을 복용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나는 잠재 세력에 의해 살해당할까 봐 무서워서 울었다, 라는 전개가 좀 더 당시의 나의 논리에 맞았다. 나는 우울증이 아니라 조현병 환자가 되어 모니터 앞에 앉아있었다. 그때의 혼란이 지금은 거의 잠잠해졌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다. 과거의 나의 상태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