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과 현실감각

조현병 환자가 전하는 질병 기록 에세이 (2)

by 아픔

첫 병원 의사 선생님이 기억난다. 병원에는 사람이 참 많았고, 그중에 나는 어린 편에 속해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약을 받기 위해 그곳에 모여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병원 로비에는 클래식을 틀어주었는데, 나는 그 곡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의사가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엄마가 왜 아픔 씨를 독살하려고 해요?"


단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고, 기정사실화 하고 있던 바였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 논리가 상당히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들보다 더 나은 도덕적 판단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자마자 말이 막혔다. 왜냐면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내가 사실화하고 있던 생각과 정반대의, 나의 아주 솔직한 마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막연히 '진실'이라고 보았던 '왜곡된 생각'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나의 생각을 공개하는 데에 상당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의 공포가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러나 내가 그 사실-기정사실화된 음모-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지는 않은 점이 오히려 다행인 일로 다가왔다. 나는 어느 한 부분이든 사고 왜곡을 많이 하고 있었고, 환청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나는 나아가 엄마가 나를 살해할 이유가 없고, 집에 독이 없는 것도 확인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방향으로 나의 문제와 직면할 수 있었다.


하루는 의사에게 나의 상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말을 돌려서 다른 화제를 꺼냈던 기억도 난다. 그때 의사는 내게 '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상대(친구라던가 연인이라던가)'가 있냐는 말을 던졌고, 나는 또 사실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진실은 너무나 나에게 무거운 방향으로 다가왔으나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리는 매우 산만했으며, 그것이 들린다고 인지했을 때는 이미 사고 왜곡을 한 이후였다. 나는 차근차근 하나씩 나아가기보다는, 의사와의 정면돌파를 하면서 나만의 상식을 부숴나갔다.


나만의 상식으로 가지고 있던 바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엄마가 나를 독살하고 있다고 정확하게 믿고 있었다는 점을 풀어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 그런 사고를 가지게 된 전반적 이유는 '나에게 잘해 주려고 하는' 느낌에서 비롯되었다. 엄마와의 갈등을 피해 갈 수 없을 듯한데, 엄마는 당시에 외관을 꾸미도록 계속해서 유도했다. 왜냐면 그때의 엄마는 여자애들이라면 무릇 치장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것이 전부 좋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1차적으로 그 행위가 나의 사적인 영역을 건드린다고 생각했고, 2차적으로는 나를 트로피처럼 여긴다고 생각했다. 나를 치장시켜서 엄마가 사람들의 시선에 좋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나는 그때 나에게 주는 '모든 행동'을 이런 식으로 삐딱하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항상 무언가에 억울한 상태가 되었다.


차라리 그때 화를 내고 엄마와 싸웠더라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수동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나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 응어리가 쌓이고 섞여 정신병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처음에는 한 두 가지 정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단순한 불만으로 축적되어 있던 것이, 점점 '나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지점을 천천히 뜯어보다 보면, 내가 성장한 배경이 얼마나 어렵고 고난한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이런 일이 한두 번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 생각보다 훨씬 자주 일어나고야 말았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나는 늘 조금씩 마음이 썩어가고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의사에게 진실을 듣는 게 너무 괴로웠고, 중간에 단약도 했다. 단약 초반에는 별 느낌 없었는데, 점점 단약의 기간이 늘어갈수록 환청이 심해졌다. 어딘가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로 인해 괴로움을 느껴야 했다. 늘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 때문에 행동의 반경이 대범하지 못하고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내게 너무 미웠다. 계속 생각을 변형시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이렇게 자세하게까지는 나의 병세를 모른다. 설명하려고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다들 어리둥절해할 뿐이다. 그래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주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질병에 대해서 진지한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가족들에게 한 마디 해보고 싶다. 나를 오히려 무던히 대해 주어서 고맙다고, 더 깊게 나를 알았더라면 분명 이해할 수 없었을 텐데, 따뜻한 덤덤함을 보여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무리하면서, 조현병을 겪는 누군가에게도 한 마디 전하고 싶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진짜지만 그것의 논리는 너무나 헐거운 나사 같은 것이고, 당신은 그 나사를 들고 있다. 그 나사를 조이거나 푸는 건 당신의 몫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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