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채팅 : 너 조현병이야?

조현병 환자가 전하는 질병 기록 에세이 (3)

by 아픔

나는 7년 차 조현병 환자이고, 이 일은 내가 6년 차 때의 이야기이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었을 당시 SNS로 모르는 사람과 나름 길게 대화를 하게 되었다. 상대방에게서 선 DM이 왔고, 나는 처음에 그 연락을 완전히 무시할 생각이었지만, 어떻게 내 계정까지 이 사람이 오게 됐는지 궁금해서 말을 잇게 되었다. (호기심이 죄다.) 나는 그 사람과 총 이틀에 걸쳐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나도 이러한 채팅이 가진 위험성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차단 기능을 잘만 이용하면 이 관계를 쉽게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소 안일한 생각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었다.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은 아니고, 이성이라면 느낄 만한 약간은 섹슈얼한 내용을 선두로 조금씩 자신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자신이 아름다운 누군가와 만나서 사랑받고 싶다고 얘기했고, 나는 그런 취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대방의 취향은 훨씬 더 정교한 것이었어서,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면 특정 행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결함이 없다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갔고, 나는 그에 대해서 묻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그른 사람이네. 적당히 대화하다가 차단해야겠다.'


제일 시급한 사람은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정신과에 가볼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방금 대화를 통해 모든 게 판가름난 상황이었다. 정신과에 가보지 않은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힐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는 경우인데 그 문제를 모르쇠 하는 게 자기 자신에게 제일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돌봄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인데, 그걸 하지 않는다? 그 말은 자신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흐름이 내게로 왔다. 나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고, 나는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논점을 흐렸다. 방금 전처럼 내가 상황을 깊게 파고들지 않았던 것을 상대방도 알아주길 은근히 바랐다. 그런데 상대방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너 조현병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말문이 턱 막혔다. 그 많고 많은 정신질환 중에서 정신분열증이라는 말도 안 쓰고 '조현병'이라는 정확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무척 놀랐다.(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정신분열증은 조현병으로 새 이름을 얻은 상황이다.) 나는 그 사항에 대해서 아니라고 잡아뗄지, 아니면 다른 거짓말로 그 상황을 피해 갈지 고민했는데, 어떤 방향으로 진입해도 결국엔 거짓말을 해야 하는 방향으로 몰리게 될 것 같아 그 사항을 부정하지만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랬더니 상대방은 나의 병세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물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는데, 나는 핵심을 빙 둘러서 곁가지를 설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그가 적어도 정신과 진료에 대해 너무 갇힌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으면 바랐고, 나의 병세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나는 은근히 상대방에게서 나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별 거 아닌 일처럼 말하는 걸 약간은 즐긴다. 그래서 그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어서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할 때 약간은 떨렸고, 말이 좀 빨라졌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이 안 좋은 습관을 슬슬 고칠 때가 된 것 같다.) 내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나의 병세를 자각했던 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은 내 말을 들어주는가 싶더니 종국에 와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지금 얘기 다 녹음했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당황했겠지만, 프로 정신아픔이인 나는 평소에도 '환청'이 진짜처럼 들리는 기이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24시간 누군가가 내 행동을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내 증상의 공포를 미루어보았을 때, 이 정도를 공포로 치기엔 너무 허술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이제 더는 우리가 순수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 수단에서 나와 그를 차단했다. 한두 번 이성을 꿰어본 솜씨가 아닌 거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사람을 가스라이팅할 수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내 증상에 대한 미움, 끔찍함, 치료 과정의 지난함, 그 밖에도 내가 겉으로도 조현병인 것이 테가 났던 걸까 걱정하게 되었다. 정신아픔이들은 이런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이를 겪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갈망을 부추기는 것 같다. 내가 정신아픔이들의 군락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래서 가끔 비정신아픔이들에게 머글(Muggle*)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일반인을 향한 부러움과 시기 질투 그 모든 것이 들어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다소 열등한 마음에서 썼던 말이니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주시길.


머글(Muggle*)이란? <해리포터>에서 마법 능력이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


어째서 정신 케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처음에는 그 자체가 너무 원통했다. 왜냐면 일반적인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면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했다. 초진 이후에는 알약 하나하나 숫자를 세어가며 먹었다. 약은 부작용 방지약까지 포함하여 약 네 알정도였는데, 그 네 알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먹었다. 알약 하나에 엄청난 분량의 무게감이 들어있다고 상상했다. 삼키는 게 매 순간 고통스러웠다. 약은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가, 일주일 치가 남았을 때 다소 빠르게 소진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평생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행인 점이 있다면, 약을 복용하면서 넓어진 세계관이 하나 생겼다는 점이다. 정신병 하나 가졌을 뿐인데, 남에게 허세 부리며 '나는 이런 일도 겪은 몸이야'라고 과시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 내가 자기-돌봄을 하고 있다는 데서 말이다. 나는 그래서 내 몸에 대해서 설명할 때 여건이 된다면 조현병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물론 직장이나 중요한 단체 생활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정신병 얘기만큼 상대방과 친밀해질 수 있는 이야기도 없다. 괜찮은 사람이 생기면 슬쩍 몰래 다가가 식사 대접을 하면서 나에게 조현병이 있다고 말한다. 반응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친해지거나 둘째는 나를 거르거나. 나는 걸러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편이다. 지뢰가 하나 사라지는 고마운 상황 같이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정신병은 매우 사적인 이야기에 속하기 때문에, 이제 막 정신아픔이를 인정하고 병원에 다니고 있는 분이라면, 다소 진단받은 바를 곧바로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특이 케이스로 나처럼 정신병을 오픈하고 싶어 이를 갈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이유를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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