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를 잘 모른다.
엄마는 엄마로 영원히 남아있길 원한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나를 격려해 주는 사람으로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으로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늘 건재하기를 바란다.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늘 건재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오늘은 부끄럽습니다. 내 마음에 늙지 않고 항상 그대로 있어줬으면 하는 엄마가 이제는 늙어가고 있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빠 고혈압 약 문제로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혈압이 약을 드셔도 안 떨어진다는 주간보호 센터 선생님 말씀에 엄마한테 병원을 다시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하니 화를 번쩍 내십니다. 화난 목소리가 전화 수화기로 전해져 전화 도중 '엄마 왜 갑자기 화가 났어?'하고 물으니 '나는 한다고 하는데 왜 느그 딸들은 자꾸 아빠만 챙기냐'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 엄마가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며 통화를 하고 끊었습니다. 그렇게 끝난 통화로 기분은 이미 안 좋은 상태로 두 시간쯤 지나니 엄마한테서 다시 전화가 옵니다.
'아까는 엄마가 미안해. 김장 때문에 준비할 것도 많고 힘든데 자꾸 병원 다녀와라, 왜 혈압이 안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이런 소리만 하니까 갑자기 화가 났어.' '엄마도 어제 눈길에 미끄러져 병원도 가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아. 그런 거였구나.'
'정작 당신도 아프고 힘든데 아빠만 챙겨 달라고 딸들이 돌아가며 얘기했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 에구. 아빠나 엄마나 늙어가시는 건 똑같은데 딸들은 초기 치매가 시작된 아빠만 챙기고 정작 그 아빠를 위해 수고하시는 엄마의 마음은 읽지 못했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힘드니까 이제 아들들한테 알아서 하라고 하라니까' 이런 말은 엄마한테는 이미 소용없는 말입니다. 힘들어도 자식들 위해 기꺼이 해주려는 마음을 무슨 수로 바꿀까요? 살아생전은 그냥 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엄마 김장 준비 어디까지 하셨어? 내가 내일 가서 장 다 봐줄게. 구르마 끌고 장 보러 가지 말고 집에 계셔요" 이 말 한마디에 목소리가 밝아지신 엄마입니다.
"그래. 아이고 그럼 엄마가 편하지."
"우리 딸이 최고네"
"우리 딸 바쁜데 엄마가 시간 뺐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도 딸의 마음을 살핍니다.
올해 책을 쓴다는 이유로 그리고 2년 동안 이사로 친정과 멀어져 예전에 비해 신경을 못 써드린 것도 사실입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피해줄까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알아서 하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몸이 힘들고 고단하니 딸들이 한 번씩 전화하면 그 힘듦을 목소리에 힘껏 실어 풉니다.
그런 걸 알면 엄마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하고 인정하면 되는데 딸은 이기적입니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보다는 엄마는 늘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따뜻한 말을 해주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엄마의 이름으로만 남아있기를 바랐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딸이 김장 장을 봐준다는 한마디에 목소리가 달라지시는데 자식들은 참 자기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는 늙고 병들어갑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순리겠지요.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엄마는 아파도 엄마고 병들어도 엄마고 치매가 와서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엄마니까요. 가끔은 싫을 정도로 화를 내시고 조증 같은 성질을 부려도 엄마는 엄마니까요.
오늘은 문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아직은 건재하시고 아빠가 초기 치매인 인지장애가 시작되었지만 부모님이 크게 아프신데 없고 건강하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건강하시고 이제는 자식들보다는 당신의 행복과 안위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행복과 안위에 자식 된 도리와 사랑도 당연히 필요하겠지요.
늦기 전에 조금씩 철이 드나 봅니다.
엄마를 가장 닮아 간다는 딸은 참 엄마를 모르나 봅니다. 아니면 모른척하고 싶었나 봅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일 텐데...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