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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사이

by 말상믿


어젯밤 갑작스러운 아빠의 전화에 놀라 밤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은숙이냐. 아빠여. 엄마가 아픈 것 같은디 어떻게 해야겄냐?"

"응. 엄마가 왜요? 어디가 아프신데?"

"엄마가 갑자기 어지럽다고 저렇게 힘들어하면서 너한테 전화한다니까 허지 말라고 헌디"

"언제부터 그런 건데요? 어지러운 거 말고 다른 증상은 없어요?"


아빠와 이런저런 통화를 하고 엄마를 바꿔 통화를 했습니다.


"심한 거 아니니 안 와도 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뭐 허로 전화해서 너 힘들게 그런다냐"

"참말로 미치겄다. 안 와도 된당께"

"엄마 약 먹어서 괜찮어. 그니까 걱정허지 말고 얼른 자라"


전화 통화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끔 한 번씩 남편과 저녁 외식을 하고 술 한잔하고 들어오는데 어제가 마침 그날이었습니다.


기분 좋게 한잔하고 들어와 쉬려고 하는데 평소에는 전화 거는 것도 잘 못하시는 아빠가 급한 목소리로

"은숙이냐. 아빠여" 하는 목소리에 걸려 밤새 마음이 불편합니다.


경도인지 장애인 초기 치매가 시작되었지만 다행히도 아빠는 주간보호 센터를 다니시면서 정말 좋아지셨습니다. 6개월 전에 비해 많이 호전된 상태를 보이시는 반면 엄마는 그런 아빠를 옆에서 케어하시느라 그 힘듦을 자식들에게 다 표현하지 못하셔서 그런지 6개월 전보다 훨씬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 아빠의 전화를 받고도 갈 수가 없어서 여동생한테 전화하고 오빠한테 전화하고 현재의 엄마의 상태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친정을 향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듯 엄마는 놀라는 표정을 하시며 '괜찮다고 했는데 뭐 허러 왔냐'라고 하십니다.

마침 병원을 가시려고 채비를 하려던 참이었다고 해서 준비하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가려고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엄마가 머리가 어지럽고 아픈 것이 정말 그 원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5년 전쯤 이석증으로 어지럼증을 겪었던 엄마이기에 어느 정도의 증상은 알고 있지만 병원을 가기 전과 병원 가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엄마는 처음보다 목소리와 기분이 훨씬 밝아져 보입니다.


물론 아침에 어지럼증 약을 드시긴 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아져 보이는 건 제 느낌이었을까요?


병원 진료를 마치고 의사 선생님은 요 근래 엄마가 무리하신 일은 없는지 스트레스를 받은 일은 없는지 묻습니다. 아빠를 케어하시느라 많은 부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것을 알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닌지 묻게 됩니다.


그런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도 지금 엄마에게 진짜 필요한 건 약이나 병원 진료보다 엄마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주는 대화 상대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영양제도 맞고 근처 맛있는 짜장면 집이 있다고 해서 점심까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어제 그렇게 아팠던 엄마가 아닙니다. 기분도 좋아져 한결 밝아져 보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또 일을 만듭니다. 내일 아빠 생신으로 가족모임이 있는데 자식들 줄 마음에 파김치를 담으시려고 어제부터 잔뜩 준비해 둔 재료를 꺼내 듭니다.


의사 선생님이 힘든 일 하지 말고 푹 쉬어야 한다며 최대한 고개 숙이는 일도 줄이고 휴식을 취하라고 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또 일을 꺼내 드시는 엄마를 보니 짜증 섞인 잔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엄마와 딸 사이는 이런 걸까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분위기가 삭막해집니다.

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이 드시고 힘드니까 자식들 김치며 반찬이며 이런 거 안 해줘도 알아서 잘 먹고살아. 김치 해줄 생각에 힘들게 여러 번 장보고 무겁게 짐 들고 다니지 말고 이제 하지 마시라고요. 엄마는 5형제 파김치 한다고 준비하는 양이 어마어마한데 이거 나누면 표도 안 나는 거 하시느라 힘만 들잖아. 다리도 아프다면서 무거운 거 들고 다니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 하시면서 맨날 아프다 하고 이런 거 안 해줘도 되니까 엄마 몸부터 챙기시라고요. 엄마 파김치 담근다고 이렇게 힘들게 하시다가 아빠 주간보호 다녀오시면 또 힘들다고 짜증 부리고 집도 어지럽혀져서 힘들고 이제 진짜 엄마 나이 생각해서 제발 그만하셔.


이 따발총 같은 저의 잔소리가 들리나요. 에휴.

제가 하고도 듣기 싫은데 엄마는 또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셨을지.


엄마의 자식 향한 마음도 알고 엄마가 해주신 파김치가 맛있지만 이렇게 잔소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짜증 썩인 말이 먼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방금 전까지 엄마의 힘든 마음을 위로해 주고 대화 상대가 되어주자 생각했는데 불과 1시간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엄마도 기분이 안 좋으신지 좀 전에 나아진 기분은 어디로 가고 성질을 부리시며 인상을 쓰십니다.


"그렇게 잔소리할 거면 그냥 가라. 뭘 그렇게까지 허냐. 이런 것도 안 하면 뭔 재미가 있다냐"

"그럼 내일 자식들 보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엄마 마음이 좋겄냐"

"뭐라도 해서 자식들 주는 게 엄마는 낙이여"


생각해 보면 아빠랑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이렇게 티격태격 거릴 일이 없는데 엄마랑만 함께하면 티격태격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엄마와 딸 사이는 항상 이런 걸까요?


저도 딸을 둔 엄마로서 이상적인 모녀관계를 가끔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엄마와 딸이 친한 친구처럼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하고 좋은 관계로 지내는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 역시 딸들과 이런저런 일들로 가끔씩 티격태격 대는 것을 보면 엄마와 딸은 어쩌면 시대의 변화에 맞게 비슷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모녀 사이는 애증의 관계라고 하는 걸까요?


이제 중년의 나이가 들어 엄마라는 한 여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딸이 되어야 하건만 오늘도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집에 와 편치 않은 저를 봅니다.


엄마의 자식 위하는 마음도 알지만 이제는 자신을 좀 더 챙기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저의 마음이겠지요. 엄마는 지금껏 하시던 대로 하셔야 마음이 좋을 테니까요.


투덜거리는 저의 잔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싸준 파김치에 저녁을 먹었습니다.

여전히 엄마표 파김치는 맛있습니다.

엄마에게 늘어놓은 저의 잔소리가 미안해질 정도로요.


저녁을 먹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아까는 미안해요. 너무 잔소리를 했나 봐. 집에 오니까 마음이 엄청 걸리네"

"엄마 파김치에 저녁 잘 먹었어요"

"아이고. 그랬어. 그럼 됐어. 맛있게 먹었으면 됐어. 오늘 고마워. 우리 딸"


엄마와 저는 오늘도 여러 번 감정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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