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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상믿 May 31. 2024

시절 인연이 그리운 날


오전 글쓰기를 마치고 이웃님의 블로그에 방문차 갔더니 아주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 사진과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이 김밥 만드는 날도 아닐 텐데 한두 분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당근 김밥을 어떤 분은 묵은지 참치김밥을 또 어떤 분은 집밥이라며 올린 글을 읽으며 김밥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 남편이 오기 전 부지런을 떨며 며칠 미루던 반찬도 만들고 묵은지 참치 김밥을 만들어 저녁을 먹었습니다. 평소에는 남편이 오기 전 음식을 끝내고 기다렸다가 먹는데 오늘은 안 하던 걸 하려니 마음도 급하고 정신이 없습니다.


김밥을 보니 생각나는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이 그리워서 인지 제가 만든 김밥은 그저 그랬습니다. 남편은 맛있다며 먹었지만 실은 다른 맛이 그리웠나 봅니다.



우리 딸들이 어릴 때 자랐던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였습니다. 그곳에서 16년을 살았으니 정말 오래 살았지요. 윗집 아랫집 옆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사하고 지내는 정이 넘치는 곳이었지요.

우리는 6층에 살았고 6층 같은 층에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언니가 있었고, 4층 7층 8층 9층 함께 친하게 지내는 집이 일곱 집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나이는 비슷해도 친하지 않았지만 엄마들끼리는 모두 친했지요. 그로 인해 남편들도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여름날 아파트 상가 앞 치킨집에서 함께 술 한잔하기도 하고 펜션을 잡아 함께 놀러 가기도 했지요.


그중 가장 왕 언니 8층 언니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부르며 누구누구라는 호칭을 붙였지만 유독 8층 언니는 호칭이 8층 언니입니다.

그냥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누구 언니라고 불러본 적이 별로 없이 그저 8층 언니였지요. 8층 언니는 음식 솜씨가 꽤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잘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 음식이 바로 김밥이지요. 8층 언니가 한번 맘 잡고 김밥을 마는 날이면 온 동네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OO 아 김밥 만들었어. 올라와"

"정말.. 오늘 김밥 먹는 날이야"

미리 예고도 없이 만든 김밥을 받을 때면 얼마나 많은 양을 주는지 밥을 하지 않아도 온 가족이 다 먹을 정도의 김밥을 주었답니다.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뭐 별거 넣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 맛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아이들 소풍을 가거나 현장학습 가는 날이면 같은 학교를 다니니 일부러 김밥을 준비하지 않아도 언니는 아침 5시에 일어나 김밥을 말고 7시면 부릅니다.

"김밥 싸 놨으니 가져가서 통에 싸서 보내고 남은 건 아침으로 먹어" 그럼 감사한 마음에 가져와서 아이들 싸서 보내고 남은 김밥은 아침으로 먹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8층 언니 덕분에 아이들 키우면서 김밥을 별로 싸 본 기억이 없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죠.



저는 비 오는 날 김치전 부치는 선수입니다.

지금은 김치전을 부쳐도 그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

동네 언니들도 제가 해주는 김치전은 예술이라며 김치에 오징어 들어간 게 다인데 참 맛있다며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김치전을 하는 날도 윗집 옆집 아랫집 모두 김치전 나눠 먹는 날이었습니다.

김치전을 한 양푼을 준비하고 부쳐서 우리 집에 함께 모여 김치전에 막걸리 나눠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렇게 아이들 어렸을 때 함께 하며 한 동네에서 정을 나누던 우리는 제가 제일 먼저 이사하고 그 뒤 한 명씩 그 동네를 떠나 각자 다른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8층 언니만 아직 그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 당시 그렇게 서로 위해주고 챙기며 살았는데도 지금은 1년에 전화 한 통 하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특별히 멀어질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각자 멀리 떨어져 이사한 지금 다시 특별히 만날 일도 없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시절 인연이란 모든 인연에는 시기와 때가 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시절 인연이겠죠. 한 시절 함께 웃으며 동 시간대를 살고 마음을 주며 지냈던 인연들이 지금은 이유도 없이 멀어져 볼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쩌면 우리의 삶은 모두 시절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많은 이웃들을 알게 되고 조금씩 소통을 해 나가면서 생각합니다. 지금 인연 역시도 한 시절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힘을 주고 의지를 하며 지내지만 또 어떤 계기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시절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또 헛헛해집니다. 분명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다 시기와 때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찬원의 시절 인연 음악처럼 

사람이 떠나간다고 그대여 울지 마세요.

오고 감 때가 있거늘 미련일랑 두지 마세요.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아아아 살아가야지 

바람처럼 물처럼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 인연.


오늘 김밥을 만들면서 10년이 지난 시절 인연을 떠올려 봅니다.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살아가야겠지요. 8층 언니의 그 맛있는 김밥 맛이 오늘은 너무 그립습니다.



텃밭에서 잔뜩 따온 쌈채소도 그때 같았으면 

서로 나눠먹느라 부족했을 테지만 지금은 나눠 먹을 수도 없으니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이사를 한 뒤에는 한 번도 아파트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가지지 않는 저는 아이들이 컸던 그 동네 그 복도식 아파트가 종종 그립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지금은 그런 정서가 아닌 걸 보면 분명 장소도 인연도 시절 인연이 있나 봅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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