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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5형제

by 말상믿


최근 KBS 드라마에서 방영되고 있는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라는 드라마를 잠깐 본 적이 있다. 드라마는 잘 보지 않지만 제목만 들어도 공감이 가는 얘기일 거라 추측이 된다.


일요일 형제들이 모두 모여 친정집 도배를 하고 왔다.

이 더운 날 무슨 도배냐 할 수 있지만, 독수리 5형제는 용감했다. 거실에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아침 9시부터 시작된 도배는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래야 거실과 방 하나 붙였을 뿐인데 하루 온종일이 걸렸다.


도배를 전문가 써서 하면 되지 요즘 세상에 무슨 고생인가 싶지만 나름의 이유들은 다 있다. 부모님댁에 살림살이가 있는 상황에 도배를 의뢰하면 짐들을 처리하기도 어렵고 부모님 상황을 무시한 채 진행하기가 어려워 차선은 무얼까 생각하다 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요즘 풀 바른 벽지도 잘 나온다는데 "일단 오래된 거실과 작은방 하나만 해보지 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도배가 일이 커졌다.


일을 벌이고 진행하는 건 난데 함께 한 형제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 나의 형제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며칠 전 친정 단독방에 "이번 주말 친정 도배 주문했음. 다들 시간 되면 함께해 줘"라는 문자에 여동생만 답장을 하고 다른 형제들은 답이 없어서 참석을 안 하려나 했는데 당일 오전 9시, 시간 맞춰 모두 참석해 준 형제들이다.


오십 대인 우리 세대에는 5형제인 집이 많다. 내 친구들의 형제들만 봐도 5형제인 집이 다수다.

나의 형제도 5형제다. 그중 나는 2남 3녀 중 딱 중간

언니, 오빠, 나, 여동생, 남동생. 크면서 딱 중간에 끼여 부모 사랑도 못 받고 이쪽 저쪽으로도 못 끼는 신세였다.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할까?

부모님, 형제들의 일과를 중간에서 가장 많이 공유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맞지 않을까? 물론 형제들이 생각하는 나의 위치는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친정 일이나 형제들의 중요한 사안은 나를 거쳐간다. 중간다리 역할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한 달 전 부모님 집에 화장실 리모델링을 해주고 나니 이번엔 도배가 문제다. 오랫동안 이사를 가지 않고 살아서 묵은 짐들도 많고 중간중간 필요한 곳만 교체하고 살아서 한 번 손을 데니 손 볼 곳도 많다.


다들 서둘러 나서지 않는 일을 나서서 일을 만든 건 나다.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도 이번 도배도 모두 내가 제안해서 시작한 일이다.


아빠가 초기 인지장애를 겪으면서 엄마 아빠 화장실 편하게 사용하게 해주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제안에 누구 하나 반기를 들거나 함께 하지 않는 형제가 없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움을 준다. 그래서 고맙다.


지금처럼 각자의 삶을 중요시하는 바쁜 시대에 우리 형제 역시도 다들 바쁘게 산다. 평소에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면서 연락도 자주 하지 않는다.


언젠가 남편이 "당신 자매들은 서로 시시콜콜 전화 통화를 자주 안 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넌지시 할 때가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장사를 하거나 기술직으로 먹고사는 형제들이라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그런데 친정에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형제들과 무언가 함께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평소 연락도 자주 하지 않고 지내는 독수리 5형제가 헤쳐 모인다.


신기하게도 각자 흩어져 있을 때는 약한 듯한데 모이기만 하면 결속력이 커지는 게 우리 5형제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접고 무언가를 응시하며 있을 때는 그 위엄이 잘 느껴지지 않다가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하면 어떤 사냥감도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위엄이 느껴지는 것처럼 5형제는 함께 만나면 시너지가 더 커지는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가도 그렇고 집안 대소사에 형제들이 모두 모여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아직까지 뭐하나 이해관계로 어려운 관계가 없고 각자 소신대로 부모님께 자식 된 도리를 하며 산다. 요즘같이 각자도생하는 시대에 이런 형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부모 형제 관계는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관계가 틀어진다. 누구는 이만큼 하는데 누구는 오지도 않고 부모님이 많은 자식 중 어떤 자식을 특별히 편애하거나 차등을 두면 관계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럼에도 우리 5형제가 지금 이런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각자 자신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며 노력하는 형제들의 덕분일 것이다.


평소 하지 않은 일을 하느라 몸은 고되고 힘은 들지만 누구 하나 불평불만 없이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헤어져 마음이 좋다. 다들 처음 하는 도배임에도 불구하고 "독수리 5형제 도배 팀 하나 만들어도 되겠다"라는 농담을 주고받는 형제들에게 마음이 간다.


떨어져 있을 때는 각자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가 모이면 어떤 그룹보다 결속력이 강해지는 독수리 5형제.

그런 우리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흐뭇해하시는 모습도 좋다.

"엄마는 좋겠네. 이런 자식들 있어서"

여동생이 엄마한테 생색내듯 건넨 말에 앞으로도 쭈욱 그랬으면 좋겠고 그럴 거라고 믿는다.


"독수리 5형제가 있어 참 좋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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