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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짜장면

by 말상믿


아빠를 생각하면 짜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빠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호불호가 분명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이건 좋고 저건 싫다고 표현하십니다. 그래서 뭔가를 해주기도 쉽습니다.


자식들이 어떤 선물을 줘서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다음날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으시지만 쓰지 않고 모셔둡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면 다음날부터 바로 쓰고 계시죠. 아빠는 좋은 물건 고급 옷, 메이커보다는 자신에게 실용적이고 편한 것을 제일로 생각하십니다. 물론 좋고 고급 지고 편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아빠는 위트가 있습니다.

심각할 때도 한번씩 웃고 가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어제 아빠의 건강 문제로 아침에 주간보호 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전 혈압이 떨어지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는 권유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주간보호 센터에서 아빠를 모시고 나오기 전 다시 혈압을 재었을 때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아빠도 괜찮다고 하셔서 입맛 없을 아빠를 위해 좋아하시는 짜장면을 사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 점심으로 짜장면 드실래요?

"짜장면 좋지"


항상 짜장면을 남김없이 맛있게 드시기에 한 번씩 친정에 갈 때면 짜장면을 먹습니다. 근처 짜장면 맛집이라며 맛있게 드시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짜장면을 반쯤 드시더니 그만 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입 짧은 아빠지만 짜장면과 팥죽만큼은 남기지 않고 드셨는데 입맛이 당기지 않았나 봅니다.


표현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불편하신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먹다 말고 마무리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나오시자마자 화장실을 찾는 아빠. 그래서 그랬구나.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짜장면을 드시는 아빠를 보면서 이렇게 함께 짜장면을 먹을 날이 얼마나 더 있을까? 짜장면과 팥죽을 보면 나중에라도 아빠 생각이 엄청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짜장면 드시는 아빠를 보니 왠지 나도 모르게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고 연로해져 지금껏 문제없이 살았던 방식대로 살고 싶지만 그런 것들이 이제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식사하시면서 기분 좋게 하시던 반주가 이제는 문제가 되기도 하고 딸과 점심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기분 좋게 한잔하시던 그 좋아하던 술을 이제는 딸이 사주지도 않으니 예전의 맛과 기분이 아니겠지요.


늙음이란 자연스러운 것이고 누구나 늙지만 부모님의 늙음이 마음으로 전해지니 조금은 서글퍼집니다. 그런 저에게 아빠는 뜬금없이 우리 딸은 올해 나이가 몇 살인가라고 묻습니다.


"아빠 나 몇 살 같은데?"

"우리 딸. 한 28살 됐나?"

"내가 28이면 아빠는 지금 몇 세인데?"

"나 나는 84세지."

"아빠 나이는 기억하면서 왜 딸 나이는 기억을 못 해?"

"뭐 나이를 깎아주는 센스는 좋네. 아빠"

"아빠 지금 내 큰 딸 다영이가 29인데 내가 28이면 안 되잖아요"

"나 보고 다시 생각해 봐요"

"그럼 우리 딸이 35쯤 되나?"


아빠가 보기에 딸은 늘 애들 같은가 봅니다. 아빠 나이는 그대로인데 딸 나이는 좀처럼 올라가지가 않습니다. 이제 얼굴에 주름도 늘고 생기도 없는데 아빠가 보는 딸은 여전히 한창때의 모습만 기억하고 싶나 봅니다. 연로해진 아빠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짜장면을 앞으로도 맛있게 드실 수 있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생각하는 한창때의 딸의 모습처럼 아빠도 나이는 드시되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은
안 보면 걱정되고
보면 짜증 나고
보고 돌아오면 받았던 사랑보다
서운했던 기억에
마음 없이 뱉었던 말이 후회되고
몇 날 며칠 마음이 찜찜하다.

자식은
안 보면 걱정되고
봐도 걱정되고
왔다 돌아가면 해준 건 기억이 안 나고
못해준 것들에 빚쟁이 마음처럼
몇 날 며칠 마음이 미안하다.
- 미라클디자이너 -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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