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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작은 나로부터

by 말상믿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지고 새벽에도 지속적으로 깊은 잠을 못 자고 뒤척이게 되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시작한다는 게 사실은 힘든 일이다. 오십이 되면 겪고 싶지 않은 갱년기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 아직은 본격적인 갱년기가 시작되지 않아 주변에 친구들이나 언니들이 겪는 갱년기를 100%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시기이므로 좋은 습관을 갖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마다 순탄하게 보내는 사람도 있고 심하게 앓느라 우울증에 무기력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아직은 갱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지만 한번 오면 다분히 힘들게 겪을 것 같은 느낌이다.



24살 11월 15일의 악몽


"남들 하는 거에 반만 하고 산다고 생각하세요" 내 나이 24살에 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단 한 번도 내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는 결혼을 일찍 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와 시댁에 친정에 인사드리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피곤해서 잠깐 잠든 사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일이 일어난 후였고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며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순식간의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삼중 추돌! 교통사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정신을 깨어보니 남편은 연실 내 손을 움켜잡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나는 그날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냥 들었을 뿐. 내가 기억하는 그날 사고는 입원 후 하루가 지난 다음날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만의 고통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허리뼈가 으스러지고 부러져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때 나는 임신 5개월이었다. 교통사고로 심한 충격을 받아 허리가 부러졌는데 다행히도 아기는 심장소리를 쿵쾅대며 잘 버티고 있었다. 나의 고통은 뒤로한 채 충분히 놀라고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준 아기에게 너무 고마워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나와 달리 남편도 의사 선생님도 표정이 안 좋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설명을 했다. 내 허리를 수술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방사선검사를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수술치료를 하기 위해 약물도 써야 하는데 이런 검사들이 태아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기형 확률을 50%는 생각하고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못 들은 걸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 실려오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조치 없이 내가 정상적인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구나를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입원 첫날 남편의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웠는지 알게 되었다. 차라리 지금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나는 나에게 닥친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감정이 북받쳐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힘들었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하루를 꼬박 눈물로 지새우며 눈이 퉁퉁 부어 떠지지 않을 때까지 울다 울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나로 인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낳을 용기가 없었다. 그것이 50%의 확률이라고 해도 어찌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기를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겠는가? 어찌 엄마가 살자고 아기에게 그런 고통을 평생 안기고 살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유를 모르고 태어난 장애도 부모는 평생 가슴에 한이 될 텐데 나로 인해 어찌 그런 업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확률이라도 어찌 그런 확률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나는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고 1차 수술 산부인과 2차 수술 신경외과로 내 마음과 정신이 모두 내동댕이 쳐진 상태로 나는 나를 포기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지만 진정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눈물만 흐르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반쯤 있었나?



수술받고 몸 회복이 늦어 고통스러울 때마다 나는 깃털을 상상하곤 했다. '깃털처럼 가볍게 훨훨 날아 아기가 있는 저곳으로 가고 싶다' 그렇게 깃털을 상상하면 조금은 몸이 가벼워지는 듯했고 조금은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퇴원이 결정되고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남들 하는 거에 반만 하고 산다고 생각하고 몸을 쓰라고 했다' 척추에 철심을 두 개 박고 로봇처럼 생긴 딱딱한 허리 척추교정용 의료기기를 차고 나는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는 나의 몸 상태보다 마음의 상태가 더 힘들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나는 지금도 척추에 철심을 고정한 채 한 몸처럼 살아가고 있다. 수술 후 몸속 철심을 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수술 권유가 있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다시 같은 수술대에 눕고 싶지 않았고 그날의 아픔. 미안함을 잊고 싶지 않았다. 내 나이 52! 그러니까 28년 전 일이다. 지금은 성인이 된 두 딸들로 그날을 많이 잊고 살지만 왜 그런지 11월 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는 감정 변화에 우울이 찾아온다. 결혼 후 계속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첫째 딸도 가을에 만났다. 처음 그런 일을 겪고 다시 만난 아이여서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지만 나만의 죄책감이었는지 나는 산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아이한테는 정말 미안한 일이다. 온전히 출생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그 마음으로 예쁜 첫딸을 대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 하는 일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미리 알았더라면 예전의 삶은 더 많이 달라졌을까?

요즘 내가 하는 생각이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죄책감과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사고 이후 허리 통증에 항상 힘들어했으며 몸 상태가 안 좋으니 감정 상태도 늘 예민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중년의 나이가 되고 몸이 안 좋아 직장을 다니다가 47살에 결심을 하고 다시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가정주부가 되었다.



사람을 바꾸는 방법에는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접고 5년이 흐른 지금 나는 시간을 달리 쓰고, 사는 곳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동안의 나와는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자신의 삶과 자기 자신을 개선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개선하려 하는 욕망과 욕구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의 같은 삶을 반복한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삶도 변하지 않는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달성할 수 있다.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면 삶은 반드시 나아지기 마련이라는 내용을 할 엘로드 《미라클 모닝》에서 읽은 글이다.



신기하게도 47살 직장을 다니면서 나의 수입이 끊기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힘든 몸을 이끌고 직장 생활을 하느라 체력이 바닥나 항상 가족들이 좌불안석했던 그때보다 지금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훨씬 안정되고 새로운 일상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남는 건 시간밖에 없었다. 한동안은 무력감에 힘들어하며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게 좋을까를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경제적인 수입도 필요했지만 혼자만의 시간과 무기력함이 싫어 더 직장 생활에 연연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5년 전부터 시작된 나의 시간은 시간을 달리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를 위해 매일 조금씩 시간을 투자하자고 마음을 먹은 게 그때부터였다.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하나씩 실행해 보고 관심 있는 주식과 부동산 책을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주식 책을 읽고 직접 주식거래를 해보고 부동산 책을 읽고 부동산 강의를 듣고 임장을 하고 부동산을 구입했으며 경매 책을 읽고 입찰을 해보고 더 나아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지금은 책 쓰기 코칭을 받고 있다. 어찌 보면 우후죽순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우고 한 가지 원씽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는 5년 전 보다 훨씬 성장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꿈꾸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은 자신이 선택한 관점을 따라오는 것이다.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선택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모르고 지금 알게 되었을까?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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