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의 마음을 잃지 마라

by 말상믿


내게 유독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순히 그가 좋은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내면에 나를 향한 좋은 마음이 가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소중한 그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묵묵히 우리의 삶에 따뜻함을 더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 숫자가 자꾸만 줄어드는 이유는
그들의 좋은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따뜻한 마음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끼고
되돌려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정한 마음이 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 노트 _ 김종원 -








아침 김종원 작가의 글을 읽고 필사를 하면서

나의 무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산다는 핑계로

나에게 다정한 관심을 보이고

상냥한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챙기지 않은 나를 반성해 본다.



좋은 마음에는

다정함과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줄 관심이 필요하다.

누구나 관심과 사랑은 필요하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하지 않던가.



좋은 말을 들으면 마음이 동요가 되지만

좋은 글을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평소 부모님이나 가족들을

잘 챙긴다는 말을 듣지만,

그 마음에는 사랑보다 책임과 의무가

더 많은 요인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랑 없이 책임과 의무만 가지고

누군가를 챙기거나 잘할 수는 없다.

분명 거기에는 사랑이 있지만,

책임감과 의무에 하는 마음이 커

사랑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온 나의 삶을 돌이켜 봐도

나는 주는 것보다 챙김을 받는 쪽에 가깝다.



남편에게 해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고

딸들에게도

손이 많이 가는 엄마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딸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로서

의무와 책임감으로 돌봤다.

물론 보이지 않는 사랑은 기본이다.



성인이 된 딸들이나 남편 또한

가정에 대한 엄마와 아내로서

의무와 책임, 성실함에 대해

나에게 불만을 갖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이 부분은 걸리는 게 없다.



그러나 스스로 마음에서

뭔가 모를 부족함을 느낀다.

다정하게 가족들을 챙긴다거나.

상냥한 마음을 전한다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다거나.



얼마 전 재미있게 보았던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에서도

애순의 엄마 광례가 애순에게 주는 사랑,

또 애순이가 큰 딸 금명이에게 주는

엄마의 사랑을 보고 느끼면서

나는 딸들을 키우면서

저런 애틋한 사랑이 있었나

그저 부모로서 엄마로서 책임과 의무에만

충실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사느라 바쁘고 지쳐

삶의 여유가 없었다 하더라도

엄마의 사랑은 어떻게든 표현될 텐데

우리 딸들은 그런 엄마의 사랑이

가슴 따뜻하고 애틋하게 기억나는 게 있을까?

기억난다면 어떤 때 느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딸들은 훌쩍 커 이제 서른이 다 되어가고

남편도 중년의 나이로 챙김과 관심이 필요한 나이다.



'내게 유난히 다정한 사람의 마음을 잃지 마라'라는

글을 보면서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가족에게 주는 사랑보다

받는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친구관계나 지인 관계에서도

그리고 SNS에서 마저도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본성은 잘 바뀌지 않는다.

주변을 봐도 유독 사람들을 잘 챙기고

잘 베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것보다

자신이 우선인 사람이 있다.



나는 둘 중 어느 중간에 걸쳐있는 것 같다.

유독 잘 챙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가 먼저인 사람도 아니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좀 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먼저 건네는 사람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딸들이 어려서 내 등에 업혀 잠들지 못할 때

<섬집아기> 노래를 반복해서 들려주며

불렀던 가사가 왜 갑자기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나마 엄마의 보이지 않는 사랑도 있었다고

그렇게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하는 마음도 충분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일까?



법륜스님은

남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자신 생긴 대로 살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다정하고 상냥하게 잘 챙기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들,

자신이 그렇게 생긴 걸 어떡하냐는 말씀에

'그렇지. 사람은 잘 안 바뀌지' 싶다가도

다정함과 세심함도 노력을 기울이면

지금보다 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표현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종원 작가의 오늘 글을 읽고 필사하면서

처음에는 이런 글을 쓰려고 한건 아니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결국 자기 고백과 반성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면성이 있다.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지만,


나의 또 다른 자아는

'넌 따뜻한 사람이야'

'그런 마음이 너에게도 충분해'라는 마음 또한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의식의 흐름이

자기반성으로 이끄는 건

무엇이 되었든 나의 의식하지 않는 기억 속에

그런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글을 읽고 마음에 닿는 글을

사색하며 글을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방향으로 흐를 때가 있다.



소원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가족과 주변에 더 신경 쓰며 살자.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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