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냐를 보면, 당신이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자넷 윈터슨-
낯선 곳에서 그것도 혼자만의 경험이 있는가?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걸 싫어하던 사람이다. 사람은 힘들어도 함께 지지고 볶고 하는 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한 번씩 용기를 낼 때가 있다. 그런데 혼자서 뭘 해보려고 할 때마다 꼭 원치 않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일행들과 산에 오르다 보면 기분도 좋고 운동도 되며 자연과 함께하는 그 순간순간이 좋다. 자주 다니고 싶지만 남편은 산을 좋아하지 않고 다른 일행들과는 일정을 맞추기가 어렵다. 가끔은 여자 혼자 산에 오는 사람들을 볼 때면 '뭐 저렇게 혼자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본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혼자 산에 가볼까? 그 사람들도 다 혼자 다니는데 별문제 없잖아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남편이 출근할 때 혼자 산에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분명 반대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냥 혼자 조용히 갔다 오자 생각하고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섰다.
오전에 약간 흐린 상태였지만 출발할 때 날씨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날씨 예보도 오후 3시 이후에나 비 소식이 있다고 하니 얼른 다녀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호기롭게 출발한 산행이 산 중턱에 오르고서야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입구에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중턱을 지나 내가 가려고 했던 코스에는 사람들이 없다. 그나마 자주 다니던 산이어서 길을 안다는 이유로 큰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혼자 산을 타는 적막함에 무서움이 몰려왔다. 때마침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올 때쯤 비구름이 몰려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소나기 같은 억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산은 곧 어둠으로 어두컴컴해졌다. 내려가야 할 길은 아직 한참인데 어디를 봐도 인기척이 없다. 비를 홀딱 맞고 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너무 무서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여기 산 중턱 어디쯤인데 사람이 없어"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캄캄해서 너무 무서워
"산 짐승은 안 나타나겠지. 어떻게..."
이쯤 되니 남편이 화를 내면서 노발대발 대는 소리도 정겹다. 비가 많이 내려 핸드폰 통신 상태도 좋지않아비에 젖을까 오래 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잠깐의 통화를 마치고 혼자 산에서 내려오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제발 사람이 나타났으면...'
'아니다. 이럴 때 사람을 만나면 더 무서운 건가?'
'그럼 어떤 게 좋은 거야?'
'아, 이러다 나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겠지'
사방이 어두워져 평소에 알던 길임에도 어디가 어딘지 혼돈이 왔다. 한참을 무서움에 몸을 움츠리며 내려오다가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 화들짝 놀랐다. 희미하게 보이는 두 분이 우비를 입고 다가왔다. 나이가 조금은 지긋해 보이는 일행 부부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나는 그 부부를 보자마자 인사를 하며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렇게 함께 내려올 수 있었다. 그날 집에 도착 후 남편한테 엄청 야단을 들었지만 그 소리가 마냥 기분 나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혼자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보통은 친구와 약속을 하고 영화를 보러 간다. 그러나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진 나는 갑자기 '영화나 보고 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아침 집안일을 끝내놓고 영화관을 찾았다. 평일 아침 10시 50분 무슨 영화를 볼지도 정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영화를 예매한 뒤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영화 시간이 다 되어가고 광고도 끝나 가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뭔가 분위기가 또 이상하다.
'뭐 금방 사람이 들어오겠지.'
'어, 그런데 왜 사람들이 안 들어 오지'
'아침이라 사람이 없나'
'음... 조금 있으면 들어오려나'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흑흑, 망했다. 난 또 혼자다'
영화를 보는 내네 영화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영화관 서라운드는 어찌나 크고 공포가 느껴지는지, 적막함과 서늘함에 또 무서움이 찾아왔다. 내가 앉은자리는 뒤에서 4번째였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뒤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날 산에서처럼 누군가를 만난다는 기대도 할 수 없다. 영화 상영 도중, 그것도 시작 전 없던 사람이 영화 상영 중간에 들어올 일은 만무하지 않는가? 지난번 산에서처럼 나를 구원해 줄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번째라 그런지 막연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 내 평생 이런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볼 수 있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겠어'
'독채 얻었다고 생각하자'
'이거 빌리려면 도대체 얼마가 들어야 빌릴 수 있겠나'
그러나 생각과 달리 여전히 무서움은 떨쳐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영화의 제목과 내용이 전혀 기억에 없는 거 보면 스토리는 없고 경험만 남았을 뿐이다. 그날 그 영화관은 나만 없었으면 그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겠지. 흑흑..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지막 가장 최근의 경험이다. 남편과 일본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가이드 안내를 받고 호텔에 도착하여 온천을 이용하려고 밤늦게 찾았다. 늦은 시간이고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함께 간 일행들이 있었고 먼저 온 사람들도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어 편안한 분위기였다. 온천을 좋아하는 나는 피로를 풀 수 있어 온천에 몸을 담그고 편안함을 느꼈다. 남편과 단둘이 간 여행이라 각자 따로 온천을 즐겼지만 나름 기분 좋은 편안함이었다. 다음날은 아침 6시부터 온천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전날의 편안함이 좋아 아침 일찍 6시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남편은 아침에 온천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혼자 갔다. 온천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전날과 달리 들어가는 입구가 바뀌었다. 일본은 남탕과 여탕을 하루에 한 번씩 바꿔서 이용하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어제 가이드에게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바뀐 입구로 들어가려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순간 당황은 했지만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들어갔다. 6시면 사람들이 그래도 있겠다 싶었는데 온천 내부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들어갈까 말까 몇 번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본다.
흑흑. 그런데 싸한 느낌이 오늘도 또 망한 것 같다.
어제 느꼈던 편안함은 온데간데없고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난다. 약간의 적막함과 서늘함도 느껴진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전설의 고향을 재미있게 봤을 것이다. 딱 전설의 고향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다.
막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 나는 주로 온천도 노천탕을 이용한다. 얼굴은 차갑고 몸은 따스한 그 느낌이 좋다. 주위는 어둡고 앞이 훤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 온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겨울 스산한 추위와 바람에 김이 휘감아 오른다.
'오늘도 또 온천을 혼자 전세를 내겠구나'
'너무 이른 시간에 왔나'
'어제 일행들도 많은데 한 분이 안 오시네'
잠깐 동안 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항상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이런 낯선 경험을 하는 걸까?'
'내가 뭐가 잘못됐나?'
'한두 번도 아니고 운명인가?'
약간의 무서움과 오싹함에 자리를 잡고 한 번도 움직이질 않았다. 조용히 탕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는 듯하다.
늦게라도 명상을 배운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겁은 났지만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다가 눈을 떠 하늘을 쳐다본다. 온천장 안의 시계는 6시 40분을 막 지나고 있다. 40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한 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날도 서서히 밝아오고 갑자기 눈발이 시작되더니 순간 함박눈이 나의 얼굴을 적신다. 온몸을 감도는 나의 혈류는 요동치고 나의 두 빰에 내리는 함박눈과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 행복이 별 건가?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인간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느끼는 오싹함이 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인간 심리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잘 아는 곳도 어둡거나 혼자일 때는 무서움을 느끼는데, 처음 가 본 곳, 경험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의 낯선 느낌은 여전히 오싹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낯선 경험에 낯설지 않은 날이 오기를 바란다. 여전히 나의 인생 경험은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은 적막함과 어둠을 마주하며 나를 조금씩 비워내고 이겨내는 나만의 자유와 마주한 시간이 될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삼세번의 경험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나의 또 다른 용기에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을 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