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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백보다 더 좋은 선물

by 말상믿

평소 들고 다니지 않았던 에코백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이제는 먼 거리 일정이 있을 때면 챙기는 필수품이 되었다. 여행을 하거나 집을 나설 때 왠지 빠지면 허전하다. 에코백 안에는 노트와 책 한 권 필기용품을 함께 챙긴다. 요즘처럼 전자제품이 좋은 시대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는 전자제품을 쓰기도 하지만 노트에 글을 쓰는 게 더 좋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을 때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핸드폰을 꺼내 노트 앱을 활용해 메모를 하기도 하지만, 쓰든 안 쓰든 이제는 들고 가야 마음이 편하다.


생각해 보면 책을 읽기 전에는 큰 백이 필요 없었다. 작고 귀여운 백에 카드와 핸드폰 소지품 몇 개 겨우 들어가는 백을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책을 보고 글을 쓰면서 이제는 큼직하고 편한 가방이 좋다. 작고 귀여운 가방들은 옷장 보관함에 들어가 빛을 못 보고 있다.


1년에 몇 번은 나를 위한 선물을 한다. 기념일에 책 교환권을 선물로 받을 때면 기분이 좋다. 얼마 전 결혼기념일 때의 일이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인데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하고 묻자 나는 고민 없이 바로 "책사게 돈으로 주면 안 돼?"라고 했다. 남편은 의아해하며 "다른 와이프들은 이렇게 물어보면 명품 백이나 고가 의류를 얘기한다는데 당신은 겨우 책을 산다고?" "응, 나 명품 백 필요 없는데, 사봐야 들고 다닐 때도 없어""그것 들고 텃밭을 갈 거야, 동네 마트를 갈 거야""그것도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돈값을 하고 보여줄 맛이 나는데 나는 보여줄 데가 없는데.."


명품 백은 여자들의 로망이다. 그것도 젊은 여자들에게는 특히 더 그럴 것이다. 나 역시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저런 가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고,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좀 사나 보다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도 한때일까? 그렇게 예뻐 보이던 명품 백이 이제는 마음속에서 시들해졌다. 갖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남편이 기념일에 사준다고 해도 별로 들고 다닐 일도 없다. 나이가 들면 좀 더 우아하게 그런 백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다가도 이내 콧방귀가 나오는 것 보면 지금 나에게는 필요 없는 목록이 된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웬만한 커리어가 있는 여성분들은 얘기가 다를 수 있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저 그런 가방이 되어 버렸다. 물론 어디에서 뚝 떨어진다면 당근 땡큐하고 받겠지만 굳이 그 돈을 들여가면서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싼 명품 백은 아니지만 나의 옷장에는 준 브랜드 가방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1년에 한 번 쓸까 말 까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1년에 한두 번 쓰고 보관하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요즘은 명품 가방으로도 재테크를 하는 시대라고 하니 너무 뒤떨어지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좋은 것들은 빛을 발해야 좋은 것이지 한두 번 쓰고 보관만 하는 것은 글쎄, 지금 나에게는 명품 백보다 예쁜 에코백이 더 좋은 이유다. 각자마다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이건 온전히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남편에게 받은 현금으로 책을 구입하는 날이면 나는 최고의 선물을 나에게 받는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이날 만을 기다리는 거다. 물론 급하게 구입하고 싶거나 바로 보고 싶은 책은 그때마다 구입하지만 장바구니에 관심 있었던 책 목록을 찜 해놓고 한 번에 받는 선물도 나름 기분이 좋다.


언제가 친구하고 등산을 하면서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책 선물을 한 번씩 하는데 한 번에 읽을 책이 많이 오면 나는 그렇게 흡족하다고 말을 하니 친구는 읽을 책이 많으면 마음이 답답하던데, '이걸 언제 읽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나는 한 권씩 사거나 빌려 보는 게 좋던데'라고 해서 빵 터져 웃은 적이 있다.


같은 책을 봐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처럼 책을 쌓아 놓고 읽어도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처럼 읽을 책이 많은 것보다 지금 당장 읽어야 하는 책 한 권이 마음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좋은 책을 가까이에 두고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두고두고 한 번씩 찾아볼 수 있어서 좋고 책 표지만 보고 있어도 그 책이 주는 내용을 한 번 더 상기시킬 수 있어서 좋다.


명품 백은 살 때는 부담스럽고 들고 다닐 때는 기분 좋고 보관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책은 살 때는 기분이 좋고 읽을 때는 모르는 걸 알아서 좋고 책꽂이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흡족해서 좋다.



나를 위한 선물 - 혼자 보내는 시간이 소중한 이유

선물은 대체적으로 타인에게 주거나 받거나 하는 대상이 있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선물인 것이다. 나는 1년에 몇 번 책을 선물하는 것 말고도 오십이 된 나에게 선물을 준다. 그것은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경험이다.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산에 가고 여행을 간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나를 위한 선물은 나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시간을 선물한다는 것, 그것은 주도적으로 내가 내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시간을 미리 정하고 그 시간을 쓰는 것하고 시간이 있으니까 뭐든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 하고는 분명 다르다. 주도적으로 내가 나를 위해 시간을 선물한다는 것, 생각해 보면 꽤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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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혼자 무얼 하면 외롭고 조금은 지질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하려고 했고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고 조금은 두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지낼수록 인생이 더 단단해짐을 느낀다. 혼자 사색하고 책 보고 글 쓰고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영화 인 타임은 모든 비용은 시간으로 거래가 된다는 내용이다.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팔뚝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사람들은 음식을 시간으로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시간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13자리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노동으로 시간을 사고 친구에게 빌리기도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남의 시간을 훔쳐야 한다. 반면 부자들은 죽지 않고 몇 세대에 걸쳐 시간을 갖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시간으로 거래된다는 설정도 놀랍지만 부유한 상류층들의 시간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열심히 살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한 하층민들의 시간이 다르다는 설정도 가슴을 쑤셨다. 매일 아침 자신의 남은 시간을 보며 충분한 양의 시간을 벌지 못하면, 더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눈을 뜬다면 어떨까?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내가 알던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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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똑같은 24시간이 주어진다. 어떤 이는 항상 바쁜 일상으로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고 어떤 이는 그런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자신의 성장의 시간을 갖는다.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각자 다른 시간을 쓰고 있다. 영화 인타임처럼 오늘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시간이 없어서 바로 죽게 된다면 나는 또 어떤 시간을 살고 싶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라는 나의 한 문장을 만들었다. 저마다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삶이 영원하지도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시간을 쓰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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