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읽은 책을 필사하고 필사한 글을 사색하며 나의 생각을 적는다는 것을.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시를 노트에 적고 그림을 그리며 시를 외웠다. 일부러 외우려고 해서 한 행동은 아니지만 몇 번씩 노트에 적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가 외워졌다. 그때는 그것이 필사인 줄 모르고 좋아하는 시가 그저 좋아 노트에 적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푸시킨의 "삶", 서정윤의 "홀로서기" 수많은 시들을 노트에 적으며 그림을 그렸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나 역시 글쓰기를 좋아했던 사람 같다. 세월이 지나고 삶에 무게에 잊혀 살았지만 내 삶 속 어딘가에 그 감성이 남아 있었나 보다.
김종원 작가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를 처음 필사하고 그 이후 3권을 더 필사했다. 필사한 책만 4권이다. 필사하며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한번 루틴으로 생각한 것은 거의 매일 실행하려고 한다. 갑작스러운 일들로 중간중간 필사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만큼은 필사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필사하는 마음과 같다고 말하면 핑계가 되려나.
24년 4월 23일 김종원 작가의 책으로 시작한 필사는 총 4권의 필사로 이어졌다. 남편과 나의 블로그를 보는 지인들이 한 번씩 묻곤 한다. 왜 김종원 작가 책만 필사를 하느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필사를 시작하게 해 준 인연이 있고 김종원 작가의 책을 필사하면서 뭔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글의 편안함과 좋은 글을 읽으며 사색하는 시간이 좋았다. 김종원 작가의 필사 책은 다양하다. 평소 하지 못한 생각과 사색을 갖게 해 준 고마운 책들이다.
내가 필사한 책은 괴테, 니체, 연암 박지원의 말에 김종원 작가의 해설을 읽고 마음에 새기며 필사하고 거기에 나의 생각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글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적는다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지금은 좋은 글을 읽고 작가의 해설과 생각을 읽고 난 뒤 나의 생각을 적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물론 지금도 나의 생각을 적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단순히 좋을 글을 읽고 필사로 끝나기
보다는 나의 생각이 부족하고 형편없더라도 필사 후 꼭 나의 생각도 함께 기록한다.
어제부로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 노트> 100일을 마쳤다. 그동안 써온 필사 노트를 다시 꺼내 보니 감회가 새롭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0일만 해보자 생각했던 것이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시작할 당시에는 필사가 주는 힘을 믿기보다는 좋다고 하니까 일단 시작해 보자 하고 시작했다.
그러나 필사를 하면서 느낀다. 책을 읽고 필사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이렇게 책을 읽고 사색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나이 탓이라 할 수만은 없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그 책에 대한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의미만 생각하더라도 필사는 나의 기억력을 높여주는 좋은 도구가 되어 주고 있다.
거기에 단순히 좋을 글을 읽고 필사로만 그쳤다면 아쉬운 점이 남았을 텐데 나의 생각까지 적어 놓은 필사 노트는 그 글을 읽을 때의 나의 감정과 생각 등을 한 번 더 느끼게 해 준다. 많은 글을 읽고 필사하다 보면 잊어버린 듯하나 다시 보면 그때 느꼈던 나의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른다.
필사는 책을 정독하며 읽게 된다. 읽은 내용을 필사하고 다시 소리 내어 읽는다. 거기에 나의 생각까지 풀어쓰려면 필사하는 시간보다 나의 생각을 기록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읽은 책이 기억에 더 잘 남기도하고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김종원 작가의 필사 책은 그런 점에서 나에게 좋은 시간이 되어 주었다. 평소 하는 생각은 나의 생각의 틀을 넘지 못한다. 매일 비슷한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김종원 작가의 괴테, 니체, 연암 박지원의 좋은 글을 소개하며 작가의 해설을 읽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을 때면, 나는 나의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사색을 해야 한다. 가끔 이해가 안 되는 글들도 있었고 반박하고 싶은 글들도 있었다. 많은 공감을 불러오기도 했으며 이런 시간을 갖게 해 준 김종원 작가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김종원 작가의 필사 책은 다양하다. 지금도 필사하고 싶은 책이 많지만 잠시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필사를 하다 보니 잠시 다른 곳에 눈이 가는 요즘이다.
한 달 전 <토지>를 읽기 시작했다. 지금 5권째 읽고 있는 중이다. 이번 토지를 읽으면서 토지책 중간중간 다시 읽고 싶은 문장에 대해 필사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 시대의 상황과 풍경 묘사, 인물에 대한 세세한 표현들,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특색 등을 밑줄 그으며 읽는 것을 넘어 필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권 20권을 읽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에 필사까지 하려니 조금 걱정도 된다. 기왕지사 시작한 거 막상 읽기 시작하니 벌써 5권째 읽고 있다. 좀 더 집중해서 읽고 싶은 생각도 있고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들을 기록하며 한 번 더 내용을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다. 이미 읽은 5권은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천천히 하고 앞으로 읽어 나가는 책은 그날 기록하고 싶은 문장을 필사해 볼 계획이다.
이제는 필사가 나의 삶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루 30분에서 1시간가량 필사하는 시간은 나의 기억력을 되살려 주고 사색할 시간을 준다. 몇 개월의 프로젝트가 될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토지> 책 전권을 읽고 멋지게 필사를 마치는 날을 상상해 본다.
박경리 작가는 <토지> 집필을 시작하고 26년 만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1년 정도의 독서와 필사 시간은 나에게 분명 소중한 시간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그동안 김종원 작가의 책 필사를 시작으로 4권의 책을 필사하고 이제는 루틴으로 자리 잡게 해 준 김종원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토지> 책 필사를 마치고 다시 김종원 작가의 책을 마주할 때는 또 다른 생각과 색다름이 느껴질 것이다.
책을 읽고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면 필사를 시작해 볼 것을 권한다. 김종원 작가의 필사 책은 필사하기 좋은 글과 깊은 사색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필사를 하고 싶은데 무슨 책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첫 시작으로 김종원 작가의 필사 책이 좋다고 생각한다.
"필사하길 참 잘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