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토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전권을 읽은 사람도 드물다.
<토지> 장편소설은 우리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누구나 알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드물다.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드라마를 통해 일제 강점기 때의 우리나라 상황을 그려낸 대하소설로 서희와 길상이라는 주인공 정도를 떠올리며 봤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박경리 <토지>가 갑자기 읽고 싶어진 이유는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특강> 책을 읽고 나서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5년 전이지만, 주로 자기 계발서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다 보니 자연히 문학책이나 역사, 인문, 고전, 철학서는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럼에도 나의 책꽂이에는 들으면 알만한 문학 전집과 두꺼운 책들이 많다. 구입 시기는 최소 10년이 넘은 책들로 이제는 색까지 바래 오래된 책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읽지 못하고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읽고 싶은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음에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지만,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 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추천 도서를 읽었다면 지금은 내가 읽고 싶은 책, 흥미가 가는 책 위주로 읽게 된다.
나는 귀가 얇은 편인 것 같다.
나의 주장도 강하지만, 어떤 정보에는 분명 약한 편이다. 그 정보를 주는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신임이 두터운지에 따라 더욱 그렇다.
얼마 전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특강> 책을 읽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토지>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의 권유로 책을 읽는 것보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집중하기도 좋고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에 책을 쓴 작가라면 박경리 <토지>는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직도 낯선 작가라는 타이틀에 한발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 『어떤 책과 친구가 되려면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시간이 들지만 손으로 베껴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런 책 목록을 제안하기에 앞서 우선 세 권을 소개한다. <토지>와 <자유론><코스모스>다. 이 책들은 두세 번이 아니라 열 번 정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어휘를 늘리는 동시에 단어와 문장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즐기고 읽힐 수 있는 책으로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글을 읽자마자 검색하기 시작했다.
유시민 작가가 권하는 책들은 사실 나에게는 한번 읽기도 어려운 책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 부심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 권장하는 <자유론>과 <코스모스>는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보유하고 있다. 물론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자유론은 읽을 때마다 졸렸고 코스모스는 너무 두껍고 내용이 어려워 읽다가 포기했다. 읽지도 못하면서 가지고 있다는 것에 약간의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 보면 속물근성이 느껴지지만 그것도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나름의 위안을 삼는다.
그렇게 검색하고 고민에 빠졌다. 읽고 싶어서 산 한 권짜리 책도 지금껏 읽지 못하고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20권이나 되는 전권을 사놓고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올해가 가기 전 읽어보자 마음이 생기는 건 내 마음 어딘가에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랄까.
책도 읽다 보면 다양한 장르에 눈 뜨게 된다. 처음 책에 관심을 가질 때만 해도 자기 계발서가 좋았고 흥미로웠다. 지금은 세계문학이나 고전에도 마음이 간다. 시간 나면 읽고 싶어 몇 달 전 구입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책도 대기 중인 책이 여러 권이다. 지금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독서하는 시간으로 쓰고 있지만,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여전히 읽지 못한 책은 더 많다.
그렇게 <토지> 전권이 내게로 왔다. 검색을 통해 전권을 사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근에 '박경리 토지 책'을 검색했다. 내가 사는 동네(수원)는 만화 토지책만 나와있다. 그나마도 겨우 5건 정도가 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년 전 살았던 동네(화성 향남)에는 있을까 하고 검색했더니 내가 원하는 거래가 있다. 한 달 전에 올린 내용이라 부랴부랴 공장에 있는 작은딸에게 연락을 하고 거래 의뢰를 부탁했다. 톡을 보내고 3분도 안 돼서 거래가 성사됐다. 그렇게 <토지> 전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한 페이지도 읽지 않은 것 같은 새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 책을 산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살 때는 꼭 읽어야지 하고 호기롭게 샀지만,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다시 중고로 내어 놀만큼 전권을 다 읽는 데는 무리였을까? 아니 1권을 읽기도 어려웠을까? 책은 말 그대로 새 책이다.
그래서 <토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읽는 데 성공한 사람은 드문 책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전권 20권을 다 읽는 데는 보통의 끈기를 요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전권을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쉽게 시작하기도 어렵다. 읽는 도중에도 읽고 싶은 책은 계속 생겨나 다른 책으로 갈아타야 되나 유혹할 테고, 읽다 보면 책을 덮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전권을 구입한 이유는 언제고 마음먹었을 때 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책은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읽고 싶은 책은 넘쳐나는데 읽고 싶다고 다 읽지도 못하는 것이 책이다. 시작도 전에 서론이 길다. 책꽂이에 좋은 자리를 마련해 꽂고 보니 마음이 흡족해진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지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그 역시 시작하기 힘들까 봐 바로 연결해서 함께 읽기 시작하려고 한다.
언젠가 두꺼운 책 도전기로 토니 로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 처음 도전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책을 산 사람 중에 1장을 넘긴 사람은 10% 이상인 사람인 것이다."
두꺼운 책이라 선뜻 시작했어도 책을 다 읽은 사람은 10%도 안된다는 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책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처음으로 두꺼운 책을 도전해 다 읽고 앞으로는 두꺼운 책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주었던 책이다.
앞으로는 토지가 그럴 것이다. 읽는 내내 재미와 어려움이 반복하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끈기를 시험해 보고 싶다.
대하소설 <토지>는 1969년 9월 집필을 시작했으며 1994년 8월 15일에 완성했다고 한다. 무려 26년에 걸쳐 완성한 대단한 작품이다. 어떻게 26년 동안 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 수많은 세월을 생각해 보면 읽는 것도 편하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 <토지>를 만나다. 한 번에 읽으려고 욕심부리기보다는 다른 책도 읽어야 하므로 매일 1시간씩 <토지>를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책을 다 읽은 날 '박경리 <토지> 전권을 읽고'라는 글로 다시 만나고 싶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