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꼭 자신의 이득이나 바람이 있어야 유지가 되는 걸까?
법륜스님은 인간은 다 이기적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얻을 게 있어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유지되지 자기가 손해 보는 장사는 하기 싫어한다고 했다. 그것이 가족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고민 상담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가 아닌 상대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모두 자신의 걱정뿐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잘못되면 어떡하나, 자식이 안 좋은 길로 가면 어떡하나, 부모님이 저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그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라는 말에 부정하기 어렵다.
남편이 잘못되면 나는 어떻게 사나, 자식이 안 좋은 길로 가면 그걸 어떻게 보고 있나, 부모님이 저러다가 내가 힘들어지면 어떡하나 하나같이 자신의 걱정을 하면서 상대방을 위하는 척한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인간의 본성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에 그 역시 고개가 끄덕여진다.
몇몇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 일어나는 문제가 자신에게 어떤 문제로 연결될까를 걱정하며 현실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마음에 사랑과 걱정과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아끼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통 늦은 시간에 오는 전화는 받지 않거나 무음으로 되어 있어 못 받는 일이 많다. 그 친구를 안 본 지도 25년 정도 되었다. 작년에 내 책이 나오면서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한번 했던 게 다다. 늦은 저녁 그것도 평소 연락을 하지 않던 친구에게서 온 전화는 뜻밖이었다. 전화기에 찍힌 이름을 보고 잠깐 생각했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늦은 저녁에 전화하는 이유가 궁금해 전화를 받았다.
간단한 안부와 12월 시간이 되느냐는 말을 물었다. 이유인즉슨 30여 년 전 첫 직장인 사람들과 12월 초에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되면 함께 했으면 한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날 약속이 있다고 못 갈 것을 얘기한 뒤 대화를 이어갔다. 사실 그날 약속이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니다. 지금 만나는 모임에서 연말 모임을 6일로 할지 13일로 할지 아직 논의 중이며 결정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나도 모르게 약속이 있다고 말하는 나를 보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첫 직장이라고 하지만 25년 동안 연락 한번 하지 않고 지내다가 모임 한다고 나가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고 사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만남 자체가 무의미하다 느껴졌다. 첫 직장은 나에게 큰 틀에서는 좋은 직장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청춘을 보냈고 남편도 만났다. 기억에도 그리 나쁜 이미지는 아니다. 다만 함께 근무했던 부서를 생각하면 다르다.
전화 한 친구는 나와 같은 부서 단짝이었다. 귀엽고 예쁘장하고 애교가 많은 이 친구는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 친구가 그렇게 하는 것도 있지만 외모에서 풍겨오는 이미지도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이 친구를 좋아했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친구가 좋았다. 유머러스해 함께 있으면 즐겁고 웃을 일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와의 문제라기보다 부서에 함께 있는 언니가 문제였다.
어떤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나를 따돌리려고 했고 이 친구만 노골적으로 예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점심시간에도 같은 사무실에 있는 나에게는 냉하게 대하면서 다른 사무실에 있는 이 친구에게는 일부러 전화해 같이 밥먹으러 가자며 챙기곤 했었다. 신경 쓰지 않는 척, 대범한 척했지만 늘 마음 한편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지금 지난 얘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그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 척 까맣게 잊고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싸늘함이 느껴진다. 그때만 해도 직장 왕따라는 말이 유행하지 않을 때였다. 그저 맘 상하고 무시당하고 노골적으로 감정이 상해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 언니의 성향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때 왜 그렇게 나를 대했는지.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직장 친구들 결혼에 아이들 돌잔치에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언니와의 마음의 숙제는 풀지 못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항상 그 따돌림을 당할 때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 늘 생각해 보지만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 피해자는 늘 가슴에 남는다. 문제는 가해자는 자기가 가해자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면서도 회피하고 싶은 것일 수도.
2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는지는 모르지만 새삼스럽게 25년 동안 연락 한번 하지 않고 지냈던 사람들을 무슨 연유로 만나자고 하는지 이 친구의 제안이 낯설고 어색하다. 그것도 이 친구 역시 그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단둘이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그때 그 사람들과 함께 만나자고 하니 만남이 그리 싶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가볍게 만나서 지난날을 얘기할 수 있는데 내가 너무 선을 긋고 얘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예전 같으면 이런 전화를 받으면 '그럴까, 한번 볼까'라며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나도 궁금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5년 전 관계였다고 해도 그 이후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의미조차도 없었던 사람들을 지금 이 나이에 굳이 만나서 다시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좋은 감정이나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나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 만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렇듯 사람은 이기적인 것이 맞다. 지금 그들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도 즐거움도 줄 것 같지 않으니 약속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거나 어떤 이득을 주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갑작스러운 약속이 반가웠을지 모른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일부러 내서 만남을 가지려 할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관계가 어떤 이득만을 위해 연결되지는 않는다. 때론 손해도 보고 이익도 보고 더 많은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관계에 있어 마음의 정도를 따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긴 세월 나의 삶에 함께 해온 사람들을 신경 쓰기도 힘든 일상에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한 사람들까지 기억을 되짚어 만남을 이어갈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는 않나 보다. 오랜만에 잊지 않고 함께 만나자고 전화해 준 친구의 마음에는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을 선뜻 받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나 보다.
관계에도 일정 기간이 유지된다. 모든 관계에는 시작과 끝도 있다. 한때 친했고, 함께 보낸 시간이 있어 만나면 과거 이야기에 대화가 이어지고 추억을 나누다 보면 그 관계가 다시 유지되는 듯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과거의 이야기로 미래를 이어갈 수는 없다. 나의 좋은 기억으로 오랜만에 생각나 연락 한 친구와의 인연이 더 깊어지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참 인간관계는 쉬운 듯 쉽지 않다.
관계는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 한 번의 만남으로 금방 꽃을 피울 것 같지만 다음 해에 다시 그 꽃을 보기 위해서는 적절할 때 물을 주고 좋은 양분을 주고 쉼 없는 발걸음으로 보살펴야 더 좋은 꽃으로 피어난다. 아름다운 정원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