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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상믿 Jul 01. 2024

나는 나일 때가 가장 멋지다


비교하는 삶은 꼭 나쁜 걸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남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나의 자식을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고 나의 남편, 나의 부모, 나의 환경, 나의 능력,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비교하며 살아간다. 아닌 듯 아무렇지 않은 듯하지만 속으로는 속상하고, 괜찮다 위로하지만 기분이 다운되기도 한다. 친한 친구인데도 그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 그래도 나는 이만하니 다행이다 생각이 들기도 하고 친구의 딸이 좋은 직장 들어갔다며 자랑을 하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내 자식은 언제 좋은 직장을 구하나 하며 또 비교한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일에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며 인간이 갖는 기본적 본능이라 해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비교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비교는 긍정적인 비교보다 부정적인 비교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사는 것도 사실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 각종 SNS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의 일상을 보게 된다. 보고 싶지 않아도 계속 지인들의 카톡 프로필이 바뀌고 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남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스타 사진에 보이는 한 컷이 그들의 온전한 모습이라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한 장 컷에 열광하고 지지하며 자신의 삶과 비교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은 너무 최적화되어 있고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다. 예전에만 해도 초등학교 친구가 뭘 하고 사는지, 옛 직장동료가 어디에 사는지, 첫사랑 남자친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한 다리 건너 내가 알려고 노력만 하면 어떻게든 알아지는 세상이고, 알고 싶지 않아도 알려주는 세상이다.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라'라며 우리는 흔히 얘기한다. '비교하는 삶은 불행하다'라며 비교를 나쁘게 얘기한다. '비교하지 말라'라는 뜻은 아마도 자기보다 잘난 사람한테 기죽지 말고, 잘난 사람을 보면 좋은 점을 배워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일 텐데 이 또한 말로는 쉬운 일인데 마음만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좀처럼 어렵다. 중요한 것은 비교하는 것 자체보다는 그 비교하는 방법이 문제임을 아는 것이 더 현명하다.



얼마 전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너는 생각해 보면 늘 열심히 살았어'하는 친구의 말에 '그렇지, 난 참 열심히 살았지'하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욕심 많은 나는 늘 앞만 보고 살았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과 사귀려고 노력했고 배울 것이 있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늘 아래보다는 위를 보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한참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울 때는 많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보다 더 큰집에 사는 친구가 부러웠고 더 나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내 남편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는 아는 언니가 부러웠고 전문 직종에 종사하며 전문가가 된 모든 이들이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아내의 높은 기대와 욕심에 맞춰 주고 사느라 옆에서 나름 힘들었을 사람은 남편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그런 나를 뭐라 하거나 나의 욕심을 탓한 적이 없는 남편에게는 고마울 따름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부러워도 괜찮다. 비교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나를 부정으로 이끌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온전히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비교는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조금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교는 부정적일 때는 나를 힘들게 하며 자존감을 잃게 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일 때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한다.


나는 부자가 부럽다. 전문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전문가가 된 사람이 부럽다. 건강한 몸매를 가진 사람이 부럽고 사회에 좋은 기부를 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부럽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부러운 건 나쁜 게 아니다. 마냥 부러워만 하고 나는 왜 그렇게 될 수 없는가를 자책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거기까지 가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꾸준하게 끈기와 열정을 발휘했는지를 생각하면 비교는 부정이 아닌 긍정이 된다.


꽃은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나는 큰딸 덕분에 자주 꽃 선물을 받는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때때로 자주 나의 기분을 업 시켜 주는 꽃 선물을 주곤 한다. 어느 날 가만히 꽃을 들여다보며 드는 생각이 이렇게 예쁜 꽃들은 종류도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너무 다양한데 어찌 이리 조화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열정의 장미는 장미여서 이쁘고 순수한 하얀색 카네이션은 카네이션 이어서 예쁘다. 향기 가득한 노란 프리지어는 프리지어라 이쁘고 그 꽃을 빛나게 해주는 작은 풀잎들이 있어 더 싱그럽다. 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수국과 왁스플라워는 한자리는 차지하지 못하지만 빈 공간을 채우며 나름의 은은한 멋을 내고 거베라는 세상모르고 하늘을 치켜들며 나 여기 있소 해도 밉지 않다.



꽃은 꽃 자체로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생각해 보면 인간 세상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꽃들로 가득한데 꽃은 어울리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있어도 잡음이 없다. 그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열정적으로 피었다 질뿐이다. 가시 달린 매혹적인 장미꽃, 순수하고 가냘픈 바람에도 흔들리는 코스모스,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벚꽃, 어디에 피었는지 눈에도 잘 안 띄는 야생화, 종류도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른 이 꽃들은 그저 다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인간의 마음으로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쁨을 그저 평가할 뿐이다. 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고귀하듯이 작은 화병에 각자 자신의 향기를 뿜으며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뽐내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자신만에 아름다움을 찾아갈 수 있는 삶의 여유를 느끼며 살고 싶다. 꽃처럼 좋은 향기가 나는 그런 나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나일 때가 가장 멋지다

지금 이 생에서 어떤 배움을 얻는가에 따라 우리는 다음 생을 선택한다. 아무런 배움도 얻지 않는다면, 그다음 생 역시 똑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삶의 이유는 없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인용구이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지금 다시 뒤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지 남이 살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것이다. 비교하며 살든 비교를 당하며 살든 내 인생을 사는 것이지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비교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껏 그래왔으며 비교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받으려고 노력했고 크게 열등감을 갖거나 우열을 가리고 살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나로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갖기보다는 그렇게 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며 살았다.'너는 참 열심히 살았어'라는 친구의 말에 '그렇지. 난 참 열심히 살았지'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도 그저 나로 사는데 정신없이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오십의 나이에는 이제껏 살아온 나보다 좀 더 나로 사는데 치중을 할 뿐이다. 비교는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고 타인과 함께 하는 공동 사회에서 모든 세상과 차단하고 살지 않는 한 비교는 있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이치를 받아들이고 남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저 하면 될 뿐이다. 긍정적인 행동은 그런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보다는 나의 할 일을 우선적으로 하게 해주는 자극제가 된다.


그리고 남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리 관심이 없다. 나 역시도 많은 일들을 금방 잊어버리고 살지 않는가? 그것들이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며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남이 주는 상처보다 자신 스스로가 주는 상처와 열등감이 더 크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 비교되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사는 것은 결국 나를 알고 남을 인정하며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는 나일 때가 가장 멋지다. 그런 나를 인정하는 때가 바로 지금 나이 오십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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