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이 오면 하는 대표적인 집안일 하나가 이불 교체다. 봄까지 쓰던 순면 이불에서 여름 인견이불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몇 년 전 큰맘 먹고 구입한 인견이불이다. 전에 쓰던 이불을 그동안 오래 써서 새 기분으로 바꿨다. 그런데 인견이불이 왜 그런지 몸에 안 맞고 불편하다. 가슬 가슬한 느낌도 별로고 온몸을 깜 싸는 느낌도 가볍지가 않다. 결국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시장에서 싸게 구입한 인견이불 보다 못하다.
'에이 이불 잘못 샀네'
'감촉도 그렇고 편하지가 않아'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제값을 참 못하네'
그렇게 하루 이틀 써보고 이내 다시 썼던 이불로 바꿔 여름을 난다. 새로 산 이불은 다시 세탁을 해서 이불장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두 번의 여름이 가고 또다시 여름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작년에 느꼈던 그 감촉은 잊은 지 오래다. 비싼 돈 주고 산 이불이 아까워 자꾸 눈에 걸린다.
'아까운데 한 번 더 바꿔볼까'하고 다시 꺼내 든다. 이불을 다 바꾸고 저녁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다.
'어. 느낌이 조금 달라졌네' 작년에 느끼던 그 불편한 이불이 아니다. 고슬고슬한 감촉이 왠지 모르게 몸에 편하다. 잠자리에 들려고 누워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니 그것은 세월이다. 두 번의 세월 동안 세탁을 하고 건조기를 돌려 처음 뻣뻣한 느낌이 아닌 조금은 부드러운 까실 거림으로 바뀐 것이다. 더군다나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내가 조금은 익숙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다. 참 이불 하나도 내 몸에 맞추는데 3년의 시간이 걸리는구나 싶다. 이 사소한 것도 세 번의 바뀜이 있고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데 사람은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3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남편이 지금은 너무 좋다. 갈수록 더 좋아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술 먹고 들어와 씻지도 않고 잠든 남편이 너무 싫어 매일 바가지를 긁었고 코 고는 소리가 유독 컸던 남편 때문에 잠을 잘 못 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도 있었다. 그런 시절을 겪어 낸 세월이 30년 가까이다. 남편은 많이 변하고 바뀌었지만 지금도 가끔은 술 먹고 안 씻고 잠들기도 하고 코 고는 소리가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코를 곤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세월 때문인지 익숙해진 탓인지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씻지 않고 잘 때는 '에구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하고 코를 유난히 고는 날이면 옆으로 살짝 몸을 돌려주고 나면 또 그런대로 괜찮다.
이불 하나도 내 몸에 익숙해지는 데 3년이 걸리는데 하물며 사람의 연이 나와 익숙해지는 데 30년 걸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이제는 코를 골아도 가끔은 안 씻고 잠을 자도 옆에 없으면 허전한 남편이다. 한 번씩 일로 출장을 갈 때면 허전하기 그지없으니 참 사람의 정이라는 게 이리도 무섭다. 뭐든 물건도 사람도 새로운 것을 나한테 맞추는 데 오래 걸리는 나는 뭐든 편함이 좋다. 그런 편안함을 추구하는 내가 한 가지 다른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은 호기심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움은 새로움이 좋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에 흥미를 느끼고 그 흥미가 나를 도전하게 만든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너무 익숙하고 편안한 것만 찾는다면 성장이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생각해 보면 물건도 남편도 인생도 처음부터 마냥 좋은 것은 흔치 않다. 그냥 잘 사는 것이다. 살다 보니 그것이 내 것이 되고 나한테 맞춰지고 내 인생이 되는 것이지 특별히 더 노력한다고 더 빨리 더 좋게 나한테 맞춰지는 게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그에 맞는 적당한 세월이 지나니 소중한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살자. 작은 것도 누리고 있을 때 소중함을 알아야 새로운 것도 소중함을 느끼며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간장도 익혀야 제맛이 난다는 옛말이 있다. 나처럼 몸에 익은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뭐든 나에게 맞춰질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좋은 것은 흔치 않다. 적어도 내 경험상은 그렇다.
말년에는 고생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절로 흔든다. 누구나 사람들은 자신의 말년복, 말년 운이 좋기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인생의 중반 정도의 나이를 먹고 뒤돌아 생각해 보면 말년 운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결과가 중년 이후의 복을 만든다는 생각이다. '태어날 때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라는 빌 게이츠의 명언이 생각난다. 나는 지금 부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명언에는 이견이 없다.
사람에게는 인생의 흐름에 따라 초년, 중년, 말년 운이 있다고 한다. 명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초년 운이 좋다고 해서 말년 운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타고난 운도 분명 있지만 운이라는 것은 무조건 타고난 것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 말년 운이 참 좋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렇다면 말년 운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보통 사람들은 젊을 때는 정신없이 사느라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러다가 중년의 나이가 되면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생긴다. 초년은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았다면 중년부터는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말년 운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주로 생활습관, 태도 인간관계 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말년 운이 좋아지려면 중년의 삶을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알아가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삶을 이끌어 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좋은 점과 고쳐야 할 점을 정확히 알고 장점은 키워나가고 단점은 노력해서 개선해 나가려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은 운이 좋다고 말하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운이 운을 부르고, 돈이 돈을 부른다는 얘기가 있다. 초년 운은 모르겠지만 중년 이후의 운은 확실히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의 생활습관과 태도, 사고방식 등이 중년 이후에는 자신의 인생에 확실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좋은 운도 나쁜 운도 결국 자신의 긍정적인 생각과, 자기 암시, 좋은 것을 끌어당기는 법칙들이 일정 부분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젊어서 고생을 무지하게 한 사람들이 중년 이후 자수성가해서 대성한 사람들이 많다.
결국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말년 운이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 좋은 운을 만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사주팔자나 명리학 관점은 잘 모른다.
나는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지만 중년 이후의 나의 삶은 좋은 운으로 편안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의 생활방식과 태도 나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다. 최소한 타고난 운은 어찌하지 못한다 해도 내가 이끌고 헤쳐나가야 할 운은 스스로 좋은 운을 끌어당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초년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면 중년 이후의 삶은 빛을 발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어떤 운이 네게 왔을 때 진정으로 운을 잡을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는 멋진 삶을 사는 오십이고 싶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