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수많은 별들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우주의 당당한 구성원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 맥스 에흐만 -
가끔은 내가 나를 얼마나 알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낮 동안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궁금했던 나만의 질문을 가족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있잖아 엄마가 잘하는 게 뭐라고 생각해?"
"어, 갑자기"
"엄마, 엄마는 잘하는 거 많지."
"정리수납도 잘하지, 요리도 잘하지, 화초도 잘 키우지"
"그래..."
"그럼 엄마 취미는 뭐 같아?"
"엄마 오늘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엄마 취미를 엄마가 몰라?"
"우리 엄마는 운동 좋아하지, 책 읽기 좋아하지, 식물 기르기 좋아하지"
"아 참 요즘 하나 더 추가가 됐네. 엄마는 글 쓰는 것도 좋아하지"
"엄마 고민할 것 가지고 고민을 해야지"
"엄마같이 누가 봐도 삶과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이 그런 걸 왜 물어?"
갑자기 큰딸이 나에 대해 거침없는 답변을 하자 나는 당황스러웠다.
낮동안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순간 무안해졌다.
공자가 말했다. "그 사람이 하는 바를 보고, 그 말미암은 바를 관찰하며, 그가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살핀다면, 그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 〈논어〉〈위정〉 -에 나오는 말이다.
가족들은 너무 당연한 듯 질문에 대답을 바로 한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가족들의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남편도 딸들도 하나같이 고민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요즘 관심사, 나의 생각까지도 고민 없이 대답을 해준다. 한편으로 나를 잘 알아주는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나를 나는 왜 모르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면 알면서도 뭔가를 확인받고 싶었던 것일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전에는 나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고 그동안 해 왔던 일일뿐 특별하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젊은 시절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나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 나는 누가 봐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만이라면 자만 일 수도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건강상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면서 가정주부로 지내다 보니 나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온전한 나를 알고 나를 찾는다는 것이 지금의 나로서는 선뜻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족들의 반응에 힘입어 한 번 더 질문을 했다.
"그럼 엄마의 직업은 뭐라고 해야 할까?"
"ㅋㅋㅋ 엄마! 엄마는 엄마의 직업이 뭐라고 생각해?"
"응. 엄마? 가정주부."
"그래 바로 나오는데 뭘 물어봐요?"
"엄마 혹시 가정주부가 싫은 거야?"
"뭐 다른 거 불리고 싶은 직업이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왜. 요즘 글 쓰니까 작가님이라고 불러 드려요?"
큰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은 나였다. 가족들은 연실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나는 생각이 또 많아졌다. 딸의 말처럼 정작 가정주부의 네임보다 나는 다른 무엇을 추구하고 싶었던 걸까?
늘 나의 삶을 노력하며 살아왔고 성장을 꿈꾸며 배움을 실천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오십이라는 나이를 먹고 보니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의 커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나만 모르는 나를 오롯이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나의 생각과 그날의 감정과 지금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까지도. 가족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은 다시 생각해 봐도 조금은 우습다. 나도 모르는 나를 가족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질문이라고 물어봤으니. 물론 가족들의 대답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그런 계기로 다시 나를 뒤돌아 보게 되었으니까.
블로그 이웃 천명을 넘긴 날 나는 나의 블로그에 '말상믿'을 소개합니다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단순히 나의 생각과 일상을 적는 글을 쓰다가 처음으로 이웃들에게 나를 알리는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내가 아닌 남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포괄적으로 나 하면 떠오르는 게 있지만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나를 대표하는 것들을 소개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스스로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 진정한 소개를 할 수 있고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솔직한 소개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소개를 해야 남들도 글을 보면서 그 사람을 공감하지 않을까?
내 인생 오십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진지하게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가끔 나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물었던 적이 있다. 친구에게 '네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참 어려운 질문을 어렵지 않게 잘도 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얼마나 대답하기가 어려웠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조금 상습적인 데가 있다. 뜬금없이 나를 나 아닌 주변 친구나 가족들에게 묻고 대답을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자신 스스로 자신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니 남에게 대답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존감이 높은 상태에서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그런 질문을 할 때에는 친구나 가족에게 나의 정체성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물어본 의도가 다분한 질문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내가 나를 돌아본다. 이 나이를 먹고 이제야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는 시간을 갖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은 남에게 물어본 나를 스스로 찾고 있는 것이다.
참 많은 변화다. 그 변화에는 책 읽기와 블로그 글쓰기가 있다. 생각 없이 하던 말들도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을 다듬고 정리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말을 할 때도 그리고 생각을 할 때도 한 번씩 다시 묻게 된다. 여기에서 줄여야 할 말은 무엇이며 지금 내가 하는 생각 중에 쓸데없는 생각과 고민은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어쩌면 자신이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오십 이전에는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경제적인 이유로 싫든 좋든 일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동시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지가 고민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름 시간이 많아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좋다가도 그런 여유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자칫 우울증이나 무력감에 빠져 갱년기를 심하게 앓기도 한다. 그런 오십의 나이에는 의도적으로라도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나에게는 책 읽기와 글쓰기다.
오십은 나만 모르는 나가 아닌 나를 알아가는 오십으로 채워가기 좋은 나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