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생각

내가 러닝을 좋아하는 이유

by 말상믿

하루 종일 날이 궂다. 창문 밖으로 멀리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마치 유령도시처럼 뿌연 미세먼지로 덮여 시야가 흐리다. 미세먼지는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보면 그 정도가 확연히 눈에 드러난다. 날이 쾌청하고 맑은 날은 먼 거리의 풍경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반면 오늘처럼 날이 흐리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은 도시의 형체마저 모습을 감추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침부터 종일 날이 흐리다. 휴대폰 안전 문자에는 연일 퇴근길 눈, 비로 지역에 따라 살얼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문자와 건조, 강풍으로 인한 산불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자다.


날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나의 기분이 상당 부분 호전되고 좋아졌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씩 이런 날씨에 의해 기분이 영향을 받을 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감성이나 감정이 노력해도 한 번씩 찾아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침 시작부터 그런 기분이었던 건 아니었다. 분명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 복근 운동과 확언까지 마치고 활기차게 시작한 아침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가라앉고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니 왠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오전 내내 그런 기분에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 되고 멍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본다.


그런 기분을 이겨내고자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다운된 기분을 금방 전환하기에 러닝만큼 좋은 것은 없다. 특히 장거리 러닝인 마라톤을 뛰고 나면 더 좋다. 물론 이런 날 나를 이겨내지 못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되는 날도 있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라 사실 이런 날 러닝을 뛰기에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다운된 기분을 이겨내고 싶은 나의 의지라고 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날씨 탓인지 러닝을 뛰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일단 집을 나서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치고 뛰기 시작하면 단 몇 분 만에 방금 전 느꼈던 다운된 기분과 날씨 탓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숨이 가빠 오고 심장박동이 느껴지고 다리에 무게가 느껴지지만,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비로소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보이던 도시의 풍경은 흐리고 미세먼지로 가득해 기분마저 우울하게 만들지만, 천변길 러닝을 뛰다 보면 그깟 날씨는 아무렇지 않다.


겨울 풍경은 추위에 잔뜩 움츠리고 자연도 숨죽이며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천변에서 열심히 헤엄치며 먹이를 찾는 청둥모리 새끼들이 미소 짓게 한다. 천변에 얼어붙은 작은 얼음조각들을 보기도 하고 다른 계절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징검다리마저 정겹다. 볼거리가 풍부한 계절은 아니지만 겨울 특유의 자연을 느끼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가라앉았던 기분은 사라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마저 생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 일과를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글 쓰고 달리고 혹은 수영을 하고 독서를 하거나 음악 감상을 하기로 유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도 러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만약 묘비명에 어떤 문구를 자신이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 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써넣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를 얘기하는 것은 내가 러닝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히 닮고 싶고 뭐라도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동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수영하고 책을 읽고, 이런 나의 루틴들이 꼭 누군가를 닮고 싶어서 노력하는 건 아니지만, 존경하는 작가의 루틴과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글을 쓰면서도 느낀다. 오전에 느꼈던 기분은 어디로 간 건지, 오늘은 15km를 목표로 하고 뛰었지만 뛰다 보니 22km를 뛰었다. 뛰기 전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뛰고 와서 씻으면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할 때는 힘들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뛰고 난 다음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 때문인지 러닝을 뛴 날은 어김없이 어떤 글이 쓰고 싶어진다.


몇 달 전 신청해 놓은 3.1절 풀코스 마라톤을 며칠 전까지 고민했다. 신청은 했지만 추운 날씨에 연습도 부족하고 다시 풀코스를 뛰려니 걱정도 되고 해서 이번 마라톤은 신청은 했지만 그냥 뛰지 말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 달리면서 다시금 희망을 가져본다. 지금부터 남은 기간 조금 더 연습해 한 번 더 뛰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내가 러닝을 좋아하는 이유다. 뭔가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없다가도 달리다 보면 새로운 기분이 들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준다. 뛰고 나면 성취감과 희열을 느끼게 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이를 생각해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러닝을 하려고 하지만, 하다 보면 어느새 도전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달리기의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그저 조금만 달려보자, 천천히 달려보자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막상 러닝에 매력을 느끼면 많은 사람들은 도전과 용기를 갖게 된다. 처음 시작은 5km로 시작하지만 금방 10km,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다른 운동과 달리 러닝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특히 장거리 마라톤은 더더욱 그렇다. 단체로 마라톤을 뛸 때도 시작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어느새 뛰다 보면 혼자 뛰게 된다. 서로 응원은 해 줄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을 이기는 게임에는 함께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성취감이 더욱 큰지도 모른다.


날이 흐려 기분이 가라앉아 그저 그런 날이 될 수도 있었던 하루를 러닝으로 자신감을 획득한 하루가 되었다. 나의 기분이 다운되었을 때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나를 일으켜 세우는 러닝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나에게 있어 근력운동이 나의 일상의 건강을 챙겨주는 비타민 같은 것이라면 러닝은 나를 충만하게 하고 자존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보약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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