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린다.
비가 내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듯싶다가도 습한 공기 때문인지 온몸이 끈끈해 마음도 가라앉는다.
엄마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내내 기분이 언짢다. 날씨 탓인지 엄마도 잔뜩 짜증을 부리며 전화를 받았고 나 역시 좋은 말로 조금 기다렸다가 오후에 해도 될 전화를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엄마 집에 불을 왜 다 끄고 가시는 거야? 아빠도 계시는데.. 불이랑 선풍기는 켜놓고 가셔야지 아빠가 답답하잖아'라고 약간의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당연한 짜증 섞인 말이 되돌아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니가 다 아냐? 맨날 전등도 안 끄고 물 틀어 놓고 선풍기도 안 끄니까 끄고 나왔지' 하신다.
'그렇다고 오늘 같이 어두운 날 아빠가 어두워서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인데 엄마는 뭐가 중요해?'
'엄마 집에 계실 때 불 계속 키고 계시고 더우면 선풍기도 하루 종일 키고 계시잖아? 그거 좀 안 끄는 게 뭐가 큰일이야!' 잠깐의 통화였지만 엄마는 딸의 짜증 섞인 전화를 기분 나쁘게 툭 끊으셨다.
아빠를 노치원에 보내고 매일 아침 나만의 루틴을 끝내고 나면 친정집 CCTV를 보는 일로 아침이 시작된다.
아빠 노치원(주간보호센터)을 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괜한 참견을 하게 되고 안 봐도 될 것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아빠가 나이가 들고 연로해지시면서 치매까지는 아니어도 치매 초기 증상인 경도인지장애를 겪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가족들을 알아보고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정도이기 때문에 CCTV를 보면서 전화 통화를 해도 충분히 케어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CCTV는 정말 좋은 시대에 좋은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것들에는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나마 좋은 점이 더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서 사용할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것들도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시대를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친정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신다. 엄마 아빠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단어라고들 하지만 나는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누구보다도 엄마의 힘듦을 알아야 하는 딸 들이지만, 그런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대표적인 딸이 바로 나다.
누군가는 엄마와 딸은 닮은 꼴이라고 한다. 부인하지 못할 얘기다. 나는 엄마의 딸이자 딸을 낳은 엄마이니 이 말이 더 인정될 수밖에.
나이를 먹고 보니 딸 셋 중 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딸은 언니 같다. 예전만 해도 언니는 아빠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가장 많이 닮아간다. 그런다고 나 역시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더 닮았나 생각해 보면 엄마를 더 닮은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엄마를 닮아가서 그런 걸까? 엄마의 모습을 보면 좋은 말보다는 안 좋은 말이 먼저 나간다.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비슷한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모습이 한편으로 오버랩이 되면서 싫은 모습을 보게 된다.
아침 CCTV를 보니 집이 깜깜하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MBC 뉴스에서 오늘의 날씨를 연일 보도하며 태풍과 비에 대해 얘기한다. 희미한 물체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듯하다가도 잘 보이지 않는다. 친정 CCTV를 보고는 있지만 될 수 있으면 보지 않는 것처럼 대하려고 하는데 가끔은 그게 어렵다.
10분가량 지켜보다가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집이 깜깜한데 불을 좀 켜고 있지 왜 다 껐어요? 더운데 선풍기도 틀고 있어요'라고 하자 아빠의 말씀은 '어차피 이따 다 꺼야 돼서 지금 꺼놓은 거야'라고 하신다. 물론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 아니면 어둡지 않기 때문에 평소처럼 불을 다 끄고 준비를 하고 계실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처럼 비가 오고 어두운 날에는 불을 다 끄고 있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정작 내가 불편한 것인지 아빠가 불편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아빠한테 전화를 했는데도 아빠는 여전히 불을 끄고 문단속을 하고 선풍기까지 끄고 계신다. 엄마가 나가시면서 아빠한테 10번은 잔소리를 하셨을 게 말하지 않아도 보인다. 늙으면 마누라 말을 제일 잘 들어야 한다고 늙어서 마누라 말 안 들으면 밥도 못 얻어먹는다는 아빠는 엄마의 말씀을 실행 중이다.
아빠와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엄마는 여전히 젊다. 물론 연세는 있으시지만 여전히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 하시고 자신이 집에만 계시면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하신다. 경제적인 것도 용돈 벌어 엄마가 쓰시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쓰시는 게 좋다 하여 사회생활을 놓지 않으신다. 그런데 이런 것도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를 고려하지 않는 엄마의 결정이 불만스럽지만, 또 그렇다고 엄마의 인생이니 뭐라 할 수도 없다.
딸이 엄마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한 용돈을 드렸으면 저런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아직 아픈 데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엄마여서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다.
CCTV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문제 역시도 신경 쓸 일이 없다. 보이지 않으니 목소리를 듣고 넘어갔을 일이다. 아침 엄마와의 짜증 썩인 전화 통화로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진정 편하고 만만해서 그냥 쉽게 툭 던지는 딸의 전화가 당연히 언짢았을 거다. 지금 상황에 제일 힘든 건 엄마 일 텐데, 괜히 아빠 걱정한다고 전화해서 뭐라고 했으니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 기가 찰 노릇일 거다. 그러니 '그렇게 잘하면 느그들이 다 알아서 해라'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도움을 준다고 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어떤 명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끔은 부모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부모가 아니어서 싫을 때도 있다. 그러나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자식이라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다 좋은 자식이지도 못하지 않은가? 싫든 좋든 바뀌지 않는 건 내가 그들의 자식이고 그들이 나의 부모라는 것은 팩트다.
아빠를 좋아한다고 아빠 편만 드는 딸은 엄마 입장에서 보면 가장 서운해할 대상이다. 나 역시도 딸이 둘이나 있다. 딸들이 엄마가 아닌 아빠 편만 든다면 서운할 마음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그것도 지난 세월 두 부부가 겪은 수많은 역사와 부부간에 풀어야 할 많은 이해관계가 있는 노부부를 단순히 딸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괜히 아침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끊어서 인지 마음이 편치 않다.
비 오는 날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구름 역시도 실시간 성난 모습으로 움직인다. 가끔 천둥이 치지도 한다.
지금 엄마의 마음이 저러실까?
이렇게 엄마가 읽지 못하는 곳에 장문에 글을 쓸 게 아니라 짧은 몇 마디라도 문자를 드려야겠다.
내 자식들이 해 주기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 - 소크라테스 -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