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체력단련 시간에 어쩌다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춘천마라톤에 함께 나가자는 동료들의 이야기에 솔깃해서 생전 처음 풀코스를 완주해 보기로 마음을 먹은 터였다.
평소에도 10km 정도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뛰는 터라 하프코스에는 별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하프코스가 일찍 마감돼서 10km나 풀코스만 가능하다기에 입회비 5만 원이 아까워 덜컥 풀코스를 뛰어야겠다는 엉뚱한 결정을 해버린 거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통상은 나이가 들수록 고생보다는 편안함이 더 당겨야 정상인데 말이다. 어쨌든 돈 아까워서 풀코스를 뛰어야겠다는 이상한 결정을 매우 비이성적으로 해버렸다.
아침체단시간, 시간이 조금 지나 용사들은 4km를 뛰고 다음 체단 코스로 다들 이동하고, 지구력이 좋지 않은 새로 온 신병만 간부와 함께 6km를 뛰고 있다. 얼마 지나 이 친구들이 코스에서 사라지고 나니 온전히 나 혼자다. 결국 왕복 2km인 구보 코스를 10바퀴 반 조금 넘게 혼자 뛰었다.
42.195km의 딱 절반, 21.1km를 간신히 조금 더 넘겼다. 처음 시작은 체단시간에 늘 뛰던 대로 6km를, 조금 지나서는 아무 생각 없이 주례로 뛰는 10km를 뛰었다. 이쯤 되니까 놓쳐버려 아쉬운 춘천 마라톤 하프코스가 생각났다. 동시에 20km를 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후회한들 뭐 하랴. 이미 몸은 달리고 있는 걸. 결국은 정확히 하프코스를 뛰어야겠다는 굳은 각오를 끝으로 10바퀴에 멈추지 않고, 반바퀴에 반을 더해 마저 온전한 하프코스를 뛰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상쾌하다고 해야 하나. 어찌 됐든 나름의 만족감으로 위병근무자들과 첫 기쁨을 나누고 부대에 들어와 지통실에 도착.
아아, 이런 된장! 점심이 전투식량이란다. 결국 난 집무실에 있던 베지밀 3개로 점심을 대신했다. 2주 전에 있었던 전술훈련평가 사후검토 답변 준비를 오전 내내 야무지게 하겠다던 본래 목표와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깽뚱한 목표를 달성해 버린 채, 난 17시까지 오후 내내 사단 사후검토에 참석해야 했다.
사후검토를 무사히 마치고 나오다 춘천 마라톤을 함께 나가기로 한 동지와 준비일정에 대해 비장한 대화를 나누려는 순간, 풀코스도 마감됐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길 들었다. 정말 어이 상실이다.
이렇게 나의 무모한 도전은 막을 내렸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난 새벽부터 '마라톤'이라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하고 있고, 여기저기 가능한 스케줄을 찾고 있다. 못다 한 미련일까. 어찌 됐든 전에는 겁이 나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던 마라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이 무모한 호기심과 객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인생의 한 순간, 그것도 불혹의 40대 중분에 무언가 도전하겠다는 열정과 무모함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문득 22년 전, 딱 내 인생의 절반인 22살 생도 3학년때의 또 한 번의 엉뚱한 도전이 생각난다. 1학년을 골탕 먹이려고 신청한 철인 3종에 결국 혼자 출전해 가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분대 1학년이 볼링결승에 올라 경기시간 중복으로 혼자 나가게 된 철인 3종의 악몽.
사이클, 수영, 완전군장구보. 마지막 완전군장 구보가 20km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뛰다가 두 번 정도 쥐가 났다. 분대 2학년과 볼링결승을 마치고 뒤늦게 도착한 1학년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쥐 난 다리를 주물러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화랑관에 돌아와 그때 먹었던 왕뚜껑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돌이켜 보니 현재의 난 44살에 엉뚱한 하프코스 완주를, 그 하프인 22살에는 웃지 못할 철인 3종 완주를 했다. 이제는 다들 100세 시대라고들 하니 난 아직 인생의 전반전(하프)을 뛰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 보니 쉽지 않은 인생의 굴곡이 있었다. 실수투성이의 무모하고 엉뚱한 도전이 많았지만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다.
정말 어쩌다 인생이다. 인생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