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오늘도 이유를 모르는
삶이라는 선물을 부여받고
수많은 즐거움과
수많은 괴로움을 일상으로 만나노라면
어떤 날은 해소할 수 없는 고통을 부여잡고
꾸역꾸역 삶의 밥알을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깊이 모를 바닥까지 고통이 차오를 때
물레방아 물이 넘쳐 바퀴를 돌리듯
한 바퀴 돌아 비워내면
그쪽이 아니라고
가야 할 길은 그쪽에 있지 않다고
영혼이 몸부림친다.
얼마나 돌았을까?
얼마나 닳았을까?
한 구석 헤어질 때까지 돌고 나서야
괴로움을 흘리며 비움이 이야기한다.
모든 생은
깨달아야 할 숙명을 지고 있다고
안전이 결핍이라 보호가 숙명이 된 자
가난이 결핍이라 돈이 숙명이 된 자
채움이 결핍이라 비움이 숙명이 된 자
결핍이 많아 깊이가 된 자
그 깊이를 담아낼 곳 없는 나는
글에다 나를 묻고
어떤 이의 결핍은
숙명을 앓으며 어딘가에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