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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10. 2022

겨울02-엄마 어릴 적에

엄마 어릴 적에

엄마 어릴 적에     


  겨울 방학. 잦은 산책과 대화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는 요즘이다. 딸을 다섯이나 낳고 막내 외삼촌을 얻으셨다는 외할머니. 아들 귀한 집이었지만 엄마는 귀염받고 자란 셋째 딸이다. 늘 고생은 첫째 이모, 둘째 이모가 다 하셨다며 미안해하시는 엄마. 그때 당시로는 정말 드물게 유치원도 다니셨단다!      


“유치원에서 집에 혼자 가긴 멀어서 늘 누군가 어른이 데려다줬거든. 하루는 친구 이모였던가? 나랑 같이 가 주시다가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지?’ 하고 자기 갈 길 가버렸어. 근데 꼬맹이가 길을 어찌 알아. 길 못 찾아서 한참 헤매고 울었지.”

“아이고, 무서웠겠네. 유치원이 집에서 많이 멀었어요?”

“뭐 그리 멀었겠어? 꼬맹이 걸음이니 더 멀게 느껴졌겠지.”

“그럼 외갓집에서 엄마 유치원 가는 길까지를 그려볼까?”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며 엄마 동네 지도를 그리기로 했다. 물론 처음에는 연필로 스케치. 엄마도 대충 여기쯤 뭐가 있었어…였다. 그리다 보니 또 일이 커지고…^^; 엄마가 직접 스케치에 참여하기도 하고, 종이도 커지고, 엄마의 설명도 구체적이 되어간다. 결국 동네 지도 그리기는 엄마 추억 캐내기가 되어 이런저런 엄마 어릴 적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 그때 같은 반 남자애가 무언가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잖아? 어쩌다 보니 주먹다짐까지 했더랬어.”

“와~ 우리 엄마 억울한 건 못 참나 보다. 겁도 많고 무지 소심한 엄마가 남자애랑 치고받기까지 했다고? 무슨 일이었는데?”

“몰라, 그런 건 기억도 안 나. 난 머리가 나쁜가 봐.”

“에이, 그런 말씀은 마시고. 원래 딱 중요한 것만 기억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결국 내 잘못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는데, 그놈이 분이 안 풀렸는지 나중에 우리 집까지 쫓아와서 내 머리를 곡괭이로 찍었어.”

“네???? 그건 살인미수인데? 그걸 그냥 뒀어요? 학폭을 떠나 범죄인데...”

“몰라. 그때 그런 걸 알았나. 머리에서 피 콸콸 나서 외할머니가 약쑥 빻아서 붙여주고.. 병원 갈 형편은 안되고.. 그래도 어찌어찌 낫긴 했어. 그래서 머리가 안 좋아졌나.”     


  얼마나 아팠을까, 온 식구가 얼마나 놀라고 속상했을까. 게다가 말끝마다 따라붙는 머리가 안 좋다, 재주가 없다 소리는 정말 듣기 싫다. 들을 때마다 좋은 기억 잘 남길 수 있게 엄마랑 이런저런 추억 많이 만들어야지 싶다.     


“여기 살던 00이가.. 수류탄을 잘못 만져서 터져 죽었어.”

“응? 갑자기 웬 수류탄?”

“그 집 지붕 수리한다고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도와주는 동안, 애들이 그 집 앞에서 모여 놀고 있었거든. 근데 6.25 때 초가지붕 사이에 수류탄이 떨어져 있었나 봐. 낡은 지붕 볏짚 교체하는데 그 수류탄이 굴러 나와서 마당에 떨어진 거야. 근처에서 놀고 있던 5~6살 아이들이 호기심에 그걸 집 앞 나무 밑에 가져가서 돌멩이로 치고 놀다가 폭발한 거지. 함께 있던 아이들, 집안에서 일하던 어른도 한 명 죽고.. 옆집 아들도…”

“엄마야, 놀랐겠다.”

“몇 명이 죽었는데 그때 막내인 네 외삼촌이 그 또래였거든. 그 녀석이 안 보여서 울며 불며 작은 이모랑 찾으러 다녔어. 다행히 삼촌이랑 다른 친구 두 명만 냇가에서 놀고 있어서 무사했어. 별 탈 없이 놀고 있는 삼촌을 발견하고는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낡은 수류탄이 동네 꼬마들 눈에는 좀 희한하게 생긴 돌멩이 정도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옛날에야 애들이 가지고 놀 것이 돌멩이, 나뭇가지 뭐 이런 것밖에 없었을 테니 왜 그걸 가지고 놀았냐고 아이들 탓을 할 수도 없었을 게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 번에 그만큼의 사상자가 났으니 얼마나 참혹했을까. 엄마랑 이모는 삼촌이 사라져서 또 얼마나 놀랐을까. 엄마가 전쟁세대, 혹은 전후세대라는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은 사건이다. 틈만 나면 “빨갱이 놈들 나빠… 전쟁은 무서운 거야. 요즘 사람들은 전쟁 무서운 줄을 몰라.” 하시는데 너무 어렸을 때라 전쟁 당시의 기억은 없더라도, 직접 이런 일을 겪으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여기는 외할아버지가 나 기다리던 곳이었는데. 명절 즈음이면 ‘언제 오나’하고 기다리다가... 그때 오토바이 사고 때도 나 기다리다가 여기서 사고 나고 돌아가셨지.”     


  외할아버지는 마을 어귀에서 뺑소니 오토바이에 치여 돌아가셨다. 나중에 범인을 잡기는 했지만 선하디 선한 외할머니는 보상금 요청도 못 하시고, 한술 더 떠서 앞날 창창하게 젊은 사람 인생 어찌 망치냐고 뺑소니범의 선처를 요구하셨다고 한다. 그게 아마 내가 초등... 아 양심에 찔려서 ‘초등학교’ 4-5학년 때 쯤인 것 같다. 학교 가을 운동회를 나 혼자 간 기억. 그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였다. 그리고 한동안 엄마는 해골 더미 속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난다며 악몽에 시달리셨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도 그리다, 이야기하다, 고치고를 반복했다. 별거 없어 보이는 마을 지도 하나 그리면서 듣게 된 엄마의 추억 이야기가 몇 년 치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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