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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10. 2022

겨울01-월동준비

월동준비 

월동준비 1

  

  몇십 년을 김치 안 담그고 살았는데… 나 어릴 적에는 김장은 아니고 한 번에 서너 포기 정도 필요할 때 조금씩 만들어 먹었고, 엄마 나이 드시면서는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김치는 사 먹곤 했다. 큰이모 살아계실 적에는 종종 얻어오기도 하고, 사 먹기도 하고. 엄마가 김치 안 담그는 거 아는 친구분들이 주시기도 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마 김치값이 매우 비쌌던 거 같다. 딱 입맛에 맞는 김치 찾기도 힘들고) 엄마가 슬쩍 운을 떼신다.     


“김치를 좀 담아볼까?”

“김치? 해보죠 뭐.”     


  미국에 여행 갔을 때 방을 빌려줬던 호스트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김치가 궁금하다 해서 미국에서도 배추김치를 담갔고, 아빠 편찮으시던 시절, 병원 밥이 입맛에 안 맞아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위해 열무김치며 배 깍두기도 해다 날랐던 나다.(물론! 인터넷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지만..^^;). ‘내가 먹을 거 내가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절임배추를 주문했다. 그동안은 엄마가 힘들어하니 안 했을 뿐이다. 내가 하자고 하면 엄마도 구경만 할 리가 없으니까 엄마가 무리하는 게 싫었던 것. 엄마가 도전하겠다 시면 하는 거다~^^ 사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채소 씻고, 다듬고 배추 절이고 하는 준비 과정이 힘든 일의 다니까. 편하게 절임배추 10kg 주문! 무 3개 갓 한 단과, 김치하고 나서 먹을 수육 재료로 아롱사태도 사다 놓고 엄마와 나의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무 다 써야 한다니까요~”

“아냐, 너무 많을 거 같아.”     


  엄마도 여기저기 물어보셨는데 엄마가 생각한 양념 분량과 내가 검색해 본 양이 달랐던 것. 결국 중간쯤 분량으로 김칫소를 만들었는데 좀 모자라긴 했다. 마지막 몇 포기는 양념 그릇 박박 긁어서 약간 하얗게 버무려짐. 어쨌거나 크나큰 월동준비를 마치고 수육을 해서 맛있게 냠냠! 밖에 김치 사 먹으면 젓갈 맛이 많이 나는데, 집에서 만든 김치는 젓갈을 거의 쓰지 않아서 깔끔하게 됐다. 김치 몇 통 담아 놓으니 부자가 된 기분~ 근데 그러고 나서도 뒷정리다 뭐다 해서 한참을 움직였고, 결국 엄마랑 나랑 둘 다 자리 깔고 뻗어버렸다. 둘이 눈이 마주치고 주고받은 한마디.     


“내년엔 그냥 사 먹자. ㅎㅎㅎ”    

 

  그 이후로 한 달쯤 뒤 여러 곳에서 김치를 보내 주셨다. 엄마의 지인분들은 역시나 우리 집이 김치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하신 경우가 많았던 것. 갑작스레 김치 부자가 되고, 아, 김장을 좀 빨리했구나 싶고, 올겨울 먹거리는 걱정 없겠네~!


 
 * 그림이야기: 김장하는데 파란 대야라니... 그간 얼마나 김치를 안 담고 살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튄 고춧가루는 붓에 물감을 묻힌 뒤 손으로 튕겨 표현해 봤다. 대야 밖까지 튀어버리긴 했지만 나름 자연스러운 듯~



월동준비 2

  TV에서 백종원 아저씨가 시래기로 만두를 빚는다. 김치로 만드는 것보다 군내는 나지 않고 깔끔한 맛이라고~   


“엄마, 김치는 아까우니까 우리도 시래기 만두나 만들어볼까?”

“에이, 힘들잖아.”

“만두피 사면 되지 뭐. 엄마 파는 만두 안 잡숫잖아. 지난주에도 만두 먹고 싶다 했잖아. 만들자~”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엄마는 돼지고기를 안 드시기 때문에 시판 만두를 먹을 수 없다. 가끔 채식 만두를 사 먹기는 하는데 그게 또 그리 맛있는 맛은 아닌지라 오랜만에 만두를 빚기로 하고 일을 벌였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만두피 만들기는 당연히 패스! 집 앞 마트에서 시판 왕만두피랑 시래기를 사 들고 들어왔다. 일단 시래기 껍질을 좀 벗기고, 다지고 물기 짜고… 늘 하다 보면 생각보다 판이 커진다. 기왕 하는 거 넉넉하게 만들어서 겨우내 먹어야지~하는 마음에서다. 이번에는 늘상 만들던 평범한 반달 모양 말고, TV에서 가르쳐 준 모양 잡기도 한번 시도해 본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잘 잡아서 늘이면 제자리에 착 서는 군만두 모양이 잡힌다. 평평한 거는 엄마 만두, 백종원 아저씨를 따라 만든 군만두 모양은 내 만두.    


“이렇게 보니 꽤 많네.”

“만두피가 한 팩에 24장 정도 됐던 거 같아. 만두 크기가 커서 2~3개만 먹어도 배부르겠다.”

“한동안 먹거리, 국거리 걱정은 없겠네요.”


  오십여 개의 만두를 마련했으니 겨울 끝나도록 출출할 때, 국물이 필요할 때 요긴한 식량이 되어주겠지. 만두를 살짝 쪄서 식힌 뒤 냉동실에 소분해서 얼려두고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간다. 맨날 가는 집 앞 하천 말고 호수 공원을 한 바퀴 돌자 싶어 차를 끌고 나가서 산책. 돌아오는 길에 삼계탕 집에 들려 포장을 하려고 했는데 식당에 사람이 없다! 횡재다 싶어 그 자리에서 따뜻한 삼계탕 한 그릇 먹고 왔다(아마도 이게 코로나 이후 첫 외식이지 싶다. 한 번 정도는 더 있었을까? 아무튼 고등학교로 옮기자마자 코로나 사태가 터지니 괜히 어디 갔다가 코로나 걸리면, 혹시라도 나 때문에 우리 학교 수능 보는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어 좀 신경이 쓰였어야지. 걱정 많은 딸내미 덕에 덩달아 엄마도 집에 갇혀 사셨다. ㅜㅜ 학기도 끝났고, 방학이고, 식당에 사람도 없고, 칸막이도 있으니 옳거니 하고 따뜻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아직은 주문 확정도 하지 않은 새 차를, 사진을 찾아가며 그려본다. 아무래도 코로나가 쉬이 끝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집안에만 있자니 너무 힘들고, 어디 가서 숙박하기엔 찝찝하고! 생각 끝에 차박이 가능하고, 높이가 높지 않아 엄마가 타고 내리기에 어렵지 않은 소형 SUV를 주문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 전기차를 사고 싶은데 최근 사고 소식이 많아서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결정했다. 아직 계약서도 안 썼는데 이미 차 받은 거처럼 룰루랄라다. 삼계탕 한 그릇 해치우고 들어왔으니 배 속 든든하고, 추운 날씨에 국물이 생각날 때마다 끓여 먹을 만두를 비축해 뒀으니 마음도 든든하고, 뒷좌석 젖혀서 누울 수 있는 새 차가 오면 어디로 갈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이면지에 끄적끄적. 차 끌고 나가서 만둣국 끓여 먹어도 좋겠는걸? ㅎㅎㅎ


* 그림이야기: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이면지에 펜으로 끄적여본 그림. 방이며 책장 정리를 하다 보니 이면지가 너무 많이 나와서 간단한 스케치 연습은 이면지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잘 그려졌다. 드로잉북에 그릴 걸 그랬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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