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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08. 2022

첫번째 봄01-취미찾기


취미찾기    

  3월이 코앞인데.. 개학, 입학이 미뤄졌다. 마침 새 학교로 옮기는 시기인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은 커녕 선생님들과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고, 재택근무와 출근이 반복됐다. 처음 이 시기가 시작됐을 때 어린아이가 있는 선생님들이 참 힘들어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일, 수업도 해야 하는데 집에 있으니 아이가 계속 엄마를 찾아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어디 교사만 그랬을까.. 모든 직장맘들이 비슷한 상황이었겠지… 그런데 나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집에서 있지만 일을 하는 건데 엄마는 자꾸 쉬라고 한다. 할 일이 많은데.. 개학, 입학이 미뤄져 이전 학교에서 전해에 담임했던 아이들의 상황도 파악해야 하고, 새 학교에서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입학생들의 상황도 파악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였다. 그런데 내가 집에 있으니 엄마는.. 일하는 걸 알면서도 딸이 좀 쉬었으면 싶으셨던 모양이다. 어차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엄마와 함께 하는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함께 그림 그리기를 제안했다. 내가 일하는 시간, 엄마는 무언가 즐거운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아무튼, 그림 노트를 두 개 사고, 휴대용 수채붓도 하나 더 준비한 뒤, 엄마에게 내가 좋아하는 여행 작가 리모님의 ‘제주 여행 드로잉 컬러링북’을 내밀었다.    

 

“엄마, 나랑 같이 그림 그려볼래요? 여기서 맘에 드는 거 골라보세요.”

“나 그런 거 잘 못해.”

“괜찮아요, 어디 내다 팔 것도 아닌데. 망치면 마는 거고. 해보고 재밌으면 계속 하면 되고~”

“음…. 이거?”     


  엄마는 망설임 끝에 책장을 넘겨보다 초록이 가득한 그림을 선택하셨다. 스케치를 하고, 고체 물감 색 만들고 칠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함께 한 시간쯤 그렸을까?    

 

“어휴, 땀나. 눈 아프고 팔 아프고 목 아프고… 이걸 왜 하니? 난 다신 못하겠다.”라며 엄마는 포기를 선언했다.     


  말씀은 그리하셔도 그림은 제법 보기 좋다. 그리고 난 기억한다. 초등학교(사실 국민학교) 시절 그림일기를 쓰다 막히면 -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며 속상해하던 날 도와줬던 건 아빠도 오빠도 아닌 엄마였다.

  엄마는 말끝마다 “난 그런 거 못해, 난 재주가 없어, 내가 솜씨가 없어서..”라고 하신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으면 저렇게 본인에게 부정적이 된 걸까. 예쁜 것, 좋은 것을 봐도 저건 때가 탄다, 금방 부서지겠다 등등 부정적인 언어를 먼저 뱉어내는 엄마를 볼 때마다 가슴 한 편이 아려온다. 이제는 그냥 좀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건 좀 즐길 수 있으셨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 난 엄마에게 긍정의 언어를 주입하려 노력 중이다. 어릴 때, 젊었을 때는 삶이 고달파서 보지 못했던 세상의 예쁜 모습, 긍정적인 부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엄마는 재주가 없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못해봐서,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그러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경험을 할 기회조차 없었을 뿐이다. 어릴 때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종이 인형도 예쁘게 만들고, 꽃꽂이도 멋지게 해내고, 집에서 도넛도 만들어주고, (일하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지만) 늘 옷도 멋지게 차려입고, 바쁜 중에 아침은 꼬박꼬박 차려주던 누구보다 멋진 ‘만능’ 엄마였다.     

  암튼 엄마의 취미를 찾아주고 싶어서

“뭔가 하고 싶었던 거 없어요?” 하면

“글쎄... 없어. 먹고살기 바빴는데 뭐 새로운 걸 하고 싶단 생각할 여유나 있었나.” 하신다.     


  늘 악기 다루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셨던 거 같아서 

“피아노 배워보실래?” 물으면

“손가락 아파서 안 돼.”     


  TV에 가족들, 친구들이 모여 신나게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면 “노래 잘하는 사람 참 많아. 나는 저런 거 못 하는데.” 하며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 부러워하시는 모습에

“노래 교실 같은 건 어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좀 그렇지만” 하면

“목 아파서 안 돼. 찬송가 한마디도 못 부르는걸.”     


  늘 몸 아픈 거 걱정하고, 돈 드는 거 걱정하고, 걱정 보따리 이고 사는 울 엄마. 내가 참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돈과는 정말이지 인연이 없었던 아빠 덕분에 항상 돈 벌기 바빴던 엄마. 빠듯한 형편이지만 자식들 부족한 거 조금이라도 덜 느끼며 살게 해주기 위해 애쓰시고, 엄마 집에 없을 때 혹시라도 배곯을까 봐 동네 빵집에 외상 장부 달아두고 먹고 싶을 땐 언제든 빵 먹으라고 해줬던 엄마. 알고 보니 그 시절 정작 당신께선 버스비가 없어 하이힐 신고 몇 정거장씩 걸어 다니곤 했고,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마저 해야 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아온 엄마인데, 갑부는 아니지만 이제 먹고 살 만큼 버는 딸이랑 함께 살면서 돈 쓰는 걸 왜 그리도 무서워하시는지. 만 원 아니라 천 원 한 장 쓰는 것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갑갑하기도 하다. 흥청망청하라는 게 아니라 그저 필요한 거 있으면 사고, 아프면 병원 가고, 좋아하는 것도 좀 배우고… 당연히 쓸 수 있는, 써야 할 곳에 쓰시라는 건데. 꼭 써야 할 때조차 머뭇거리고 괜히 내게 미안해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제발 쓸 때는 좀 쓰시라고, 그래도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가끔 내 마음대로 물건을 사다 드리기도 하고, 운동을 잡아드리기도 했다. (아쿠아로빅을 잘 다니셨는데 몸이 찬 데 한몫하는 것 같아서 중도 포기) 평일에 종일 집에만 계시지 말고 뭐라도 하시라고 권해도 가만히 계신다. 돈이 안 들면 좀 맘 편히 다니실까 싶어 주민센터에서 하는 무료 프로그램도 신청해 뒀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취소됐다. 얼른 코로나가 사라져야 할 텐데.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나와 함께 하는 일이 아니라도, 엄마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으면 좋겠다.


* 그림이야기: 처음에는 엄마와 내가 함께 그린 그림 두 장을 넣었었다. 그런데 엄마가 “거, 남의 책에 나온 그림을 막 써도 돼?” 하시는 통에 부랴부랴 사진첩 뒤져서 그날의 장면을 다시 그렸다. 분위기는 매우 마음에 드는데, 바로 그리려니 마음대로 표현이 안 돼서 정말 오랜만에 연필 스케치부터 차근차근 그려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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