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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12. 2022

두번째 겨울02-겨울 바다

겨울 바다     


  ‘정말이지 힘들다... 사라지고 싶다’를 반복하며 꾸역꾸역 버틴 2021년을 마치고, ‘이제 끝났나…’ 싶을 즈음(지난해의 마무리인지, 신년의 액땜인지 자동차 사고마저 났다!), 전국에 미세먼지 주의보가 떴다. 일기예보를 보는데 전국이 빨간색과 주황색. 그 색이 아닌 곳은 딱 강원도 쪽 동해안뿐이다. 그걸 보는 순간, 가야겠다 싶었다. 혼자 떠나는 거면 바로 출발했겠지만, 엄마를 모시고 가는지라 좀 신경이 쓰였던 숙소 찾기. 고민 끝에 방 안에서 통창 너머로 바다를 볼 수 있고, 스파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엄마, 내일 바다 보러 가요.”

“공기 안 좋다는데?”

“그니까. 강원도만 빨간색이 아니야. 동해 보러 가요.”

“나야 좋지. 너 운전하는 게 힘들어 문제지.”

“천천히 가면 돼요. 봐서 하루나 이틀 자고 오자.”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천천히 여행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누가 보면 우리 한 달 집 비우는 줄 알겠어요.”

“그러게. 근데 난 별 수 없어. 추우면 못 견디니 옷을 많이 가져갈 수밖에.”

“맞아요. 사실 이틀이나 한 달이나 똑같아.”


  코로나 이후 첫 장거리, 숙박을 계획하고 떠나는 여행이다. 엄마랑 나 둘 다 3차까지 백신 접종을 마쳤고, 사람 붐비는 곳은 피할 예정이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사 들고 길을 계속 간다. 가다 보니 무려 11km나 된다는 인제 양양 터널 진입. 운전자들의 졸음 방지용일까, 다양한 조명이 눈을 즐겁게 한다. 터널이 끝난 척하는 구름 조명도 있고, 무지개 조명도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무지개 또 있네. 빨주노.. 보남파초노주빨~ 난 이게 더 빠르더라. 더 쉬워.”

“에잉? 어떻게 그게 더 쉽지? 보남파.. 어려운데.”

“몰라. 왜 그런지 난 거꾸로가 더 편해.”

“어릴 때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줬나?”

“아닐걸~”

“혹시 보남이란 친구가 있어요? 익숙한 이름이 있으면 연결 지어 기억하기도 하잖아.”

“없어. 왜 이게 편한지는 나도 몰라~”     


  그렇게 긴 터널 덕에, 엄마에 대해 한 가지 더 배웠다. 엄마는 무지개색을 거꾸로 말하는 걸 더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해보니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터널이 길어 조명이 보일 때마다 무지개색을 읊어서 이제 잊지 않을 것 같다.     

  리뷰만 보고 찾아간 숙소, 엄마를 모시고 가는 곳이라 조금 걱정도 됐었는데 도착해 보니 결과는 대만족. 넓은 통창으로 바다를 볼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섞일 일 없이 방 안에서 스파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매력! 그냥 방안에서만도 일주일 놀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게다가 해변에서 노는 사람들 덕에 앉아서 불꽃놀이 구경도 가능! 단, 정말 바다가 코앞이라 밤에도 파도 소리 가득하고, 창밖도 훤한 편이라, 잠자리에 누워서 귀마개, 안대를 챙겨가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밤바다 소리가 비행기 속 바람 소리랑 그렇게 비슷한 줄 미처 몰랐다. 우웅~ 하는 게 마치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초저녁엔 설레기마저 했었다는… 그런데 생각보다 훤한 방 환경과 운전하느라 늦게까지 마신 커피 덕에 한 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다음 날 아침은 방 안에서 해돋이 구경. 사실 숙소 검색할 때 침대에 누워 해 뜨는 것을 보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기대와 달리 일출을 보려면 약간 창에 달라붙어야 해서 약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 숙소에는 정말 매력적인 장점이 있었다. 창을 보고 앉으면 정면에서 파도가 계속 내 쪽으로 밀려오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와, 정말 끊임없이 파도가 오네.”

“이건 영상을 찍어야겠어요.”

“저기, 큰 거 온다.”

“파도만 보면서 몇 시간 앉아있을 수 있겠는데. 일출 보기에는 방향이 안 좋지만 이것도 매력있네요.”

“그러게. 파도, 좋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면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와 모래사장에서 하얀 거품으로 사라진다. 그 소리를 듣노라면, 파도가 내게     


세상 살며 수많은 일이 생기고

고민하게 되더라도

시간 지나면 다 잊히기 마련이지.

쉼 없이 일이 생겨도,

결국 저리 스러질 것이니

그 일 하나하나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위안이 되는 장소다. 엄마도 나도, 한동안은 말없이 파도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첫날은 숙소에서만 쉬었다면, 두 번째 날은 숙소 주변의 유기농 빵집도 가보고, 외옹치항, 속초중앙시장도 들러보았다. 시장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얼른 돌아보고 숙소로 컴백. 엄마도 나도 전날 잠을 설친 덕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암!”

“너도 깼어?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나 보다.”

“어제 일찍 잤잖아요. 잘 만큼 잤으니 깬 거지.”

“별이 많아.”

“별?”

“응, 이렇게 별 많은 거 오랜만이다.”

“우와, 잠깐 나가서 사진 찍고 올게요.”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선다. 난 숙소 앞에서, 엄마는 방 안에서 별구경. 오래간만에 밤 사진 찍으려니 카메라 세팅을 못하겠어서 낑낑거리다 결국 폰으로 별 사진을 찍었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내가 안 들어오자 옷을 대충 입고 엄마가 숙소 1층으로 나오셨다.     


“아니 추운데 이러고 나오셨어.”

“창에서 니가 안 보이는데 안 올라와서 내려와 봤지.”

“이거 입고 나가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와요. 직접 보는 맛이 또 있지.”     


  얼른 패딩을 벗어주며 숙소 밖으로 등을 떠밀었다. 귀찮아하시는 것 같더니 주섬주섬 옷을 입고는 나갔다 오신다.    

 

“직접 보니까 좋죠?”

“응, 별 많은 거 정말 오랜만에 봤다. 어릴 때 진천에 별 참 많았는데. 최고는 철원에 네 오빠 면회 갔을 때였어.”

“맞아, 그때 별 진짜 쏟아질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별 보니 좋네요.”     


  잠시 쉬었다가 미리 준비해둔 빵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숙소 앞에서 해님을 맞이한다.


“오늘은 제대로 해 뜰 것 같네요. 나가서 영상 찍을 건데. 엄마는?”

“나가야지~”  

   

  추우면 차에 들어가 앉으려고 보온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이것저것 챙겨서 일출 명소로 나가는데 1분. 바로 이 맛이다! 전날 방안에서나마 일출을 한번 본 엄마는 구경 나온 다른 사람들에게 해 뜨는 방향을 알려주는 적극성도 보이신다.     


“저쪽이 붉어지네요.”

“그러게 이제 해 뜰 때 됐나?”     


  내 휴대폰으로 영상을 담고 있지만, 엄마도 휴대폰을 꺼내 사진 찍을 준비를 하신다.     


“올라온다. 엄마, 지금 찍어요!”         


  제법 붉고 동그랗게 올라오던 해가 엄마의 휴대폰 속에 저장되는 순간이다.     


“아, 잘 나온 것 같아.”

“어디 봐요. 야, 예쁘다~ 우리 엄마 이제 사진 찍기 선수되셨네.”     


  언제든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은 경이롭다. 특히나 새벽빛에 밝아오는 해돋이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주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해 준다. 잠시 붉은 하늘을 바라보다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다. 12월 말에 눈이 60cm 이상 왔다는데 - 중간에 또 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여전히 한쪽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서일까,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힘을 받고 싶었던 걸까. 엄마랑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눈 위를 걷고 있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기분 좋다.”

“그래서 영상에 소리를 담고 있지요. 나중에 보내드릴게. 근데 눈 위로 걷는 거 안 힘들어요?”

“잠깐은 괜찮아.”

“저기까지만 갔다가 들어가요.”     


  산책 후 오전 스파로 몸을 녹이고, 숙소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학사평 두부 마을에 들렸다.    

 

“어, 내가 찾아본 데는 여긴데?”     


  전날 열심히 검색한 맛집 앞에 도착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기휴일이란다... ──;;;    

 

“괜찮아, 여기 다 두붓집인데. 저기 가자.”

“아, ** 할머니 집은 메뉴가 진짜 순두부뿐인데.”

“그런 데가 진짜긴 하지. 다른 집들은 다 비슷하네.”

“왜 검색할 땐 휴일이 안 나오냐고요, 나 진짜 열심히 찾아봤는데…”

“괜찮아, 추운데 얼른 들어가자.”     


  결국 검색했던 맛집 옆집에서 식사. 나름대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설악산 울산바위 구경하며 컴백홈! 짧지만 기분 전환하기에 충분했던 겨울 여행이 끝났다. 아직 심신의 피로가 다 걷힌 것은 아니지만 잠시 쉬었다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만한 에너지 충전은 할 수 있었던 시간. 가끔은 훌쩍 떠나는 게 필요한데 작년은 너무 일에 매이고 치여 살았던 것 같다.


  ‘새해엔 몸도 마음도 좀 더 아껴주고 챙기며 살아야지!’ 다짐해 본다.

  엄마에게도 충분히 즐겁고,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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