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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08. 2022

여름03-외갓집복원 프로젝트

외갓집 복원 프로젝트     

  사진을 정리하던 중이었던가… 문득 외갓집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근데 외갓집에서 찍은 사진 없어요?”

“그 시절에 무슨 사진을 찍어.”

“나 어릴 때 집에서 필름통 들고 찍은 사진만도 수십 장인데 어떻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외갓집에서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지?”

“그러게… 그거 한 장이 없네.”     


  엄마 목소리가 쓸쓸하게 느껴진다. 엄마 어릴 때가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셨을 땐 사진 찍기가 그렇게 어렵진 않았을 텐데 좀 이상했다. 아빠도 참… 우리 어릴 때 사진 많더구먼. 엄마랑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사진 한 장 찍어드리지… 나랑 오빠랑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한 장 찍어 손에 쥐어드리지... 내겐 참 다정했던 아빠였지만 이런 면에서는 많이 무심했구나 싶다. 사진이 없으면? 그리면 되지 뭐. 일명 외갓집 복원 프로젝트! 외갓집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엄마랑 대화를 시작했다. 내 기억 속에는 작은 시골 초가집이었고, 마당에 펌프가 있어서 갈 때마다 신기해하며 펌프질을 해봤고, 따로 있는 화장실이 꽤나 무서웠다. 아, 할머니가 키가 무척 크셨고, 내가 갔을 때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따 주셨던 기억도 있다.


“엄마, 또 뭐가 있었지?”

“에이, 대충 하지 힘들게 뭘 그리 오래 붙잡고 있어.”     


  처음에는 그냥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데 의의를 두며 힘들게 뭘 그리냐던 엄마였는데. 스케치를 할수록 여기에 무슨 꽃도 있었고, 무슨 밭도 있었고... 사진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신다. 갈수록 신나서 설명하는 엄마 이야기에 이것저것 추가하다 보니 종이가 모자란다. ^^; 결국 두 장을 합친 크기의 종이에 다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말해주는 꽃 사진도 찾아보고, "봉당"이 뭔지 찾아도 보고…  

   

“근데, 외갓집이 이렇게 컸나? 엄마가 말한 거처럼 꽃밭, 텃밭, 나무들 다 있었으면 엄청 컸겠는데.”

“그럼 넓었지. 방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당이 넓어서 필요한 거는 다 키워서 먹고… 아, 저 뒤편에는 닭장도 있고, 토끼도 있었어.”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 중 엄마가 가장 즐거워 보였던 것 같다. 집 설명을 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는지. 스케치가 다 됐다 싶어 색칠을 하려니 엄마가 이것도 있었는데 하시고, 자꾸 무언가가 늘어나서 밑그림 그리는데만 3-4일은 족히 걸린 듯하다. 그리면서 보니 외갓집이 꽤 넓은 공간이었다. 몇 번 안 가봐서 일까, 이리 넓은 외갓집은 좀 생소하다. 지금 같으면, 드라이브 삼아 한 달에 한 번은 가자고 할 거 같은데, 이미 없어진 공간이라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스케치를 완성하고 나니 왠지 색칠공부 책을 만들면 좋을 것 같은 정겨운 모습이라 괜히 한 장 복사를 해뒀다. 그러고는 내가 외갓집 갔던 꼬맹이 시절을 떠올리며 색칠공부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색을 입혀나간다. 이제 색칠도 다했다 싶어 보여드리는데 "참, 이 꽃도 있었다 " 하셔서 그림 속 꽃밭은 또 늘어났다. 어느덧 그림이 완성되고, 나도 엄마도 그림을 보며 꽤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 그림을 그려놓으니 두고두고 대화거리가 된다. 엄마는 사진을 찍어 이모들에게 보내고, 그 핑계로 통화를 하셨다. 이모들에게서도 옛집과 그림이 꽤나 비슷하다는 좋은 평? 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둘째 이모가 사진이 있었냐고 물으시는 모양이다.    

“사진이 어디 있어. 딸래미랑 나랑 며칠 동안 이야기하고 꽃도 찾아보고 해서 얘가 그렸지.”     

  엄마는 한동안 이모에게 자랑스레 프로젝트 후기를 늘어놓으신다. 통화 후에는 엄마랑 나랑 둘이, 마치 외갓집 대청마루에 있는 듯한 기분으로 나란히 거실 바닥에 누워 그림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릴 때 외갓집 가면 펌프질을 꼭 해봤던 일, 화장실 가기가 무서웠던 기억을 들춰내면 엄마가 맞장구를 쳐준다. 생각해보면 친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탓에 자주 갈 수 없었고,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마저 병드시면서 시골집을 정리하게 되어 외갓집에 그리 여러 번 가지 못했는데 나름 생생한 기억들이 남아있다. 특히 외삼촌이 자전거 태워주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서(구식 자전거는 체인이 날카로워서 양다리를 벌리고 체인에 닿지 않도록 꼭 들고 있어야 했다.) 다치고 병원을 갔던… 그 와중에도 내가 오빠 스카우트 양말 빌려 신었는데 그거 망가졌다고 울던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엄마는 엄마대로 텃밭 채소 이야기, 할머니가 가꾸시던 꽃들, 이웃과 함께 썼다던 우물 이야기 등등 어릴 적 추억을 풀어놓는다. 그냥 앨범 사이에서 케케묵은 사진 한 장 발견했더라면, 그 사진만으로도 이리 오랜 시간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처음엔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되려 사진이 없어 그림을 그리니 이야기 거리가 더 풍부해진 것 같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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