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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화와 조우정 그리고, 판타지

홍콩과 영화와 배우 2

by 리금홍

靑春..청춘

영어로 찾아보니까, youth, one's youth이다. 물론, 좀 더 찾아 보면 라틴어 어원 어딘가에서 청춘을 의미하는 근사한 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영어에서 항용 사용하는 단어는 말 그대로 젊음인 듯하다.

‘청춘, 푸른 봄’ 이라는 말만큼 눈부시고 눈물 나고 감격스러우며 동시에 시린 말이 일상영어에 없다면 그들의 언어감각으로 더듬는 청춘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현실에 직면한 답답한 일들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철딱서니 없고, 진부하게 청춘타령을 하는고 하면...

소파에 무척추동물처럼 널부러져서 리모콘을 만지작 거리다가 중국채널에서 멈춰섰다. 전혀 내 취향 아닌 드라마. 십 수만년을 넘게 사는 신들이 장풍 쏘며 붕붕 날아다니며 나누는 사랑이야기. 유치찬란한 그래픽이 난무하는 중국판타지 사극. “뭐래~!”를 연발하면서 보다가 그만.... 남자 주인공에 빠지고 말았다. 외모도 외모지만, 그의 낮게 속삭이는 듯한 중국어 발음에 마음이 완전히 흔들렸다. 넷플렉스로 달려가 밤새워 그 어이없는 판타지를 정주행했다. 그리곤 판타지 속의 그를 드라마 밖으로 끌어내어 이리저리 뒷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앗! 내가 홀딱 반했던 그의 목소리는 배우의 실재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중국 사극은 거의 모든 배역을 성우가 더빙한다. 아주 잠시 동안 실망을 했다. 그렇다면, 그의 본래 목소리는 어떨까? 여기저기를 뒤져 그가 주연한 영화와, 중국예능프로 등을 찾아 봤다. 성우의 그것처럼 또박또박한 발음도 중저음의 음성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씩 흘러넘쳐 새어나오고 출렁거리는 소리질감에 정말로 반하고 말았다. 게다가 모국어보다 훨씬 멋지고 드라마틱하게 구사하는 영어능력은 또 뭐람.

그의 이름은 ‘趙又廷(짜오요우팅,조우정)’. 그가 주연한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致我們終將逝去的靑春)>을 보았다.

이 영화는 趙薇(짜오웨이, 조미)라는 중국여배우가 2013년에 감독한 영화다. 영화는 그냥 그렇고 그런 청춘 영화다. 예측 가능한 전형적 설정, 어설픔으로 가득한 이야기 구조다. 근데 그 어설픔에 어이없게도 울림이 있었다. 한자문화권 언어사용자로 살면서, 한자가 내포하는 함축성에 혼자서 무릎을 칠 때가 많은데, 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영화가 그랬다. 특히 ‘청춘’이라는 단어가. 또 간간이 번역이 무심코 지나간 대사와 대사의 행간들을 알아채는 것이 마치 감독이 묻어둔 청춘의 후진 추억을 나 혼자 알아채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이라고 번역한 것도 좀 맘에 안들기도 하고 말이다. ​


찐덕찐덕 촌스럽고 투박하며 어설픈 모습으로 나를 가격한 영화는 기어이 그 시절의 나를 불러내고 말았다. 인제 오십을 넘긴 여자는 스물의 자존감 희박한 여자를 보면서 이제껏 단 한번이라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던가 묻고 싶었나보다. 어쩌면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래도 되는 시간들이었음을 미처 모르고 있던 스무살 여자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福建省(푸젠성, 복건성) 여행에서 유덕화와 여고생이 조우했고, 이번엔 ‘청춘’이라는 이름을 핑계로 조우정과 스무살 여자가 만났다.

30년주기로 나를 찾아오는 중국 남자배우. 다음 남자는 80즈음에 찾아올 텐데, 그 때를 위해 중국어 공부를 좀 해두기로 마음 먹었다. 30년 후, 미지의 그가 이번에 찾아온 조우정보다 더 근사하면 곤란한데...80살에 나대는 심장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그때 내가 아직 ‘정신줄 놓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전제하에서.​


진지했던 꿈으로 되살아난 유덕화. 30년의 차이를 두고 초로의 여자사람 앞에 청춘의 이름으로 나타난 조우정, 그리고 여고생과 스무살 여자. 그들이 나에게 자꾸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 보라고 충동질을 한다. 유덕화와 조우정이 어깨를 으쓱하며 “뭐래~!??” 라고 해도 어쩔수 없다. 흐흐. ​

판타지 속으로 걸어 들어가 헤매다 보면 옹색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을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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