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자극'으로 인한 '후유증'

웹소설의 인기이자 불호인 세 가지 요소

by 와플왕국

하나의 트렌드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따라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패션, 추천 어플, 유행어 등 사람들이 어떤 흐름에 반응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물결 속에 나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그것이 작품이고, 자신이 창작자에 해당한다면,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와 소재는 곧 매력적인 기회로 다가오고, 자신도 유행을 따라가고 싶은 욕심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웹소설에서는 특히 유행의 영향력이 강했다.


헌터물이 유행하면서 세상에 나타난 수많은 던전과 그것을 공략하는 헌터들이 탄생했고, 탑 등반물이 인기를 끌자 온갖 랭커들이 경쟁하며 자신이 먼저 층을 클리어하려 했으며, 성좌물이 떠오르자 신격 존재와 계약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특정 소재 하나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만 하면, 그 흐름에 편승하여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 악명을 떨치는 장르가 존재했다.



후회, 피폐, 집착


합쳐서 '후피집'이라고도 불리는 세 장르는 웹소설에서도 인기가 높으면서도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리는 요소들이었다.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


그 대가로 육체적, 정신적 오랜 시간을 끔찍히 고통받고 절망하는 '피폐'.


더욱이 상대방을 의존하게 되면스 독점력이 강해져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집착'.


셋 모두 활용하는 작품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면서, 작품 초반부터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설정을 범벅으로 두고, 과격한 전개를 진행하는 작품이 늘어나면서 이 장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해졌다.


웹소설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대표적인 후피집 장르의 작품으로는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모리어티 교수의 개연성이 되었다>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하나같이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눈에 확 띄는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많았다.


웹툰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한다>의 내용을 예시로 후피집의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주인공이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방법으로 위악이라는 최악의 행위를 저지름으로, 자연스럽게 주변 인물들은 물론이고 히로인들과는 최악의 관계로 치달으며, 제목대로 주인공을 증오하며 복수하고 싶어 해한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엄청나게 고통 받고 상처도 입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악역을 자처하며 세상을 구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못 지키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진실을 아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내용을 읽을수록 답답해서 미칠 지경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답답함과 분노, 그리고 안타까움을 느끼며 감정이 격해져 간다.


작품이 진행되어 갈수록 등장인물들이 고통받고 지쳐가며 붕괴해 가는 모습에, 읽는 사람들도 똑같이 지쳐가며, 자연스럽게 작품 전개를 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는 다음 화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언제 이 갈등이 해결될지를 기대한다.


웹툰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결국 모든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주인공과 히로인 간의 오해가 풀리는 순간, 신히 숨이 트이면서 극적인 해소감이 찾아온다. 이후 등장인물들이 모든 고난을 딛고 행복한 결말을 찾아가는 모습은 지금까지 받아온 스트레스와 답답함을 결말로 보상 받는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후피집 장르는 호불호가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굉장 자극적인 소재로 뚤뚤 뭉쳐져 있는 걸로도 모자라서 극단적인 감정선과 파괴적인 갈등 구조로 독자의 감정을 끝까지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종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느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드라마에서 매회 일어나는 자극적인 내용을 감상하고, 것들이 과연 어디까지 가나라는 생각에 계속 보게 되어, 끝내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킬 정도의 강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결국 후피집은 한 번 빠지면 막장 드라마처럼 끊기 힘든 장르이며, 그 특유의 극단성과 감정 폭발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할 수 있다고 증명된다면, 더더욱 다른 이들도 시도도 빈번해지며 작품이 늘어났다.


kakaopage_20250625103719.jpg 웹툰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

특히 이 후피집 장르와 자주 엮인 것이 바로 아카데미물이었다. 하필이면 아카데미물의 양산화와 맞물려서 자주 차용되고 결합한 장르이기도 하다. 예시로 설명한 <메인 히로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만 해도 아카데미물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아카데미물이 기본적으로 인물 설정과 더불어서 서사를 구성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주인공이 빙의하거나 회귀하는 것만큼 쉽게 고통받기 좋은 환경과 장치들이 적절하게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비호감 평판, 하위권 실력, 생존 위기 같은 설정은 후회와 피폐, 그리고 집착의 감정선을 풀어내기에 최적의 무대였다.


2021년부터 2023년의 시기는 아카데미물은 레드오션이라고 치부해도 될 정도로 후피집이 포함되든, 포함되지 않든 간에 다양한 종류의 작품이 쏟아져 나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런 상태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물, 특히 후피집 아카데미물의 여러 성공작이 탄생하며 유행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소재가 자극적이었던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들은 점차 익숙해졌고, 초반에 느꼈던 신선함은 사라졌다. 그것도 싫증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이것에 대해 식상함과 피로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생겼지만, 이런 자극을 처음 느껴보며 작품에 더 몰입하는 독자도 늘어났을 정도로 유입은 계속해서 발생했다.


후피집은 자극적인 만큼 강한 흡인력을 가진 장르이며, 아카데미물이라는 구조적으로 안정된 틀 안에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최적의 무대를 제공받았다.


두 장르가 만났을 때, 생각 이상으로 폭발력이 강력하여 거대한 유행이라는 흐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웹소설 <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와 <아카데미 악당영애 교정하기>

물론 그 추세가 줄어들어 후회, 피폐, 집착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전부 사용하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거나, 셋 모두 적재적소로 조율하여 활용하는 작품이 생겨났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자극적인 감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의 무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그리고 그 감정에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캐릭터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그려내느냐에 달렸다.


그렇게 잘 다듬어진 캐릭터와 서사라면 후회가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피폐함이 감정 소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고 몰입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집착 역시 단순한 클리셰가 아니라, 인물의 과거와 욕망, 선택과 희생을 반영하는 서사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한때 과잉 소비되고 물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장르나 설정도,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되고 해석되며 다시금 부활하곤 한다.


유행이 반복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언젠가 다시 유행의 파도를 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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