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룸 넥스트 도어>삶과 죽음, 영원에 대하여

인간존재의근원적고독과영원

by CaleB


내 부탁은 옆방에 있어 달라는 거야

얼마 전 노벨상 수상자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자를 도울 수 있는가?"를 질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의 질문은 작품을 통해서 내내 이어집니다. 살아있음과 죽음을 우리는 '단절'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현대에 와서 정립된 것일 뿐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산자와 죽은 자를 있는 의식은 계속되었습니다. 심리학자 융(K. Jung)은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는 산자와 죽은 자를 초월하는 '집단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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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을 격리하려고 합니다. 환자를 격리하고 죽은 자를 격리합니다. 죽음은 병원과 장례식장에서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효율성은 죽음을 격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악이며 최대한 죽지 않게 해야 하기에 환자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려 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죽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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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룸 넥스트 도어>는 '존엄사'라는 주제를 통해 죽음의 문제를 다룹니다. '마사'를 연기한 틸다 스윈턴과 친구 '잉그리드'역의 줄리안 무어는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영화의 품격을 더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작가인 잉그리드는 우연히 종군기자였던 옛 친구 마사가 병으로 생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친구를 만나게 된 마사는 자신의 딸을 비롯한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신이 죽을 때 옆방에 있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와 법률 위반 문제로 고민하던 잉그리드는 마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하고 여행에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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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아침마다 친구의 방이 닫혀 있는지 확인하며 가슴 졸이는 잉그리드의 모습과 하나하나 인생의 후회를 내려놓는 마사의 모습을 조명하며 인생과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의 제목은 왜 굳이 <룸 넥스트 도어>일까요? 옆방은 사실 가장 가까운 사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벽과 문으로 막혀있어 사생활을 존중받을 수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웃과 함께 어울리며 삶과 사랑을 나누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의 욕구도 있습니다. 잉그리드가 만난 헬스트레이너는 위로를 해주고 싶어도 안아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합니다. 현대인은 더욱더 고독과 분리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옆방이란 바로 이런 인간의 숙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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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는 ‘왜 죽음과 싸워야 하냐’고 묻습니다. 사실 죽음은 삶과 떨어져 있는 적이 없습니다. 동전의 앞과 뒤처럼, 언제나 삶과 함께 존재합니다.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자연안에서 순환하며 몸을 얻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삶의 행복이 있으면 고통도 있습니다.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좀 더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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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제임스 종이스의 문장을 통해 삶을 그린다. "눈이 내린다. 네가 지쳐 누워있던 숲으로, 네 딸과 내 위로,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우리라는 존재가 있든 없든 우주는 계속 있습니다. 우주의 일부인 우리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친구 데이미언의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비관론은 또 다른 물음을 던져줍니다. 그가 말하는 종말은 무엇의 종말인지 말입니다. 그가 말한 대로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대자연은 언젠가 다시 균형을 되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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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영화를 단지 '존엄사'라는 주제에 국한해서 이해하는 것은 단편적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익 성향의 형사는 잉그리드의 범죄 혐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집요하게 질문합니다. 그러나 잉그리드의 행위를 실정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아니 이것은 법을 넘어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서를 나온 잉그리드는 별장으로 돌아가 마사와 꼭 닮은 모습의 딸을 만납니다. 마사는 딸을 통해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사이를 잇는 행위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11:25-26)

우리가 대자연의 일부라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안에 속해있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영화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 함을 말해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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