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피로사회> 긍정의 과잉과 고립의 시대

피로사회를 통해 한국교회를 보다

by CaleB


이렇게 원자화된 삶은 극단적으로 죽음에 취약해진다.


2012년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haft)에서 현대사회를 자기가 자기를 착취하는 시대라고 정의하였다. 긍정성이 과잉된 시대는 끝없이 성과를 독려하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라는 무한경쟁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긍정성의 과잉시대에 지각은 파편화되고 분산된다. 좋은 삶은 공동의 삶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생존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좋은 삶은 점점 멀어지고 만다. 끝없는 자책과 자학, ‘너 자신이 되어라’는 명령은 ‘자아-피로’를 초래한다. 무한경쟁의 성과주의를 독려하는 자기 내면에 장착된 시스템적 폭력이 우리를 끝없이 착취하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이라는 것이 한병철의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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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가 주목한 것은 이 책의 뒷부분에 별도로 수록된 “우울사회”(Gesellschaft der Depression)라는 강연원고였다. 한병철은 우울증을 이 시대의 핵심적 질병으로 규정한다. 한병철에 의하면 ‘해야한다(Sollen)’을 ‘할 수 있다(Können)’으로 대치하는 성과사회는 인간의 내적 영혼까지 구조적 변화를 시켰다. 성과사회의 불안한 인간에게는 어떤 목표를 달성했다는 느낌 자체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무형적인 성격없는 인간을 양산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의 생동성(Lebendigkeit)은 사라지고 목적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 탈진한 인간들의 사회가 우울사회이다. 착취자가 동시에 피착취자가 되는 이 피로사회는 필연적으로 우울사회로 귀결된다. 무한반복되는 성과를 위해 우리는 노력하지만 결코 끝은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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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과도 같은 피로와 우울의 프레임은 놀랍게도 우리 한국교회의 시스템과도 닮아 있다. 무한반복되는 성장과 성과의 추구가 그것이다. 한병철은 그만둔다는 것을 뜻하는 안식일을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날이라고 하였다. 이 무위의 시간, 놀이의 시간은 좋은 삶, 즉 공동의 삶을 필요로 한다. 무한히 자기를 착취하고 우울로 몰아넣는 현대의 시스템은 소진을 거쳐 절망을 낳는다. 교회는 성과가 아닌 쓸모없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이 시대가 쓸모없다고 규정한 것에서 쓸모를 발견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성과에 내몰려 우울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제공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지만 현재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적 토대는 마련되었지만 거기에 뒤따라야 하는 정신적 가치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사회속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낙오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통계에서 인구10만명 당 25명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고립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한병철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죽음과 관련하여 언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삶이 극단적으로 고립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삶을 더욱 더 유한하게 만든다. 삶은 점점 더 넓이를 잃어가고 있다. 삶이란 어느정도 넓이가 있어야 지속성도 지닐 수 있을텐데 말이다. 삶 속에는 세계가 거의 담겨있지 않다. 이렇게 원자화된 삶은 극단적으로 죽음에 취약해진다. 전반적인 부산함과 불안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특별한 죽음의 가능성에서 생겨난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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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언급을 생각해보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은 주로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관계적 어려움에서 찾아온다고 볼 수 있다. 타인과 비교해 뒤떨어졌다고 느낄 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이 부족질 때, 절대적 또는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게 될 때 사람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성과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지만 자기만을 위한 그 채찍질은 공허함만을 낳았다.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현대사회의 인간은 새로운 가치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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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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