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인의 후예들
아빠가 돼지를 잡았더라구...
영화<어쩔 수가 없다>는 박찬욱감독의 회심의 작품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박찬욱 특유의 무거움보다는 재미와 대중성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전작들보다는 조금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이지만 주제의 무거움은 여전했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조금 더 과한 봉준호 스타일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무거운 주제의식이 지배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여러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크게 흥행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주인공 만수가 살인에 나서는 이유와 그 과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누군가가 없어져야 나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은 우리가 결국 정글과 같은 생존경쟁의 무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죽어야 합니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살인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누리고 있는 위치는 누군가가 배제되어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똑같은 자격과 경력이 있는 경우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할까요? 권력이 있고 힘이 있으면 얻기 쉬울 것입니다. 취업 청탁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영화는 이런 상황을 살인이라고 상징화한 것뿐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의 면접에서는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수의 자리 그마저도 언젠가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암시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만수의 자리는 인공지능을 다루는 사람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대체 가능한 자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현대 문명은 끊임없이 잉여인간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기본소득 이야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0.1%가 모든 사람을 대체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만수가 살인하는 과정을 아내와 아이들도 어렴풋이 그 진상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모른척합니다. 그들이 누리는 안락한 저택 아래에는 희생당한 사람들이 묻혀있습니다. 만수의 아버지 또한 월남전에서 가져온 권총을 물려주었는데 그것은 그가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얻은 전리품입니다. 이것으로 만수 또한 살인하고 전리품을 얻습니다. 인류 문명의 '부'라는 것은 어디에서 기원할까요? 상당히 많은 부분은 전쟁에서의 전리품에서 기원했을 것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그런 희생 위에서 딸이 연주하는 고상한 음악은 사실상 그런 인간의 잔인한 속성을 가려주는 장식품일 뿐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우리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면 비종교인들은 불편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의 역사와 뿌리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동생을 살해한 가인의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적 사실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