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근대와 노마디즘
혼자 뛰는 경기의 승자는 언제나 '나'이기 때문입니다
Insight
<경량 문명>이란 쉽게 말하면 가벼움이 일상화된 시스템을 의미한다. 가벼움의 반대말은 '무겁다'이다. 과거 인류는 무거운 '중량 문명'을 추구했다. 한번 정해놓으면 결코 변하지 않을 안정된 체제를 원했다는 말이다. '천년왕국' 이니 천년만년 오래갈 나라가 되자는 것은 다시 말해 변하지 않을 무거운 문명을 구축하자는 뜻과 다름 아니다.
송길영은 이 시대를 가벼운 '경량의 문명' 사회이며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를 제시한다. 경량의 문명으로 접어든 결정적인 이유는 인공지능 때문이다. 기계가 우리의 육체적 힘을 대신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이성적 능력을 대치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인간이 할 일이 남아있다. 인공지능이 일을 해주긴 하지만 그것이 미래를 창조하는 창조성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역시 아직은 기계와 같이 정해진 일, 지시받은 일만 한다. 그 정해진 일이나 지시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무거운 고체적 중량감으로 버티고 있는 견고한 시스템들은 천천히 형해화 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연결, 융합되고 있다. 경량화된다는 것은 이런 변화에 익숙해진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와 연결에서 열리는 틈새가 바로 인간의 역할이다.
송길영 역시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각 개인의 자율성이 필요한 것이 '경량 문명'이라고 말한다.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는 가운데 열리는 틈새 그것이 경량 문명이다. 저자는 경량 문명의 규칙을 이렇게 정리했다.
경량 문명의 그라운드 룰에 기반한 우리의 자세
우리는 지금 만납니다. 준비가 되신 분만
우리는 잠시 만납니다. 전력을 다할 분만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마음이 맞는 분만 (334)
이렇게 보면 저자가 말하는 경량 문명이란 고정된 틀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변화와 연결, 능동성, 개인적 취향, 감성, 속도 등이 중요한 시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이 말하는 '경량'이라는 말과 유사한 언어들을 떠올려야만 한다. 그것은 바우만(Zygmunt Bauman)이 말한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그리고 들뢰즈(Gilles Deleuze)의 '노마드'(nomad)라는 개념이다. 경량 문명이 말하는 의미는 이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바우만은 전통적인 근대(modernity)의 견고한(solid) 국면이 점차 유동하는 액체적(liquid) 국면으로 바뀌었다고 보았다. 액체 근대는 고체 근대의 견고한 것들을 녹여 전반적인 사회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을 느슨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분출된 새로운 사회질서의 혼란적 구성이라고 보았다.
들뢰즈에 의하면 “배분된 것, 관습, 법”을 뜻하는 프랑스어 노모스(nomos)에서 유래한 “노마드”(nomad)는 경계 없는 공간을 의미한다. 사막의 유랑민에게 사막은 경계가 없는 공간이고, 유목하면서 이동하는 사람들의 궤적이 형태가 없는 영토를 구성할 뿐이다. 유랑하는 노마드는 가벼워야 한다. 언제고 움직이면서 자신의 그날 음식과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런 액체적인 유동성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연결과 융합은 현대를 '메타모더니즘'Metamodernism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속성이라 볼 수 있다.
근대적 확신과 탈근대적 회의를 동시에 끌어안는 진동
고정된 해답이 아닌, 생성되는 의미
‘제3의 공간(third space)’의 중요성의 측면이란 관점에서 그러하다.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제3의 사이 공간'이 바로 경량 문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역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여러 관점으로 바라보면 <경량 문명>은 AI 시대의 액체 근대와 노마드적 속성을 현대적 언어로 풀이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경량 문명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제자리에 머물지 말고 늘 배우고 움직이며 사람들과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성장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이 낳은 것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착취하는 현병철의 <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haft)이다. 경량 문명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피로감은 오히려 더 무거워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Spirit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2-5)
경량 사회라는 것은 노마드적인 유목민의 사회이며 유목민적 사고는 이스라엘의 히브리적 사고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바울은 화려한 로마 문명을 본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게 한 몸으로 연결된 유목민의 공동체적 사고를 강조했습니다. 분별하고 연결하는 것은 바로 노마드적이며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Summary
기술이 발전할수록 세상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인공지능이 모든 사람에게 마법의 붓을 쥐여준 지금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미적 만족이 충만한 동시에 또 심미성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139
한강이 기적은 우리에게 '하면 된다'라는 용기를 주었지만, 상호 경쟁 속 무한의 쟁투는 개인을 갈아내여 '나'없는 성취의 환상을 전시했습니다. 속도가 인간의 템포를 넘어선 경량 문명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묵묵히 살아가다, 뒤돌아보면 그 흔적이 자연스레 스스로를 설명하는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기는 언제 멈추어도 무방합니다. 혼자 뛰는 경기의 승자는 언제나 '나'이기 때문입니다. 152
경량 조직에서 리더는 더 이상 위계의 꼭짓점이나 평가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는 각자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주도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사람이며,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연결해 주는 안내자입니다. 리더가 '판을 깔아주는' 사람일 때에 구성원은 AI와 함께 스스로를 이끌어가며, 반복이 아닌 창의, 복종이 아닌 주도, 타율이 아닌 자율로 일하게 됩니다. 164
... 그날의 여행은 아무런 목적 없이 진행된 것입니다. 그림 같은 풍광에서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업무 이야기는 금지한 채 일상적인 삶과 농담만 주고받게 했더니, 오히려 그 후 조직 간의 협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믿게 하는 것이 더 큰 시너지를 낸다는 것입니다. 196
자신의 공부를 하는 이들이 각자의 선단에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경량 문명 속 새로운 공부는 태생적으로 고유한 것이기에,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도, 순위로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경량 문명은 무게와 안정을 포기하는 문명입니다. 문명의 전환기에 사람들은 익숙함의 위안을 벗고 낯선 각성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이 해온 일을 반복하지 않고, 지금껏 엄두를 못 내던 일에 다가가며 스스로를 발견해냅니다... 경량 문명의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피하지 않습니다. 가볍게 떠오르는 새로운 문명인들은 자신의 불안을 에너지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 나갑니다. 214,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