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얼굴> 아름다움의 심리학 미학 신학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by CaleB
예쁜 건 존경받고 추앙받고 추한 건 멸시받아



영화<얼굴>은 박정민 배우의 연기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한 여인이 못생겼다는 주위의 평판으로 인해 희생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정영희는 가정에서도 진실을 말해 미움받고 직장에서는 동료를 돕다가 피해를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 남편과 가정을 꾸렸지만 결국 남편에 의해 희생되고 맙니다. 영화는 이런 진실이 40여 년이 지난 후에 아들과 방송국 PD에 의해 밝혀지는 과정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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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정영희의 얼굴이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저럴까'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라스트 신에 나타난 정영희의 얼굴은 우리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사회적 편견에 의해서 희생당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편견과 집단적 폭력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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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가 주목해 본 포인트는 조금 다릅니다. 왜 시각장애인 남편 영규는 '왜 아내가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분해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영규는 분노하며 외칩니다. "나도 아름다운 게 뭔지는 알아" 그리고 자신의 기대가 무너졌다는 이유로 아내가 죽기를 바랍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아름다움이 뭐기에 영규는 그렇게 분노했을까요?


영규의 분노는 겉으로 보기엔 모순적이지만, 인간의 본능적인 '미(美)에 대한 갈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왜 우리는 아름다움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심리학과 미학, 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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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심리학적 관점에서 '미'는 생존과 가치의 지표를 나타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라, 본능적인 가치 판단이라는 뜻입니다.


심리적으로 인간은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후광 효과(Halo Effect)'와도 연결됩니다. 영규는 자신이 믿고 의지해온 아내의 헌신과 사랑을 아름다움으로 믿고 있었지만 '추함'이라는 외형적 관념과 연결되는 순간, 그녀의 내면적 가치까지 오염되었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규에게 아내의 외모는 세상과 소통하는 자신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의 일부였습니다. 그 환상이 깨지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 추락하는 것과 같은 공포를 유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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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미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도장 장인'인 영규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보이지 않는 이상적 관념의 완성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시각장애인 영규는 마음속으로 아내에 대한 '미의 형상'을 조각해왔을 것입니다. 그에게 미는 시각적 데이터가 아니라, 촉각과 청각, 상상력이 결합된 '정신적 구조물'입니다. 현실의 아내에 대한 이 구조물을이 파괴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공들여 쌓은 예술적 세계관의 붕괴를 경험한 것입니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아름다움 즉, 미를 판단할 때 어떤 실용적 목적 없이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영규에게서는 늘 아내의 외모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관심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즉, 순수한 미학적 감상이 아닌 소유와 과시의 미학이 좌절된 것에 분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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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질서'와 '조화'를 의미합니다. 무질서하고 추한 것은 본능적으로 위험이나 결함을 연상시키지만, 아름다운 것은 조화롭고 안전하며 완전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소리, 감촉, 향기, 그리고 타인의 평가를 통해 구성된 '미의 이미지'는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남편의 분개는 단순히 아내가 못생겨서가 아니라, "내가 믿어온 세상의 질서(아름다움)가 거짓이었다"라는 깨달음에서 오는 실존적 고통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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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다시 한번 신학적 관점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영화 <얼굴>에서 나타나는 시각장애인 영규의 분노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진선미(眞善美)의 일치'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 신학자들은 진리(True), 선함(Good), 아름다움(Beautiful)이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초월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편에게 아내의 헌신(선함)과 그녀의 존재(진리)는 당연히 '아름다움'으로 귀결되어야 했습니다. 신학에서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Glory)을 반영합니다.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도록 지어졌기에, 본능적으로 추함보다는 아름다움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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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의 분노는 결국 "왜 신은 선한 영혼에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육체를 주지 않았는가?"라는 신정론적(Theodicy)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이전에 리뷰했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질문했던 질문과 유사한 대목입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같이 추한 인간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에게 분노했습니다. 반면에 영규는 아름다워야만했던 아내가 추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분노합니다. 이들 모두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의 배신이 비극을 불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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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남편 영규의 분노에 대한 해석이 그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본질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정영희가 실제로 그렇게 못생겼는지 보지도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 받아들여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결국 영규조차도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 상황에 놓여있었고 이는 결국 정영희의 희생으로 결말짓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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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은 드러나는 법입니다. 정영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결국 불의를 뚫고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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