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라트> 시간속에 던져진 존재

길위의 신학

by CaleB


어떻게 건넜어?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걸었어.



한마디로 정말 영화의 광고 카피 그대로 '충격'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저도 사실은 사전 정보 없이 이 영화가 레이브Rave 음악을 주제로 하는 영화인 줄 알고 감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도착지를 알 수 없는 길을 가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화의 전개 방식 그 자체로도 우리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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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트(Sirat)’는 이슬람 신학에서 죽음 이후 모든 인간이 건너야 하는 다리를 뜻합니다. 지옥 위에 놓인 머리카락처럼 가는 다리로서 의로운 자는 건너고, 그렇지 못한 자는 떨어진다고 전해집니다. 이 개념은 영화의 서사를 설명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인간 존재 자체를 관통하는 은유로 기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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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열린 레이브파티에 딸을 찾으러 온 아버지와 아들 부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파티에 군대가 들이닥쳐 이동을 명령합니다. 이동 중 일부 차량은 사막으로 도망치는데 이들 부자가 도주하는 그룹을 뒤쫓아 합류하면서 여정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음악의 자유를 찾아 이동하는 이들의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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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레이브 음악이라는 자체가 반체제, 반문명적입니다. 인종, 계급,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모여 ‘PLUR’(Peace, Love, Unity, Respect) 정신 아래 춤을 추는 것입니다. 이들은 몇 시간이고 반복적인 비트에 맞춰 춤을 추며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전쟁과 폭력은 이들의 레이브 모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위해 사막으로 탈출하지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사막에서도 자유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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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라트〉는 설명을 아끼고 인물의 내면을 쉽게 열어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깁니다. 그 질문은 단순히 영화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질문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레이브파티의 자유를 찾아 이동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끝내 분명하게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걷는 길은 안전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으며, 언제든 추락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옥죄는 지배 권력을 군대와 지뢰밭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지뢰밭과 같이 그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이는 현실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을 은유할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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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도 ‘길’은 언제나 중요한 신학적 상징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의 선언은, 신앙이 교리가 아니라 실제로 걸어가야 하는 삶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시라트〉의 세계에서 길은 확신이 아니라 불안 위에 놓여 있습니다. 신은 침묵하고,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없습니다. 하이데거Heidegger의 표현대로 삶위에 던져진(Geworfenheit) 것입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원의 서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명확하지 않고 인물들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기보다, 길 위에 던져진 인간으로 존재합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인간의 전적 불확실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길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지만, 그 연대 역시 완전하지 않습니다. 함께 걷지만 끝까지 함께 가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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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생각할 것중 하나는 신의 부재가 아니라 신의 침묵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을 확실성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인물들—아브라함, 모세, 다윗—모두 불확실한 길 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목적지를 알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해 출발했을 뿐입니다.


<시라트>의 인물들 역시 그렇습니다. 그들은 확신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기에 걷습니다. 우리는 늘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사막 위에서 어떤 이는 죽음을, 어떤 이는 구원을 얻습니다. 생과 사는 그냥 무작위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답을 알 수 없음에도 삶 위에 던져진 우리가 걷는 이유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4:6)

정답이 없는 인생의 길에서 부르심에 따라 무작정 그 길을 나선 이들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인생의 정답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순종하는 것에서 삶은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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