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사랑을 위하여
편협한 자의 문을 통과할 방법은 때려 부수는 것뿐입니다
-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
최근 대선을 거치며 차별과 혐오가 이 시대의 키워드로 떠올랐지만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이기에 구성원들 간에 공식적인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역, 성별, 직업과 사회계층에 따른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한다.
오히려 이런 차별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고하기도 하다.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 내면에 각인된 계급과 차별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 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이고 선거이기도 하다. 평소에 잠재된 차별과 배제의 심리가 폭발하는 장소가 투표소이다.
미국은 어떨까? 잘 알다시피 미국은 다인종 국가이며 아직까지도 인종차별 이슈는 꾸준히 뉴스로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노예제가 있었던 미국에서 흑백차별이 법적으로 폐기되고 또 사회규범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마셜>은 한 흑인 변호사가 흑인에 대한 부당한 법적 차별을 반대하기 위해 싸운 법정싸움을 소재로 한다.
주인공 서굿 마셜은 실제 미국의 흑인 법조인으로서 훗날 대법관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20세기 초반까지 '분리평등'seperate but equal이라는 모순적인 정책이 미국의 공식적인 인종 정책이었다고 한다.
마셜은 흑인들이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적대적 편견에 의해 처벌받는 현실을 반대하기 위해 무죄가 분명한 흑인들을 위해 변론에 나섰던 것이다.
영화는 성폭행 누명을 쓰고 붙잡힌 조셉 스펠을 변론하고 무죄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죄의 증거를 찾아내고 번뜩이는 지혜로 반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재미있지만, 사실 영화의 백미는 그를 돕는 변호사 프리드먼과의 관계이다. 프리드먼은 유대인으로 보험 관련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마셜을 돕게 됐지만 깊이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았던 프리드먼은 재판의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흑인을 돕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백인들로부터 "유대인"이라는 비난을 듣는 것이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사냥이 이어지고 있었고 결국 자신도 흑인들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임을 자각한다.
최근 선거에서 이슈가 되었던 혐오란 무엇인가? 대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것이다.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에 대한 극우의 혐오는 여성에까지 이어진다.
나치 치하에서였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First They Came)라는 니묄러 Martin Niemöller 목사의 고백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민 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 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혐오와 배제의 대상은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의 공격성을 제어하지 않으면 그렇다. 그러므로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아주 작은이 하나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나는 해당사항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유대인 프리드먼은 이런 증오의 메커니즘을 깨닫고 마셜과 함께 재판의 승리를 이끌어내고 프리드먼 역시 인권운동에 나아가게 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는 차별금지법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무슨 지옥 같은 세상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안 좋은 사례만 모아서 선전하면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별 금지법이 만들어져 생길 고통이 존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없기에 발생하는 고통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실은 이런 법보다 우리 안에 있는 양심과 사랑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증오를 선동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던 교회도 역사의 일부분임을 직시해야 한다.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배우 채드윅 보스먼의 연기를 볼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볼거리였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10: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