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mood

겨울

by wnn

어제 새하얀 눈이 내렸다.

숨을 내뱉으면 몽글몽글 피어올라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겨울과 정말 잘 어울리는 하얀색.

그렇게 하얀 눈이 나무 위에 내리면 정말이지 엄마 말대로 나무가 겨울이라는 옷을 갈아입은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평소와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겨울의 어느 날일 뿐이지만

유독 눈이 쌓여있는 날이면 특별한 날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난 어린애인가 보다.


어제는 별다를 거 없는 하루였다.

똑같이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 일을 하고.

그런데 아빠와 함께 운동을 가기 위해 밖을 나섰을 때,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쏟아지고 있는 걸 보았다.

사실 MBTI 극 T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눈이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녹을 거고, 도로 위에는 새까만 먼지들과 뒤엉켜 탁해진 색으로 변해버리니까.

눈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귀찮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 사악사악 쓸어서 한 곳으로 몰아놓아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물론 내가 하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눈이 그치고, 쌓인 걸 창문을 통해 내다볼 때면 나도 모르게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 풍경에 감명받는 것도 사실이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운동 갈 당시에는 너무 많은 눈이 내리는 데다가 하늘까지 컴컴해져서

조수석에 앉아 한 걱정을 했다.

차 선도 안 보이는데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이따가 퇴근하는 엄마 픽업은 어찌 하나.

불행 중 다행으로 무사히 도착했고,

운동 전에는 흩날리던 눈발이 멈추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답지 않게 어쩐지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미 난 실내에 들어와 있어서 그랬는지 눈이 내리는 걸 계속 보고 싶었다.

물론 후에 길이 더러워지고, 그걸 피해서 긴 겉옷을 주섬주섬 들고 펭귄 마냥 걸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어차피 이미 내린 눈이라면 더 내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무려 세 계절을 기다린 첫눈이어서 더욱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눈은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결국 그저 눈이 소복이 쌓인 나무와 잔디만 구경하는 게 다였다.


운동이 끝나고, 아빠와 함께 일이 끝난 엄마를 데리러 갔다.

셋이 집으로 향하며 엄마는 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예쁘다는 말을 연신 했다.

대답은 안 했지만 나도 그 말에 동감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오너먼트 마냥 나뭇가지를 장식한 눈이 꽤나 볼만했다.


그러다 문득 앞서 말한 것처럼 엄마가 나무가 옷을 갈아입었다고 말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 표현에 소질 있는데?'

이런, 실없는 생각.


또 오늘 아침, 우리 할머니는 하얀 눈이 우리 집 고양이의 털만큼이나 가득하다며 창문이 많은 내 방에서

한참이나 바깥 구경을 하다가 수영장을 가셨다.

아무래도 겨울의 눈이 그득그득 쌓인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들이 시인으로 만드는 듯하다.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나도.


그래서일까, 어제도, 오늘도 매일 똑같은 하루였을 텐데 괜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뭐, 진짜로 특별해지게끔 카페에 앉아 제일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긴 하다.

오래간만에 여유롭게 카페에서 글 쓰면서 있는 팔자 좋은 날이라 그런가.

오늘 하루는 행복하게 시작하는 것 같다.

눈이 보이는 창 밖, 따듯한 음료 한 잔, 다정한 가사의 노래.

완벽한 겨울의 하루를 만들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일하러 가다가 만든 작은 눈사람
photograph by wnn


사실 눈오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작년에 내 눈오리 군단들이 전부 누군가에 의해 치워 진 걸 본 나는

적잖이 충격을 먹어서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다.

잘 뭉쳐지지 않는 탓도 있었고.

어쨌든 아직 채 다 크지 못한 듯한 나는 모여있는 눈사람도 야무지게 만들며 설렘을 느낀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게 대단한 능력이라는 걸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내게는 평범한 겨울의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게 해주는 매개체가 눈인 것 같다.


날씨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이상하게도 눈이 보이면 어린애가 되어버려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눈도 봤으면서 올해의 첫눈은 유독 더 설레게 다가온다.

글쎄, 바뀐 건 얼마 없는데.

아마도 내 마음에 여유가 더 생겨서일까나.

그런 거라면 내년에는 첫눈을 보고 더 기쁠 수 있도록 여유를 더 가져봐야지.

마냥 싫지만은 않은 다짐이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