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사로운 하루_08

아이의 시간

by 이랑


아이들은 1분을 10분처럼, 10분은 1시간처럼 쓰는 경향이 있다.



아이는 여느 날처럼 학교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뭐 먹고싶다를 버릇처럼 외친다. 가방을 집어던지고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손만 대충 씻고 젖은 소매를 걷어올리며 간식을 모아둔 서랍을 뒤적거린다.


배고파?

아니 배는 안고픈데 뭐가 먹고싶어.


손바닥만한 과자 하나 꺼내더니 비닐을 벗겨 한 입에 털어넣고 또 하나를 꺼내 가루까지 탈탈 털어 먹어치운다. 밥을 이렇게 먹어봐라.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니 아직 배가 덜찬 모양이다.


엄마 요거트 먹어도 돼?

응 냉장고에서 꺼내먹어.


먹으라고는 했는데 시계를 보니 다 먹고 챙겨서 학원 갈 시간이 빠듯하다. 시계 한 번 아이 한 번 보다가 한숨 한 번 쉬며 기다린다. 몇 분 뒤 다시 시간을 확인한 뒤 만화책 한장에 요거트 한 숟가락씩 떠먹는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일단 차분하게 말해본다.


20분에는 나가야 안늦어.

응.

양치질 할 시간은 없으니까 가글이라도 하고 가자.

응.


아이의 대답에 성의라고는 없고 눈동자는 만화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또 늦을것 같아 답답하다. 잔소리를 해봤자 소용없다는 건 알지만 그냥 두면 또 내 탓을 할게 뻔하니 다시 경고를 날려본다. 하지만 요거트를 마지막 숟가락까지 우아하게 긁어먹더니 보글보글 구석구석 깨끗하게 가글을 마친 아이는 결국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매일 반복되는 상황이지만 폭발한 나는 아이의 뒤를 쫓아가며 듣기 싫은 소리만 쏟아붓는다.


너는 왜이렇게 시간을 끝까지 쓰니? 20분에 가기로 했으면 20분부터 준비를 하라는게 아니라 20분에는 신발신고 나가는거야!



머리로는 이론상 아이들이 시간을 맞춰 행동을 조절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갓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시간 개념이 없다. 어른들은 시계를 보지않고 시간의 경과를 맞추는 게임을 할 정도로 시간을 초단위까지 인식하며 사는데 익숙해져있지만 사실은 수년에 거쳐 애써야만 익혀지는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간의 개념을 알고 있었고,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생활할 때도 물시계, 해시계, 모래시계 등을 만들어 일정한 시간의 경과를 알고자 했다. 그러다 1670년대에 최초의 정교한 분침이 포함된 시계가 발명되었고 이후 초단위까지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하다가 매 시간단위로 하루를 쪼개는 것도 모자라 분단위, 심지어 초단위까지 맞춰가며 살게 된건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이러니 시간 개념이라는게 아이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리 만무하다. 아무리 5분 전이다, 1시간 후에 출발한다 외쳐도 제 시간에 준비를 완료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순히 학교, 학원에 늦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뭘 하려고 해도 시작하는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함께 시계를 보며 준비 시간을 약속하고 그 사이에 두세번의 경고를 날리는 과정을 수없이 거쳐도 아이들은 약속한 시간까지 준비를 마치지 못하거나 나가자고 하면 갑자기 뭔가를 하기 시작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잘 시간이 되면 갑자기 책가방을 싼다거나 목이 마르다고 방에서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겨우 집을 나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엘레베이터 안에서 장난감을 두고왔다며 울거나 카시트 벨트까지 다 채웠는데 갑자기 급똥 신호가 왔다며 집으로 뛰어가는 데 말릴 수는 없지 않는가.


매번 짐을 들고 문가에 서서 기다리다지쳐서 다시 들어오길 반복하다 지친 남편은 어느날 부터인가 방법을 바꿨다. 아이들이 신발을 신고 현관문이 열고 도어락 소리가 나기 전까지 꼼짝않고 있다가 아빠 뭐하냐며 빨리 나가자고 소리쳐야만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물며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나는 어떻겠는가. 사실 너희들도 당해보라며 등교 시간에 몇 번 침대에 드러누운 적이 있다. 그 효과가 일회성임을 뻔히 알지만 그렇게라도 복수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아이의 문제는 시간 개념의 부족인가? 그럼 성인이 되어서도 버릇처럼 지각하는 사람들은 여태 시간 개념을 학습하지 못한걸까? 이제 큰 아이는 머리가 자랐고, 학교에 들어갔고, 시계의 분침을 3초안에 읽어내는데 문제가 없으니 최소한의 시간 개념은 획득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래, 이건 정신머리의 문제다.


집에서 10분거리의 학교에 다니면서 10분을 채 남기지 않고 집에서 나서는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큰 아이는 거의 매일 잔소리를 들으며 등교했다. 아예 늦거나 가끔 늦으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보겠는데 매일 애매하게 2-3분씩 늦으니 나와 다른 시계를 보고 있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1분 1초가 급박한 아침 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만화책을 본다든가 양치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여유 가득한 모습을 볼 때면 기가찼다. 아침마다 분노를 쏟아내기에도 지쳐 일단 참고 선생님의 지적을 기다리기로 했다. 공개적으로 이름이 불리면 부끄러워서 스스로 고치겠지 싶었다. 시간이 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지각은 전부 너의 책임이다라는 마음으로 아예 아이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도록 도무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점점 더 여유를 부리는게 아닌가. 참다참다 아이에게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너 맨날 지각한다고 뭐라고 안해?


응 선생님이 우리보다 늦게 오는데? 한 번도 지각하지 말라고 말 한적 없어.


알고보니 어이없게도 담임이 아이들보다 교실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 나중에는 정시에 도착하고도 수업은 한참 후에 늦게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당연히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아이들에 대한 지도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어느새 1학기가 다 끝나가고 있어 고민이 되었다. 1등으로 등교하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늦지는 말아야 할거 아닌가. 올해는 어영부영 보낸다해도 이런 정신 상태로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면 분명 문제가 될 것 같았다. 하필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라 교육 방식이 대해 아무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아이에게 상황을 체크하며 상담을 신청해야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다행인지 불행인지 2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 공지없이 이전 담임의 휴직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몇 일 후 새로운 담임이 나타났다.


새로운 선생님은 어때?


모르겠어. 근데 내일부터 일찍오래.


너만? 아니면 반 전체에 말한거야?


나랑 몇 명 이름 말하면서 늦지말라고 했어.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이와 학부모 모두가 당황한 상태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새로운 담임은 적응 기간을 가지며 아이들에 대한 관찰을 마친 모양이었다. 주요 지각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일찍 올것을 명했다고 한다. 야호, 드디어 버릇을 고칠 날이 왔다! 일년을 넘게 시계 한 번을 안보던 아이는 드디어 제 시간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 정말 나가야 하는 시간에 딱 맞게, 얄미울 정도로 1분도 미리 나가지 않고 정확한 시간에 맞춰 나간다.


이렇게 순식간에 달라지다니. 역시 엄마의 잔소리는 효과가 0이라는 깨달음과 상황이 달라지면 스스로 시간을 체크하면서 준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느낀 경험이었다. 기쁜데 슬프고 뿌듯한데 허무하다. 어쨌든 아침에 웃으면서 하는 인사하니 하루를 훨씬 기분좋게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시간 개념이 생기고 있느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등교 외에 모든 건 그대로이다. 그냥 잔소리하면 부랴부랴 준비하다가 딴데로 새고, 또 화내면 다시 하는척 하다가 결국 뒷목잡혀 울면서 끌려 나가는 그런 생활의 반복이다. 나도 아직 포기못하고 여전히 10초에 한 번씩 빨리빨리를 외치며 아이들 꽁무니에 불을 붙여보지만 내 가슴에만 천불이 훨훨 타오르는 날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적어도 평일 아침시간 만큼은 유치원 다니는 둘째 아이까지 덩달아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두배로 만족이다.


그래, 역시 문제는 정신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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