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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onded Dec 01. 2021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포리뷰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낚시를 나간 평화로운 가족들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두 형제와 아들, 세 명의 따스하고도 일상적인 풍경. 그런데 감독은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이 장면은 계속 롱숏으로 찍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아름다운 순간이 지금의 리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멀리서 보는 듯한 희미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 다음 영화는 리 플레처를 보여준다. 아파트 관리인, 무덤덤하고 무기력해보이지만 갑자기 화를 내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 하지만 그는 반지하인 자기 집처럼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존재고 눈이 덮은 그의 창처럼 그의 맘에는 차가운 상처로 가득차있으며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그런 그에게 형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이 온다. 그리고 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돌아간다. 그의 영혼이 사라졌던 곳으로.


이 영화에서 과거의 플래시백과 현재는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영화는 과거장면임을 알리는 표식을 삽입하지 않았다. 리에게 그 과거의 상처는 현재형이며 그가 과거와 현재가 무의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리가 형의 유언에 대해 아는 순간, 당연히 그는 끔찍한  밤을 떠올린다.   영화는 리의 얼굴과 과거, 그리고  밖의 풍경을 교차시킨다.   밖의 황량한 모습은 리의 마음이며  수는 있지만 닿을  없는 창문처럼 회상할  있지 수정이 불가능한 과거다.

 리의 상처를 드러내는 과거연출서 리가 맥주를 사기 위해 걷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데 이는 리의 후회의 시간이다. 그는 걸었던 그 길을 얼마나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했을까. 리가 불에 탄 집을 목격했을 때 그동안 절제된 카메라워크를 사용하던 영화는 가장 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그리고 감독은 클로즈업을 쓰지 않고 리와 카메라 사이에 장애물을 두거나 뒷모습을 찍는다. 이 때까지 리는 이 거대한 비극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리고 리가 실수를 자백하는 경찰서 씬서 천천히 카메라는 리에게 줌인하고 그 때 리는 본인의 멍청한 실수를 응시한다. 그리고 본인의 자식들이 가장 아프게 떠났음을 알아차린다.


영화에서는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을 인서트샷으로 자주 보여준다. 리의 함몰된 마음과 반대되는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리의 슬픔을 묘사하는 동시에 리와의 거리감을 드러낸다. 장면과 이질적으로 쓰인 클래식곡들도 같은 의도다. 이 영화는 관객을 포함한 그 누구도 리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음을 안다. 그렇게 리의 슬픔은 온전히 리만의 것으로 두는 사려깊음이다.


리는 형의 선물을 발견하고 아주 잠시 웃는다. 그 때 우리는 여기서 끝나기를 리가 희망을 발견하기를 바란다.하지만 리는 전부인을 만나고 우리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벗어날 수 없는 과거를,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을 본다.

 가장 내밀하고 용기 있는 대화를 하는 둘 사이에도 벽이 만든 수직선이 있다. 그조차도 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뜻이리라.


리가 패트릭에게 한 말, '버틸 수가 없어'는 가장 진실되고 정확한 대사이다. 쿨하게 보이던 패트릭이 냉동고기를 보자 무너지던 것처럼 리는 그 마을의 사소함조차 견딜 수 없다.(마을의 풍경을 촬영할 때 사람을 찍지 않고 롱숏으로 건물들만 담았다.)


시간이 흘러 장례식 날이다. 형이 떠났고 전부인의 자식이 삶에 도착했다. 겨울은 끝나가고 봄은 오고 있다.

리가 미래를 이야기하며 패트릭과 내밀한 대화를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서 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마 앞으로도 리의 인생에 봄은 올 수 없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눈과 추위만이 있는 겨울이며 영원히 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그를 어루만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땅은 조금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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