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이 아닌 생존본능
2021년, 전효성은 욕을 먹었다. 여성가족부의 데이트폭력 근절 캠페인 영상에서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오늘도 안전하게 살아서 잘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효성은 ‘페미’로 낙인찍혔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들어야 했다. 악플을 달았던 이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 자체가 피해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전효성을 연예계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잠재적 가해자’로 보이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고 반박하는 것을 넘어 사이버불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나는 여러 의문이 들었다. 설령 그게 정말 ‘피해의식’이라고 한들, 그저 한 여성 연예인이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한 것뿐인데 저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잠재적 가해자’로 보이는 것의 불쾌함이 여성의 실제 두려움보다 더 큰 문제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잠재적 가해자’로 보이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현상이 당황스럽다고 생각한다.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이미 일상 속에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공항 보안 검색대가 그렇다. 공항에서는 테러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모든 승객의 짐과 몸을 확인한다. 액체도 반입할 수 없고, 무기로 오인될 수 있는 소지품은 가지고 탈 수 없다. 모두에게 잠재적으로 위험이 있음을 전제하고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대응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2023년 여러 건의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잠재적 위협에 대한 경계는 강화되었다. 경찰은 흉기 소지만으로도 위험성이 인지되면 선제적 제압이나 체포를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아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인터넷의 테러 예고 글이나 협박성 게시글에 대한 대처도 강화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의 모든 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스템 아래 살고 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러한 조치에 불편함보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성의 두려움은 유독 ‘예민함’이나 ‘피해의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이 ‘가해자’가 될 생각이 없다면 여성의 경계심이 불편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여성의 두려움은 이상하게도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콘텐츠로 소비되기까지 한다. 본질은 흐려지고 별안간 ‘남녀 갈라 치기’가 되어버린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모르는 여자 빨리 집에 데려다 주기’ 릴스가 가장 큰 예시이다. 각각 다른 대학의 남성들이 모르는 여성을 밤길에 뒤쫓는 장면을 ‘유머’와 ‘밈’으로 포장하여 올렸다. 이 영상은 뉴스로도 보도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상황이 커지자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릴스 소모임 측은 사과문을 게시하며 해명했다.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외국에서 유행한 릴스를 따라한 것이었다.’, ‘출연자 전원의 사전 동의가 있었다.’ …….
그렇다면 그들의 해명은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적절했을까? 첫 번째로 ‘외국에서 유행한 릴스를 따라한 것이었다.’는 점을 먼저 살펴보자. 이들이 참고했다는 릴스는 무엇인지 확실하게 공개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지목한 특정 영상을 보면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그 영상은 캣콜링, 위험한 치안에 지친 여성이 ‘차라리 내가 먼저 미친 사람이 되겠다’며 자신의 불안을 유머로 승화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캣콜링이나 치근덕거림의 구조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대학생들이 만들어낸 릴스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폭력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전혀 유쾌하지 않다. 쉽게 말하자면 만든 ‘목적’부터 차이가 있으므로 그걸 같다고 볼 수 없다. 흑인들끼리 N-Word를 쓰면 유머로 받아들여지지만, 백인이 하면 인종 차별이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둘째로 ‘출연자 전원의 사전 동의가 있었다.’는 점을 살펴보자. 우선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동의가 있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공개적인 곳에 영상을 올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유머’로 생각하고, 올리기 전에 아무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권력의 무지가 드러난다. 여성 연예인은 두렵다고 개인적 생각을 밝히기만 해도 욕을 먹는데, 남자 대학생은 스토킹을 연상시키는 영상을 올리면서 ‘유머’로 소비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들 중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애초에 특정 집단을 위협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유머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당장 포털사이트에 ‘스토킹 범죄’라고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최신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에서 친밀한 관계에 의해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만 1년에 181명이다. 이틀에 한 명 정도 여성이 죽고 있으며, 스토킹 피해 상담 전화는 3년 사이 3배 넘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누군가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예민함이 아니라 ‘생존본능’이다.
기내에서 보조배터리 화재가 난 이후 관련 규정이 강화된 것에 반발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 규정이 자신의 안전과 관련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보조배터리를 열 개를 들고 ‘왜 나를 폭발 테러범으로 보냐’며 화낸다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즉, 가해자가 될 생각이 없다면 자신을 비난한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아직도 안전을 걱정하는 여성들이 아직도 예민하다고 느껴지는가?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고 불쾌해하는 것이야말로 예민한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