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6년, 지워진 여성의 권리

미프진 불법 언제까지?

by 빵토

SNS에 ‘미프진’을 검색하면, ‘100% 정품’, ‘해외 직구 대행’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수많은 불법 거래 글이 쏟아진다. 온라인 특성상, 판매자의 신원이나 약의 출처를 완벽하게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미프진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들은 약 하나를 구하기 위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말까지 법 개정이 이뤄져야 했지만, 입법은 여전히 멈춰 있다. 정치권과 언론은 ‘여성 VS 태아’의 대립 구도를 만들며 논란만 키워왔고, 보수 단체와 종교계는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며 법 개정을 가로막아왔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도대체 언제쯤 안전한 법 아래서 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국가는 언제까지 여성들을 제도 밖에서 방치할 것인가?


세계 여러 국가에서 미프진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 도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중국 등 90여 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처방되고 있으며, 이미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이 안전한 선택권을 법 제도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 2021년 한국에서도 도입 시도가 있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추가 자료 요구로 자진 취하됐고, 이후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지만 폐지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낙태를 금지하면 낙태가 줄어들까? 세계보건기구와 구트마허 연구소에 따르면 낙태의 법적 허용 여부는 낙태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제한이 많을수록 안전하지 않은 방식의 낙태가 더 위험하게 이루어질 뿐이다. 또한 여성 개인 건강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치료비 부담 증가, 불법 유통 단속 비용 증가와 같은 사회적 비용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성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사회적 손실을 감당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미프진이 도입되면 여성들이 낙태를 ‘남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낙태율과 합법화의 상관관계는 없을뿐더러, 이 주장은 여성 혐오적이기까지 하다. 애초에 여성들을 무책임한 존재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논리가 왜곡되어 있다. 임신 중단은 단순한 편의적 선택이 아니라 여성의 몸과 삶 전체를 걸고 내려야 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자신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결정을 반복하는 경우는 드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프진을 포함한 임신 중지 약은 대부분 국가에서 의사의 진료와 처방, 엄격한 관리 체계 아래 사용된다. 미국과 유럽 등 69개국은 임신 주수, 건강 상태, 절차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규정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오히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제하려는 차별적인 시각이다.


한국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임신 24주 이내에 부모에게 유전적‧우생학적 질환이 있어 태아에게 중대한 건강 위험이 예상될 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산전 양수 검사를 통해 염색체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낙태가 가능하다. 이는 태어날 아기와 가족 모두 극심한 고통과 사회적 부담에 처할 수 있음을 고려한 결정이다. 그런데 이 논리대로라면 다른 사유도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나 학생‧미성년자라는 위치도 태어날 아이와 가족 모두에게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양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아이를 시설에 맡기거나 파양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또한 미성년자의 임신의 경우, 학업 단절이나 사회적 고립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동반하기도 한다. 한쪽은 힘들 것이라 인정해 예외를 두고, 다른 한쪽은 허락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한 제도라면, 고통의 종류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철학자 피터 싱어의 주장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회가 엄마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아를 환대하기로 결정하고 엄마에게 임신을 유지하도록 강제한다면, 이는 한 사람의 몸을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 된다. 즉 엄마의 사람 자격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오늘날 한국이 입법을 미루며 여성에게 짊어지게 한 고통은 이 책에서 지적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여성은 인격체를 지닌 ‘사람’이다. 출산 이후 여성 자신과 아이 모두가 고통에 놓일 수밖에 없다면, 낙태는 오히려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는 선택으로 봐야 한다. 임신‧출산‧양육은 여성의 삶을 크게 바꾸는 일이므로 이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는 당연히 존중될 필요가 있다.


다행히 현 정부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임신 중지약(미프진)’ 도입 및 법 제도 마련 내용을 포함했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에도 해당 내용이 보고되었고,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이라는 세부 과제에 포함될 예정이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많이 늦었지만, 이 결정을 환영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빠른 입법과 실행이다. 미프진 도입과 임신 중지 관련 제도가 하루속히 정비되어, 모든 여성들이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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