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꼬리

- 서당개 삼 년에 풍월 읊는다.

by 봄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특정 사물이

지난날의 사건이나 일상을 떠올리게 하거나

다정했던 사람들을 추억하게 할 때가 많지요.


길게 늘어뜨린 수양버들 가지가

이제 막 연두색 잎들을 펴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어김없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참 예쁘고 다정했던 담임선생님이 생각난다든가.




마트에서 미끈하게 생긴 무를 보면

어릴 때 한겨울 움 속에 묻어 둔

무를 낑낑대며 꺼내던 일과

그걸로 만든 생채 나물,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만큼 매운데도

꽁보리밥을 비벼 먹던 일이 연달아 생각난다든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들이

기억을 타고 옛집으로, 어린 시절로,

그리운 사람 곁으로 데려다주곤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치아바타를 구우며 옛 추억에 잠겼습니다.

집사람은 치아바타를 굽지 않고

발사믹 식초를 탄 올리브유에 찍어 먹는데

나는 그걸 굳이 토스트기 상판에 올려

살짝 구워서 찍어 먹습니다.

이건 우리 부부의 드문 입맛 차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왜 그렇게 굳이 치아바타를 구워 먹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겉이 살짝 바삭해진 치아바타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어릴 적 불에 구워 먹던 국수 꼬리 맛이 떠올랐답니다.

구운 국수 꼬리

국수 꼬리라 하면 얼른 기다란 국숫발 끝부분을

떠올릴 텐데 그런 건 아닙니다.

국수 반죽한 것을 썰다가 남긴 끝부분이라

일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세모 모양이지요.

그걸 아궁이 잿불이나

화롯불에 구우면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한 과자처럼 된답니다.

그 시절 주전부리라곤 없던 때라

국수 꼬리는 동생들과 다투며 먹었던 과자였지요.


오늘은 그 맛에 대한 기억과 함께

칼국수를 만드시던 어머니 모습과

국수 꼬리를 얻기 위해,

국숫발을 써시던 어머니 곁에 바짝 붙어 앉아

군침 다시며 기다리던 일도 새록새록 떠올랐답니다.


나무로 만든 안반과 홍두깨


어머니가 칼국수를 만드시는 모습은

늘 신기한 구경거리였지요.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안반 위에 올려놓고

기다란 홍두깨로 반죽 덩어리 사방을 여러 번

누르며 밀어서 넓히고 또 홍두깨로 펴진

반죽을 감았다가 다시 풀어 펼치고

밀가루를 또 흩뿌리고

또 감고 늘리고 펴기를 몇 차례고 반복합니다.

이렇게 해서 둥근 반죽 덩어리가

어머니 치마폭만큼 얇고 넓게 만들어지면

썰기에 알맞도록 반접이를 또 여러 차례 합니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썰기 단계로 들어가지요.

빠르고 경쾌한 칼소리를 내며 일정한 두께의 국숫발이

칼끝을 거쳐 안반 한쪽으로 쌓입니다.





일정한 두께로 가지런히 썰어진 국숫발이 쌓이는 것을 보며

국수 꼬리를 크게 남겨주길 바라기도 했지만

나는 가끔,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도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며 다짐도 했지요.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어머니 곁에서 배운 삶의 태도가 된 셈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꽤나 순수하고 진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살짝 구운 치아바타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그때의 마음이, 그때의 냄새와 온기가

불현듯 되살아났습니다.

아마도 저는,

그 시절 어머니의 손맛과 따스한 부엌 공기를

그 국수 꼬리의 바삭한 식감을 통해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해 왔던 거겠지요.


이제 치아바타를 구워 먹을 때면,

국숫발을 써시던 어머니와 국수 꼬리를 기다리던 소년을

아련히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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