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발리여행(9-8)

25년 7월 31일, 여덟 번째 날

by moonconmong
20250731_091118.jpg 공룡을 닮은 클링킹 비치 위에서 볼 때

일어나자마자 아침밥도 먹지 않았는데, 설사 세 번. ‘과연 오늘 투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라는 불길한 의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6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짐을 챙기고 아이들 아침을 먹여 체크아웃을 마쳤다. 그 사이 나는 또 지사제를 먹었다. 이번 여행의 MVP는 단연 지사제다.

호텔 직원이 “추가 요금은 없는데요?” 하길래, "나 빨래했었는데?" 고백하며 100k를 내고 체크아웃을 완료했다. 원래 레이트 체크아웃이 가능할지 문의했지만, 첫날의 에어컨 테러는 기억을 못 하고 레이트 체크아웃비를 받겠다고 해서 그냥 체크아웃을 했다.


신랑은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먼저 나갔고, 아이들과 나는 7시 50분이 되자 가이드를 만났다. 오늘은 누사페니다 서부 투어. 하지만 크리스탈베이를 가지 못해서 결국 코스는 클링킹 비치, 브로큰 비치, 엔젤스 빌라봉 세 곳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4곳을 간다고 들었는데 한 곳을 못 가니 다른 데 추천해 줄 만한 곳 있을까?”라고 물으니, 가이드가 추천한 건 클링킹 비치 옆에 있는 클리프였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포토존 모음집 같은 곳이다. 그래도 사진은 건졌다.


누사페니다는 진짜 길이 안 좋다. 거의 1차선 도로라고 보면 되어서 가다가 반대방향으로 가는 차를 만나면 한쪽이 피해 주거나 서야 한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첫 코스는 클링킹 비치. 클링킹 비치부터 온 게 다행이다. 만약 거꾸로 왔다면, 체력이 바닥 나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서부투어를 한다면 클링킹 비치부터 오는 걸 추천한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설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공룡 머리를 닮았다는 클링킹 비치는 실제로 보니 압도적이었다. 바다와 절벽이 빚어낸 그림 같은 풍경.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것도 안 하면 여행 온 의미가 없지’ 싶어 전날의 호텔콕에 죄책감을 느껴 아이들과 함께 내려갔다. 애들도 군말 없이 따라와 주어 고마웠다. 하지만 슬리퍼 차림으로 내려가는 건 무모했다. 내려가는 길의 기울기가 거의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가팔랐고, 미끄럽기까지 했다. 가이드가 “헥헥한다”더니, 정말로 헥헥거렸다. 그래도 내려가서 도착한 해변은 마치 나만의 프라이빗 비치처럼 느껴졌다. 비치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공사가 진행 중이던데, 나중에는 10초 만에 내려올 수도 있겠지. 나는 왕복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이런 고생이 있어서 풍경이 더 값지다.

20250731_095336.jpg 클링킹비치 바닥에서 볼때

비치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보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런 곳이다. 둘째에게 포카리스웨트 한 병을 맡겼는데, 바지가 젖는 바람에 깜빡 떨구고 왔단다. ‘그냥 버리고 갈까?’ 하다, 쓰레기를 남기고 갈 수는 없지 싶어 다시 찾아서 짊어지고 올라왔다. 이곳은 비키니 입고 인생샷 찍기 좋은 명소라 서양인 언니들이 열심히 비키니 입고 인생샷을 찍고 있었다. 커플이라면, 여자는 드레스 입고 위에서만 사진을 찍고 깔끔히 다음 방문지로 이동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오는 데, 중간에 원숭이들을 만났다. 큰 아이에게 뚜껑을 딴 포카리스웨트를 건네며 “원숭이 조심해”라고 말한 지 1분도 안 돼, 원숭이가 잽싸게 병을 낚아챘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다른 원숭이는 내 가방 속 다른 음료까지 노리고 있어 진땀을 뺐다. 여기선 방심하는 순간 다 털린다. 결국 남은 음료수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땀은 줄줄, 아이들은 싸우고, 나는 소리 지르고. 내려갈 땐 웃으면서 갔는데, 올라올 땐 울면서 올라왔다. 좁은 계단에 사람은 많고, 서로 밀치며 올라가니 매너고 뭐고 없었다. 그냥 생존이 우선이었다.

20250731_113054.jpg paluang cliff

다음 코스는 가이드 추천 장소 Paluang 클리프. 인당 30k씩 내고 들어가면 포토존이 일곱 군데 정도 있다. 그냥 사진을 찍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나름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많이 건졌고 가이드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어서 만족했다.


20250731_124147.jpg 브로큰 비치

30분 이동 후 도착한 브로큰 비치와 엔젤스 빌라봉. 두 곳은 붙어있다. 브로큰 비치는 아치형 바위 사이로 파도가 치며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멍 때리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엔젤스 빌라봉은 바다 물이 들어와 웅덩이에 철썩, 철썩하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게 신기했다. 가이드는 각 장소마다 사진을 꼭 찍어주는데, 포즈가 마음에 들 때까지 찍어주는 세심함도 있었다. 계속 "넥스트 포즈!"를 외치면서 원할 때까지 찍어준다. 그래서 사진 찍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덩달아 포즈를 취한다. 세 포인트 모두 볼만하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클링킹 비치를 가장 좋아했다. 역시 고생을 시켜야 애정이 간다.


20250731_141935.jpg amarta restaurant

두 곳을 합쳐 한 시간 정도 둘러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Amarta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엔젤스 빌라봉에서 무려 한 시간이 걸렸지만, 짝퉁 렘푸양 포토존이 있다는 말에 기대가 됐다. 렘푸양 사원에서 가족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었지만, 가는 시간에 비례하여 원망도 커져갈 것 같아서 못 갔는데 대신 Amarta 레스토랑에서 짝퉁으로라도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가이드는 Amarta가 비싸다며 비추했지만, 나는 한 번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문을 하는 데 내걸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결국 씨푸드 차우더를 시켰고, 둘째는 폭립, 큰 아이는 나초를 주문했다. 나초가 점심이라니... 각자 맛있게 먹었지만, 둘째가 남긴 건 어쩔 수 없이 내가 처리했다. 그래도 속이 부글부글 거리지 않아 안도했다. 식사 중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져 렘푸양 사진을 못 찍을까 봐 걱정했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가 다 먹자마자 비가 그쳤다. 발리 날씨는 언제나 못된 남자친구 같다.

20250731_150840.jpg amarta restaurant_렘푸양 스타일

Amarta는 수영장이 있어 아이들이 수영도 하면서 식사도 할 수 있는 플레이 레스토랑이다.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를 풍기지만, 의외로 화장실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뷰가 좋으니 밥맛이 꿀맛이다. 대충 사진만 찍어도 인스타그램 몇 장은 건질 만한 곳이었다. 렘푸양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자, 가이드가 어디서 왔는지 바로 와서 사진을 찍어준다. 대충 하는 듯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써주는 사람이다. 다만, 계속 “클룩에 좋은 리뷰를 남겨달라”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마이리얼트립으로 예약했기에 불가능하다고 예약 페이지를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니, 리뷰를 캡처해서 회사에 보고해야 한다고 했다. 발리의 가이드조차 리뷰를 신경 써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30분 걸려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누사페니다 메인 스트리트 지나게 되어 우리가 있던 곳이 이 섬의 메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행, 환전소, 분위기 좋은 식당들이 그곳에 잔뜩 있었다. “내가 찾던 게 다 여기 있었네?” 하마터면, 누사페니다를 오해할 뻔했다. 4시에 도착하니 신랑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화장실만 다녀온 후 Bujuk 항구로 이동했다. 신랑에게 오늘은 만타를 봤느냐고 물어보니, 5마리나 봤다고 했다. 단, 집채만 한 파도를 감수하고 갔기에 심한 멀미와 좋지 않은 시야는 아쉬웠다고 하지만, 그래도 결국 봤으니 부럽고 얄미웠다. Buyuk에서 4시 30분 출발, 5시 사누르 하버에 도착할 예정인 쾌속정을 인당 2~3천 원 더 주고 예약했는데, 실제로는 4시 40분 출발해서 5시 30분에 도착했다. 30분 정도는 더 걸릴 수 있지! 하지만,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두 배가 걸린 셈이다.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큰 아이는 이번에는 배가 팡팡 안 한다며 시시하다고 투덜거렸다. 이건 놀이기구가 아니란다...


사누르 비치 하버는 큰 터미널이었고, 터미널 안에서는 그랩을 부를 수 없다. 일반택시만 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랩을 부르기 위해 한참을 캐리어를 끌고 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그랩?"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150K를 불렀다. 가격이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계속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것도 귀찮아서 100K를 불렀더니 120K를 이야기하길래 그냥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결국 100K가 되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50K면 가는 거리였던 건 몰랐던 걸로. 사누르에서 숙소는 하룻밤 머무는 곳이다 보니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골랐는데 주인장이 비틀즈를 좋아하는지 1층에 비틀즈 펍도 운영하고 있었다. 방은 겉보기에는 깔끔해 보였지만 샤워기는 녹슬기 직전이었고 침대보는 누렇게 변색이 되어 있었다. 수건은 붉은색이라 티가 덜 났지만, 베개와 시트는 옥시크린이 필요해 보였다. 발리의 3성급 호텔은 대부분 이 정도의 퀄리티인 것 같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가 보다 한다. 방 두 개와 거실이 있는 아파트 타입이라 지내기는 편했다. 단 의외로 방음이 안 되는 게 신기했다.

20250731_190407.jpg 발리 사누르 스테이크집

저녁은 우리가 발리에서 간 레스토랑들 중 가장 고급인 스테이크집을 가기로 했다. 4인 가족이 12만 원이 나왔으니 우리나라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살짝 저렴한 수준이었다. 역시 갔더니 한국인 이민자들이 많이 보였다. 맛은 보통의 스테이크 레스토랑이었지만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진짜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열심히 먹어댔다. 나는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수프를 먹었더니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첫끼인데, 기름진 고기를 집어넣었더니 배가 부글부글하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큰 아이가 아이스크림 타령을 해서 맥도널드에 들러서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회사에 돌릴 캐슈너트 10봉 지도 샀다. 사누르는 은퇴한 이민자들이 조용하게 살기 좋은 곳이라던데 딱 그런 곳이다. 도로도 발리의 다른 곳들에 비해 넓고 깨끗하고 레스토랑들도 대형이고 쇼핑몰들이 있는 게 세부나 다른 동남아 도시 같은 분위기였다. 발리 다른 곳에서 무수히 봤던 사원들이 이곳에서는 잘 안보였다.


드디어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나 분명한 건, 앞으로 내가 먼저 인도네시아를 가자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곳들을 강력히 주장할 것 같지도 않다. 현재 기분으로는 몇 년간은 그냥 집에만 있고 싶다. 결국 나는 여행보다 일상이 더 좋은 사람이었나 생각이 되다가도 매 여행을 곰곰이 생각하면 가기 전에는 여행을 꿈꾸며 엄청 설레하다가 막상 가서 보면 일상을 그리워하다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집에 가는 것도 괜찮겠다, 출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면서 돌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면 또다시 발동을 거는 패턴의 반복이었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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