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발리여행(9-9)

25년 8월 1일 여행 아홉 번째 날, 그리고 마지막 날

by moonconmong
20250801_091424.jpg 발리 사누르 숙소


발리 여행 9일 차: 롤러코스터 같은 마지막 날의 기록


드디어 길고 길었던 발리 여행의 마지막 날,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제 일찌감치 뻗어버린 덕분에 새벽 6시라는 기가 막힌 시간에 눈이 떠졌다. 여유로운 모닝 루틴을 즐기며 설렁설렁 준비를 마치고, 7시부터 거창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웬걸, 겉모습만 그럴싸한 무늬만 조식이었다. 물에 시럽 탄 주스는 기본이고, 밀가루 잔뜩 들어간 소시지에 돌덩이 같은 빵까지. 대충 맛만 보고 짐을 챙긴 뒤, 잽싸게 그랩을 불렀다.

20250801_075243.jpg 푸짐한 데 맛없는 조식

"유료도로로 가려나?" 신랑의 걱정 어린 물음에 나는 "에이, 물어보고 가겠지"라며 쿨하게 대답했다. 한국에선 당연히 물어보는 게 국룰이니까. 하지만 역시 발리는 한국이 아니었다. 운전기사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유료도로로 가버렸고, 공항에 도착해서는 "통행료 12k"라며 요금을 더 달라고 했다. 이미 바닥난 현금을 탈탈 털어 통행료를 건네고 체크인 수속을 밟는데... 직원이 던진 한마디.

"창가 자리인데 창문이 없어요. 알고 계시죠?"

몰랐는데! 창가 자리인데 창문이 없을 수도 있다니! 그 한마디에 큰아이는 "나 거기 안 앉아!"라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앉기 싫으면 앉지 마!"라며 맞불을 놓았다.


탑승동에 들어와 핸드폰을 보니, 그랩에서 12k가 추가로 청구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왓? 난 이미 줬는데? 작은 돈이지만 불쾌감이 치솟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연결된 카드에 돈이 없어 결제가 되지 않았고 내 카드는 '디폴트'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랩 고객센터와 운전기사에게 각각 문의를 넣었지만, 둘 다 감감무소식. 어떻게든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초조하게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결국 실패한 채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250801_121025.jpg 굿바이 발리

평소라면 기내 인터넷 따위 연결하지 않지만, 그랩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굳이 와이파이를 켰다. 하지만 고객센터는 여전히 묵묵부답, 운전기사에게서만 "계좌번호 알려줘"라는 황당한 답장이 왔다. '이보세요, 내가 알려줘도 송금이 안된다고요!' 속으로 외쳤지만, 운전기사는 다시 무소식. 게다가 우리 자리가 뒤쪽이다 보니 서빙도 늦어져, 먹으려던 치킨 라구는 이미 동나고 정체불명의 소시지 오믈렛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창문도 없고, 음식 선택권도 없고, 그랩은 말썽이고... 가는 날까지 완벽한 불운의 연속이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머라이언 파크를 구경하기 위해 공항을 나섰다. 지난번 여행의 경험자답게 우왕좌왕하지 않고 바로 SG카드를 작성하고 짐을 맡겼다. 역시 경험이 최고! 그랩을 부르자 나라는 달라도 그랩은 잘 잡혔다. 그런데 머라이언 파크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운전기사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요금은 00달러, 현금으로 준비해 주세요."

"응? 나 현금 없는데? 카드 안 되나요?"라고 묻자, 기사는 태연하게 "손님이 현금 결제를 선택했네요. 저는 카드기가 없어요"라고 답했다. 알고 보니, 발리에서 디폴트 상태가 된 내 카드가 싱가포르 그랩을 부를 때 자동으로 현금 결제를 선택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근처에 환전소도 없고 당황해하다가 미국달러가 생각이 났다. 기사에게 "미국 달러도 되나요?"라고 묻자, "환율 모르니 네가 계산해서 줘"라는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계산은커녕 20달러 지폐 한 장밖에 없었던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지폐를 건넸고, 거스름돈이 없다는 말에 체념하려는 찰나, 신랑이 "잔돈을 싱가포르 달러로 줄 수 있겠니?"라고 물어보더니 기적처럼 잔돈을 받아왔다. 와, 이런 걸로 신랑이 멋있어 보일 줄이야!

20250801_182435.jpg 마리나베이샌즈 리조트

우여곡절 끝에 머라이언 파크에 도착했지만, 32도의 습한 날씨는 우리를 녹초로 만들었다. 발리가 얼마나 시원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5분도 못 걸어 아이들 사진 몇 장 찍어주고 바로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이동하려는데, 방향 감각이 없다 보니 나는 우왕좌왕, 애들은 부글부글, 날씨는 이글이글. 결국 택시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또다시 '디폴트' 카드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신랑 폰에 그랩을 깔고 카드를 등록하는 대장정 끝에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몰려왔다. 힘이 쭉 빠져 눈에 보이는 맥도날드로 직행했는데, 웬걸, 사람 반 햄버거 반이었다. 빅맥 세트가 9달러라니... 역시 고물가 싱가포르! 그래도 꿀맛 같은 햄버거를 먹고 힘을 내서 슈퍼트리 스카이워크에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아래와 비슷했지만, 그래도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았다.

내려와서는 슈퍼트리 쇼를 기다리기로 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7시 45분이 되자마자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 쇼가 끝나면 그랩 잡는 게 전쟁일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즐기기로 했다. 공연은 짧지만 볼만했다. 다만 음악이 낯설어서 완벽하게 몰입하기는 조금 아쉬웠다. 이제는 마리나 베이 샌즈가 아닌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것 같다. '싱가포르의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외치는 듯한 화려하고 우아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20250801_193257.jpg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8시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랩을 불렀다. 올 때는 20달러였는데 34달러를 부른다. 헉! 신랑의 조언에 따라 30분을 기다렸지만, 가격은 39달러로 더 올랐다. 2차 공연이 끝나는 9시가 되면 더 심해질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39달러짜리 그랩을 잡았다. 택시 요금이 무슨 주식 그래프처럼 변동성이 널뛰는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요금이 따블이라 그런지 벤츠가 와서 기분이 조금 풀렸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햄버거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본 라면집으로 직행했다. 그런데 둘째는 배가 안 고프다며 거의 먹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둘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그리디 그리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체크인 후,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아이가 펀코팝 매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셔틀을 타고 달려갔지만 펀코팝도 10시에 문을 닫아 결국 게이트 앞에서 무한 대기를 해야 했다. 다행히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나니 끈적했던 몸이 보송보송해져 살 만했다. 역시 여행에서 날씨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다.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 탑승. '이제 나에게 시련은 없겠지'라며 안도했다. 양치까지 했으니 이제 푹 자다가 아침에 주는 조식을 먹고 내리면 끝! 눈을 감으려는데, 승무원이 쟁반을 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티라미수와 샴페인, 축하카드, 그리고 반짝이는 작은 전구들이 놓여 있었다. '저게 뭘까?' 궁금해하는데, 승무원이 "결혼기념일 케이크예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 맞다! 내가 신청했었지. 그런데 내릴 때 준다고 들었는데…

"지금 드셔야 해요!" 승무원의 단호한 말에 당황스러웠다. 하필 신랑과 아이들 두 줄로 앉아 옆에 모르는 아저씨가 앉아 있는데, 승무원은 "기념일인데 이렇게 앉으셨네요~"라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고 쟁반을 건네고 갔다. 옆자리 아저씨 눈치 보기도 민망하고, 새벽 1시에 티라미수를 먹자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신랑에게 권했지만 싫다고 하고... 결국 그 케이크를 혼자 다 먹고 샴페인 두 잔까지 원샷 때린 뒤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티라미수 세균들이 나를 야금야금 파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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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파란만장했던 발리 여행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다음 여행은 부디 '평온함'이라는 단어로만 채워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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