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리뷰_거장의 미학, 그 너머의 공허

박찬욱 감독의 신작, 기대와 실망 사이

by moonconmong
common.jpg 영화 <어쩔 수가 없다> 포스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기 전,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차승원, 그리고 염혜란까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이 한데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이 영화는 '안 볼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칸에서의 뜨거운 반응은 내 기대에 확신을 더해줬다. 특히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서,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이 이야기를 박찬욱 감독이 어떻게 불편하지 않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그의 연출이라면 분명, 현실의 비정함을 관객에게 불쾌감 없이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영화는 콧수염을 기른 이병헌과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손예진이 함께 행복해하는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된다. 회사에서 선물 받은 장어를 구우며 행복해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어색함은 다가올 불행을 위해 준비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오글거림을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몰입을 방해했다. 미국식 웅장한 저택 또한 한국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라 이는 마치 이 영화의 타깃이 한국 관객이 아닌 영미권 관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행복한 가족에게 드리워진 해고 통지서라는 균열은 빠르게 스토리를 본론으로 이끌어간다. 주인공은 세 명의 살인에 연루되는데, 첫 번째 살인은 어설펐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살인은 점점 더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변해간다. 특히 파피루스에 들어가기 위해 박희순이 연기한 캐릭터까지 죽여버리는 설정은 3명을 맞추려는 약간의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도 든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야 나는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자비한 벌목 장면은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며, 이병헌의 캐릭터는 그 시스템 속에서 희생당하는 개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 의식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곱씹어보게 되는 것이었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저 파편적인 사건들의 나열로만 느껴진다.


물론, 박찬욱 감독 특유의 탁월한 연출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씬이 전환되는 방식, 컷을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비정형적인 캐릭터들은 관객을 지루할 틈 없이 몰아붙인다. 특히 두 번째 살인 씬에서 아이의 씬과 겹쳐 보이는 연출이나, 사건과 사건이 중첩되는 구성은 그야말로 거장의 미학이었다. 그런 면에서 기교가 넘쳐나는 연출이고 씬브레이킹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박찬욱 감독만의 연출력이 보이는 작품인 것은 분명 맞다.


하지만 이 모든 뛰어난 기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내게 버터처럼 미끌거리고 낯선 느낌을 주었다. 한국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잘 만들어진 미국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왜, 쿠엔틴 타란티노나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를 찍으면 진짜 주연배우들이 다 조연으로 출연하는 데 딱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도 스콜세지나 타란티노 영화에서 내가 이질적으로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 유명한 배우들을 그냥 배우로서만 알기 때문인데 <어쩔 수가 없다>는 어쩔 수가 없이 한국 영화이고 내가 그 배우들을 너무 잘 알다 보니 자꾸 각각의 캐릭터에서 더 궁금함이 유발되고 다른 캐릭터들이 보이다 보니 몰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유명 배우들은 그저 나열되어 있을 뿐, 각자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결국, 뛰어난 연출 기법들이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기술적 완벽함은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은 왠지 모르게 공허하게 느껴졌다. 모든 영화가 기대한 만큼 실망이 있는 법이지만, 어쩔 수가 없이 <어쩔 수가 없다>의 실망감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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